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기자의 무비홀릭]‘브로크백 마운틴’ 히스 레저의 연기

  • 입력 2006년 4월 6일 03시 00분


코멘트
우는 연기가 진정 배우에게 있어 가장 어려운 연기일까? 실제 배우들을 만나 얘기를 들어보면, 서로 다른 감정이 한데 뭉쳐 있는 ‘복합감정’이 가장 연기하기 어렵다고 토로한다. 기쁨과 슬픔, 사랑과 증오, 자부심과 치욕감 같은 극과 극의 감정은 알고 보면 ‘보색(補色) 대비’처럼 결국엔 숙명적으로 어우러질 수밖에 없는 관계라는 것이다(전설적인 여배우 김지미가 이혼의 변으로 남긴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는 말도 복합감정의 진수가 담긴 한마디가 아닐까).

카우보이들의 동성애를 담은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을 보면 복합감정이란 말을 떠올리게 된다. 자신도 모르는 힘에 이끌려 동료 잭(제이크 길렌할)을 평생 사랑하게 되는 에니스 역을 맡은 히스 레저는 자기부정(‘나는 동성애자가 될 수 없다’)이라는 음지(陰地) 감정과 주체할 수 없는 사랑이라는 양지(陽地) 감정을 뒤섞은 복합적인 감정의 본질을 보여 주는 것이다(그는 올해로 겨우 27세다).

영화에서 에니스(아니, 히스 레저)가 가뭄 속 단비처럼 드러내는 6개의 위대한 표정. 그 속에 담긴 복합감정의 정체를 밝혀 본다.

○ 사랑+분노=아름다운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양떼를 치며 사랑을 나눠온 두 카우보이. 급기야 헤어져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야 할 순간이 왔다. 이 안타까운 상황에서 둘은 역설적이게도 주먹다짐을 벌인다. 왜? 그게 바로 카우보이들이 미칠 듯한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니까. 잭과 몸싸움을 하다 찡그리는 에니스의 얼굴(사진①)과 잭을 떠나보낸 직후 구토하는 에니스의 표정(사진②)에는 △잭을 향한 뜨거운 사랑 △헤어짐에 대한 분노에 가까운 안타까움 △‘왜 내가 동성애자가 되고 만 걸까’ 하는 고통스러운 자책이 함께 배어 있다.

○ 사랑+은폐본능=잭과 헤어진 지 4년. 결혼해 딸 둘을 둔 에니스에게 “들러도 될까?” 하는 잭의 엽서가 배달된다. “꼭 들러(You bet)” 하는 단 한 줄을 엽서에 적어 편지함에 넣고는 막 돌아서는 에니스(사진③). 그의 표정에는 △가슴 두근거리는 사랑의 기쁨과 △남이 알까 두려운 은폐본능이 동시에 묻어난다. 하루 종일 창밖을 내다보다 드디어 잭의 모습을 발견한 에니스의 얼굴(사진④)에도 감격으로 빛나는 눈과 아내에게 진실을 들킬까 무서워 앙다무는 입, 이렇게 상반된 두 이미지가 경계 없이 동거한다.

○ 사랑+고통=“간절히 원해도 늘 기다림밖에는 주지 않는 너를 바라보는 게 너무 힘들다. 차라리 끝내고 싶다”는 잭의 다그침에 에니스가 휙 돌아서면서 보여 주는 얼굴(사진⑤)은 최고의 표정이 아닐 수 없다. “이제 더는 못 참겠어” 하는 에니스는 눈물을 쏟아 내는 동시에 참아 내는 것 같은 절묘한 표정으로 사랑과 번민이 섞인 자신의 감정을 처음으로 잭에게 드러낸다.

○ 사랑+확신=잭이 세상을 떠난 뒤 어느덧 홀로 중년이 된 에니스. 옷장 속에 간직해 둔 잭의 셔츠를 물기 있는 눈으로 바라보며 혼잣말을 한다(사진⑥). “잭, 맹세해….” 이 마지막 표정에는 잭에 대한 영원한 사랑의 다짐, 그리고 남자를 사랑한 자신의 선택을 결국 아름다운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자기 확신의 감정이 모두 드러난다. 너무나 아프고 아름다운 사랑 고백.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