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한국판 윈프리’ 왕언니 MC 전성시대

  • 입력 2006년 4월 5일 03시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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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김미화의 U’의 김미화, KBS ‘파워인터뷰’의 이금희, MBC ‘여성의 힘 희망 한국’의 조주희 씨(왼쪽부터). 이들은 중년 여성 특유의 솔직함과 부드러움을 무기로 초대 손님들이 속내를 털어놓게 만들고 있다. 사진 제공 SBS·KBS·MBC
SBS ‘김미화의 U’의 김미화, KBS ‘파워인터뷰’의 이금희, MBC ‘여성의 힘 희망 한국’의 조주희 씨(왼쪽부터). 이들은 중년 여성 특유의 솔직함과 부드러움을 무기로 초대 손님들이 속내를 털어놓게 만들고 있다. 사진 제공 SBS·KBS·MBC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인상적이었던 이종범(36) 선수의 모습은 투수의 공을 농락하는 날카로운 스윙보다 이를 가능하게 했던 선구안이었다. 투수를 잡아먹을 듯 쏘아보는 매서운 눈빛. 하지만 방송국 스튜디오에서 그의 눈은 매서운 빛이 아닌 굵은 눈물을 쏟아냈다. 지난달 25일 방영된 KBS1 ‘파워인터뷰’에서 그는 선수 생활 중 가장 잊지 못할 순간을 묻는 MC의 질문에 일본 주니치 시절 2군 생활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린 것. 방송이 끝난 후 이 선수는 “왜 울었는지 모르겠다. 금희 누나가 너무 눈을 봐서 그랬나”라며 웃었다.》

○중년 여성 MC가 뜬다

이 선수의 속내를 끌어낸 이 프로그램의 MC 이금희(40) 씨는 진행자의 ‘눈’과 ‘귀’를 강조한다.

“일단 상대의 눈을 봐요. 사실 초대 손님과 눈을 마주치기 어려워요. 스태프 사인도 봐야죠, 다음 질문도 체크해야죠. 그리고 상대의 이야기를 친구처럼 잘 들어줘야 합니다. 게스트가 ‘저 사람이 귀 기울여 내 이야기를 이해하려 노력하는구나’라고 느끼면 감춰진 마음속 이야기를 털어놓죠.”

그녀의 말 속에는 요즘 방송가의 변화상이 들어 있다. 부드러움과 섬세함을 갖춘 중년 여성 MC가 단독 진행하는 프로그램이 늘고 있는 것. 남성 MC의 보조 역할이라는 공식도, ‘연륜 있는 남성 진행자와 젊은 여성 MC 조합’이라는 공식도 깨지고 있다.

여성 단독 MC 프로그램은 KBS의 ‘파워인터뷰’(진행자 이금희), ‘주부 세상을 말하자’(정용실), ‘문화지대 사랑하고 즐겨라’(손미나) ‘신화창조’(황수경), MBC의 ‘여성의 힘 희망 한국’(조주희), SBS의 ‘김미화의 U’(김미화), ‘한수진의 선데이 클릭’(한수진) 등 10개가 넘는다. 남성 MC 단독 진행보다 많을 정도.

KBS 표영준 아나운서 팀장은 “여성을 단독 MC로 선호하는 경향이 날로 커지지만 단독 진행의 경우 연륜이 없으면 맡길 수 없기 때문에 내공이 있는 중년 여성 진행자의 수요가 크다”고 말했다.

케이블방송 채널 CGV도 영화판 마당발로 꼽히는 영화배우 정경순(43) 씨를 MC로 내세워 인터뷰 프로그램 ‘정경순의 영화잡담’을 개설했다. 게스트로 나왔던 탤런트 공형진, 심혜진과의 거침없는 대화는 시청자들에게 화제가 됐을 정도.

○때론 콕 집어서, 때론 편안하게…

‘파워인터뷰’의 정병권 PD는 “오락과 정보를 합친 프로그램 진행에는 부드러운 여성성과 경험에서 오는 신뢰를 동시에 지닌 중년 여성 MC가 적합하다”고 말했다.

중년 여성 MC들은 자신들의 무기를 솔직함과 편안함이라고 밝힌다. ‘김미화의 U’ MC 김미화(42) 씨는 지난해 말 방송 중 눈물을 흘려 화제가 됐다. 다운증후군 장애를 가진 딸을 둔 한나라당 나경원 의원을 초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 과거 뇌수종에 걸려 낙태한 자신의 첫째 아이에 관해 고백한 것.

“나이가 들고 보니 내가 겪은 일들이 많아 게스트가 고백할 때 나도 고백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 돼요. 이런 과정에서 대화가 깊어지죠.”(김미화)

시청자를 사로잡는 또 다른 무기는 편안함이다. 서울 용산 어린이 성추행 살해 사건(김미화의 U), 아동 성폭력(주부 세상을 말하자) 등 묵직한 주제나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 등 정치 현안을 갖고 있는 인물도 편안하게 접근한다.

“오해를 살 만한 공격적인 질문도 남성들과 정말 다르게 해요. 같은 질문도 무언가 부드럽게 하죠.”(여성의 힘 희망 한국 조성렬 PD)

주부 시청자 김영숙(57) 씨는 “중년 여성 MC들은 공격적인 질문을 할 때도 아줌마 특유의 탁 까놓고 물어보기와 살살 돌려 말하기를 적절히 섞어가며 답을 이끌어낸다”며 이들의 진행 스타일 특징을 ‘아줌마식으로 말하기’에서 찾았다.

한편 여성 MC의 확대가 과도한 시청률 경쟁, 지나친 프로그램 연성화의 산물이라는 비판도 있다.

SBS 외주제작팀 전수진 차장은 “한국사회의 여러 가지 구조적인 불평등을 고려할 때 시청자들은 인생 경험이 풍부하고 남성 중심의 기존 입장과는 다른 접근을 할 수 있는 상징적인 존재로서 중년 여성 MC들을 신선하게 바라본다”고 말했다.

이종범 선수는 3일 스튜디오를 다시 방문했다. 이번에는 눈물 대신 포복절도. ‘김미화의 U’ 출연 중 MC에게서 받은 질문 때문이다.

“한일전 때 데드볼을 피하지 않더군요. 공이 (남자의) 위험한 부위에 오는데도 피하지 않으면 어떡해. 겁 안나요?”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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