평범이름 무슨재미… 개성별명 튀어보세

  • 입력 2007년 2월 8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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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 주진’∼(웃음) 친구들에게 장난 좀 그만 해.” “넌 역시 ‘공주 윤선’, 아! 새침은…. 장난치며 크는 거야.” 여고생들의 대화다. 이들은 이름 앞에 두 글자 별명을 붙여 부른다. 이윤선(17·대전 관저고교) 양은 “친구들끼리 친근감을 표시하기 위해 네 글자 이름을 ‘별명’이나 ‘아호’처럼 부르곤 한다”고 말했다.》

버럭범수… 야동순재… 치킨명수… 사자성어式 이름 유행 왜?

버럭범수(이범수), 다중갑수(김갑수), 꽈당민정(서민정), 야동순재(이순재), 사육해미(박해미), 굴욕정길(이정길), 비열창완(김창완), 치킨명수(박명수)….

연예인의 이름 중 성(姓)을 빼고 특정 어휘를 넣어 부르는, 일명 ‘사자성어식 이름 짓기’가 유행이다. 연예인들의 독특한 행동을 특정 어휘로 압축해 이름 앞에 붙여 부르는 것이다.

SBS 수목드라마 ‘외과의사 봉달희’ 게시판에는 ‘버럭범수’란 말이 나온다. 봉달희(이요원)의 선배 ‘안중근’ 역을 맡은 배우 이범수(37)가 극중 후배들에게 자주 화를 내기 때문.

MBC 일일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사자성어로 불린다. 덤벙대다 자주 넘어지는 교사 서민정(28)은 ‘꽈당민정’, 근엄하지만 야한 동영상을 보려다 가족에게 들키는 한방병원장 이순재(72)는 ‘야동순재’, 마치 사육하듯 남편을 대하는 박해미(42)는 ‘사육해미’로 불린다. 탤런트 서민정은 “어감이 예쁘진 않으나 시청자들이 친근감의 표시로 붙여 준 별명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KBS 월화드라마 ‘꽃피는 봄이 오면’에서 사기 전과 7범 ‘이덕수’ 역을 맡은 김갑수(50)는 ‘다중갑수’로 불린다. SBS 주말드라마 ‘연개소문’에서 중국의 ‘수 양제’ 역을 맡아 사기꾼과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 주기 때문.

이런 이름 짓기는 영화 마케팅에도 활용된다. 무술도장 관장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 ‘김관장 대 김관장 대 김관장’(8일 개봉)도 홍보 포스터에서 주인공 이름을 택견현준(신현준), 검도성국(최성국), 쿵후오중(권오중)으로 소개했다.

한 주부는 인터넷 게시판에 “귀가 시간이 오전 1시인 남편을 둔 나는 ‘독수○○’, 밤마다 외출하는 남편은 ‘야광○○’, 돈 잘 벌고 아내에게 잘하고 자식에게 100점인 남편은 ‘부럽○○’”이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유행 속에는 △채팅 용어나 이모티콘 등 함축적 단어로 전체 이미지를 나타내려는 젊은 세대들 특유의 언어 활용법 △자신을 하나의 통일된 이미지로 부각하려는 연예인들의 ‘캐릭터라이즈(characterize)’ 기법 △획일화에 반기를 들고 개인의 개성을 부각하고 싶은 욕구가 내포돼 있다고 분석한다.

문화평론가 강명석 씨는 “모든 정보와 현상을 빠르고 함축적이면서도 재미있게 명명하는 인터넷 세대의 글쓰기와 같은 맥락”이라며 “그 속에는 시대의 유행 코드, 트렌드를 들여다볼 수 있는 메타포가 있다”고 말했다.

MBC 주말드라마 ‘하얀거탑’에서 제자 장준혁(김명민)에게 질투를 느끼는 말년 외과 과장 ‘이주완’을 연기한 탤런트 이정길(63)이 ‘굴욕정길’이라고 불리는 데는 중년 직장인의 갈등이 담겨 있다.

‘야동순재’란 한마디에서 가부장적 권위를 벗어나려는 노인 세대의 명암도 엿볼 수 있다.

성명학자 맹정훈 씨는 “이름 앞에 특정어를 아호처럼 붙이는 것은 개인의 다양성을 인정받고자 하는 심리가 들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문화평론가 김지룡 씨는 “유행이긴 해도 상대가 듣기 싫을 수도 있기 때문에 이름을 장난스럽게 부르는 일은 신중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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