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살에도 아들 봐야하나" 때아닌 논란

  • 입력 2004년 12월 23일 17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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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극장 '쉰둥이 육아일기'
인간극장 '쉰둥이 육아일기'
“세근이를 보면서 아들 없는 엄마들의 괴로움은 커져만 간다. 쉰 살이 돼도 아들을 낳아야 여자의 도리를 다한 것인가.”

KBS 2TV ‘인간극장'의 시청자 게시판이 때아닌 ‘아들’ 논란으로 뜨겁다.

인간극장의 이번 주 방영분은 ‘쉰둥이 육아일기’. 경기도 안양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는 박을수(53), 이영자(50)씨 부부와 14개월 된 아들 세근이가 주인공이다.

20대 두 딸이 있는 박씨 부부가 뒤늦게 세근이를 낳게 된 사연은 독특하다. 3년 전 팔순 부모가 장손인 박씨에게 “집안의 대를 이을 양자를 들이라”고 엄명을 내렸다. 부부는 고심 끝에 양자보다는 직접 아이를 낳아보자고 결심했고, 온갖 정성을 들인 끝에 지난해 ‘쉰둥이’를 얻게 된 것.

이씨의 출산 18일 뒤에는 시집간 둘째 딸(23)도 손녀를 낳았다. 이 때문에 엄마의 젖이 부족했던 세근이가 누나 젖을 얻어먹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냥 흔치 않은 우리 이웃의 이야기로 재미있게 보아 넘길만한 사연이지만, 딸만 둔 주부들에게는 가슴을 찌르는 비수로 다가왔다.

딸만 가진 주부들은 프로그램의 시청자 게시판에 방송사의 기획의도를 꼬집는 항의 글을 올렸다.

ID ‘최명희’씨는 “‘아들을 낳지 못한’ 수많은 엄마들은 이런 방송이 나올 때마다 남편과 시부모 앞에 죄인이 되어야 한다”며 “산삼이라도 먹고 아들을 낳아야 할 판”이라고 성토했다.

‘송영숙’씨는 “방송이 앞장서서 나이 오십이 넘어도 대를 이을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심어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고 토로했다.

‘김정현’씨는 “나이 쉰에 아들을 낳아서 부부간의 대화가 많아지고 집안이 화목해졌다는 말인데, 나는 그렇지 못해 마음이 불편하다”며 “여자들의 자격지심이니, 예민하다느니 라고 비난하지 말라. 남자들은 오랫동안 주류로 살아 약자의 고통을 모른다”고 말했다.

하지만 ‘과민반응하지 말자’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한종수’씨는 “쉰둥이를 낳을 수 있다는 용기에 박수를 쳐야 마땅하다”며 “아무리 세상이 각박하다 해도 팔순 노부모의 바람을 채워드린 박씨 부부의 ‘효심’을 높이 평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지환’씨는 “박씨 부부는 또 딸을 낳았어도 세근이 못지않게 사랑하고 열심히 키웠을 것”이라며 “딸을 시집 보내 허전했던 쉰 살의 부부가 늦둥이를 낳아 키우며 행복을 찾는 이야기로 보는 것이 옳을 듯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인간극장’ 제작진은 “손녀 재롱을 볼 나이건만 뒤늦게 육아를 다시 시작하게 된 박씨 부부의 모습을 통해, 자식사랑에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점을 전달하고자 프로그램을 만들었다”고 기획의도를 설명했다.

최현정 동아닷컴기자 phoeb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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