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한 공모제→추천위 파행→이사회서 강행…결국 이러려고

  • 입력 2006년 11월 10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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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차 무시한 사장선임 반대” KBS 이사회의 사장 후보 면접 심사가 진행된 9일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 36층 연회장 밖에서 KBS 노조가 사장후보추천위원회의 후보 추천 절차를 거치지 않은 것에 대해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절차 무시한 사장선임 반대” KBS 이사회의 사장 후보 면접 심사가 진행된 9일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 36층 연회장 밖에서 KBS 노조가 사장후보추천위원회의 후보 추천 절차를 거치지 않은 것에 대해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KBS 이사회가 9일 정연주 전 KBS 사장을 차기 사장으로 임명 제청하기로 하면서 정 씨는 6월 30일 임기 만료 후 약 다섯 달 만에 연임하게 됐다.

방송가에서는 일찍부터 내년 대선 정국을 앞둔 여권의 의지 때문에 ‘코드 방송’을 해 온 정 씨가 연임될 것이라고 예측해 왔다. 유재천 ‘공영방송발전을 위한 시민연대’ 공동대표(한림대 특임교수)는 “정 씨의 연임은 대선을 앞두고 여당이 공영 방송을 장악하기 위한 포석”이라며 “사장후보추천위원회(사추위) 결렬 등 그동안의 논란은 ‘정 사장 만들기’를 위한 각본이었으며 이사회가 거수기 노릇을 했다”고 말했다.

이날 11명의 KBS 이사 중 3명이 사장 임명 제청 절차에 문제를 제기하며 사퇴 의사를 밝혔고 KBS 노조도 출근 저지 투쟁과 이사회를 상대로 행정 소송을 벌이겠다고 밝혀 “KBS 논란은 이제 다시 시작”이라는 견해도 나오고 있다.

▽공모제, 그러나 끊임없는 연임 음모설=KBS 이사회는 9월 11일 사장 선임에 공모제를 도입하기로 했으나 노조와 전국언론노동조합 등은 정 씨 연임을 위한 뻔한 공모(共謀)제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들은 KBS 이사회의 절대 다수가 여권 추천 인물로 구성돼 이사회가 직접 사장을 선출하면 정 씨 연임을 위한 거수기에 불과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KBS 이사회는 이 같은 지적을 피한다는 명분으로 사추위를 구성하기로 했으나 공정성을 위해 평가 기준을 명시한 뒤 후보의 점수를 공개하자는 노조의 제안을 거부했다. 정 씨가 낮은 점수를 받아 사장 후보에서 제외될까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노조는 주장했다.

또 노조는 사장 후보에 13명이 응모한 점을 감안해 사추위의 권한을 보장하려면 3명을 추천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이사회는 5명을 고집했다. 실제로 9일 면접 심사장에 나타난 후보자 13명 중 8명은 사장 후보로 거론조차 되지 않던 인사들인 것으로 드러나 이사회의 5명 추천 주장은 정 씨가 후보에 반드시 포함되도록 하기 위한 ‘배려’였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이사회는 자신이 추천한 이권영(한국방송학회장) 사추위원이 회의에 한 차례 불참했다는 석연치 않은 이유로 해촉한 데 이어 7일 사추위를 무산시킨 뒤 사장 후보 선출을 강행했다.

사추위원으로 참여했던 방석호 KBS 이사는 “이 위원이 정 씨의 연임을 지지할 것인지 확신이 서지 않자 해촉한 것”이라며 “이사회는 정 씨의 연임을 방해할 만한 제안을 모두 거부했고 사추위로 어려울 수 있다는 판단에 이르자 깨버렸다”고 말했다.

▽정 씨 취임 이후에 더 큰 논란=노조가 4월 발표한 설문조사에서는 4050명의 응답자(전체 직원 5760명) 중 82.4%가 정 씨의 연임에 반대할 정도로 정 씨는 신뢰를 잃었다. 정 씨가 경영 능력이나 공영 방송 리더의 자질을 보여 주지 못한 데다 끊임없이 편파 방송 논란을 초래했다는 게 그 이유다.

게다가 이날 이사 3명이 사퇴함으로써 KBS의 최고 의결 기구인 이사회의 파행 운영이 불가피해 디지털 전환 등 경영 정책의 수립에도 난항이 예상된다.

정치권의 파장도 만만찮을 전망이다. 한나라당은 이날 ‘국민과 함께 정연주 사장 임명에 반대한다’는 논평을 내고 “야당은 물론 KBS 사원과 국민이 반대하는 정 씨를 고집하는 것은 KBS를 국민의 방송이 아니라 정권의 방송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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