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리뷰]암컷을 열받게하는 숫컷 ‘차례로 익사시키기’

  • 입력 2004년 6월 15일 17시 12분


코멘트
한 폭의 정물화처럼 정적이고 평면적 화면 구도 속에 여인 3대의 ‘수컷 살해’ 프로젝트를 담은 영화 ‘차례로 익사시키기’. 사진제공 동숭아트센터
한 폭의 정물화처럼 정적이고 평면적 화면 구도 속에 여인 3대의 ‘수컷 살해’ 프로젝트를 담은 영화 ‘차례로 익사시키기’. 사진제공 동숭아트센터
‘씨씨’라는 똑같은 이름을 가진 모녀 3대가 산다. 할머니 ‘씨씨’는 바람피우는 남편을, 엄마 ‘씨씨’는 섹스에 무관심한 남편을 차례로 익사시킨다. 딸 ‘씨씨’도 아이를 임신하자마자 애인을 익사시킨다. 사건을 자연사로 덮어준 검시관 매짓은 이들 3대에게 섹스를 요구한다. 매짓 역시 ‘씨씨’ 3대에 의해 익사 당한다.

19일 개봉되는 피터 그리너웨이 감독의 1988년 작 ‘차례로 익사시키기(Drowning by Numbers)’는 좋게 말하면 ‘지적 유희로 가득 찬’, 나쁘게 말하면 ‘무척 골 아픈’ 영화다.

내용은 그럴싸한 페미니즘 이론이 아니라, 원시 모계중심사회를 관통했던 ‘암컷론’에 뿌리를 두고 있다. ‘씨씨’라는 이름의 모녀 3대, 이들은 교미 후 수컷을 냉정하게 용도 폐기해 버리는 암사마귀와 흡사해 보인다.

암컷에게 불필요한 수컷이란 누군가. 바로 △다른 암컷과 교미하는 수컷(할머니 ‘씨씨’의 경우) △교미에 무관심한 수컷(어머니 ‘씨씨’의 경우) △막 교미를 끝낸 수컷(딸 ‘씨씨’의 경우)이다. ‘씨씨’ 3대가 수장(水葬)을 택한 것도 용도 폐기된 수컷을 모성의 근원으로 되돌려 보내는 의식으로 해석된다.

피터 그리너웨이 감독은 ‘필로우 북’ ‘8과1/2 우먼’ 등 국내에 이미 소개된 작품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영화를 문자와 숫자 놀음이 난무하는 게임과 퍼즐의 개념으로 풀어낸다. 그럼으로써 줄거리 자체를 공중분해해 버리는 극도의 형식주의를 보여준다. 검시관 매짓의 아들 스멋은 ‘송장되기 게임’ ‘위대한 죽음 게임’ 같은 해괴망측한 게임을 벌이면서 1에서 100까지의 숫자들을 스크린 속 여기저기에 차례로 숨겨놓는다. 관객이 숫자와 술래잡기를 하느라 좀체 이야기에 빠져들 수 없는 상태, 바로 이것이 괴짜 감독 그리너웨이가 노리는 지점이다.

하지만 아이러니다. 이렇듯 정신 사나운 영화의 줄거리를 막상 문자로 옮겨놓으면 아주 ‘섹시한’ 영화가 되어버리니 말이다. 이것도 감독의 노림수겠지?

이승재기자 sjd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