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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6월 3일 21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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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시라가 울렸다.
KBS2 주말 연속극 ‘애정의 조건’에서 변호사 남편에게 이혼당하고 여섯 살배기 아들까지 뺏기는 채시라. 화제의 장면은 채시라가 헤어질 아이에게 정을 떼려고 회초리를 들다 숨넘어가도록 흐느끼는 대목으로 5월 30일 방영됐다.
잠든 아이의 종아리에 약을 발라주던 채시라.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주저앉아 “꺼억 꺼억” 울며 가슴을 쥐어뜯었다. 이 장면이 방영된 뒤 ‘애정…’ 인터넷 게시판에는 “나도 울었다”는 글이 1000여건 넘게 이어졌다.
서른여섯 살 동갑내기 탤런트 채시라와 최진실의 연기대결로 관심을 모은 KBS와 MBC(‘장미의 전쟁’)의 주말극 경쟁은 KBS 우세로 굳어지고 있다. 채시라가 최진실을 울린 것이다.
● 채시라 박수 받고 최진실 눈총 받고
지난 한달동안 ‘애정…’은 시청률 24.6%를 기록해 ‘백만송이 장미’(KBS1)와 ‘불새’(MBC)에 이어 드라마 부문 시청률 3위를 기록했다. ‘장미의 전쟁’ 시청률은 ‘애정…’의 절반 가까운 12.2% (TNS미디어코리아 자료).
3월 20일 첫 방송 때만 해도 ‘애정…’(20.2%)과 ‘장미…(18%)’의 시청률은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이후 두 달 동안 ‘애정…’은 상승세를 탔고 ‘장미…’는 추락했다. 네티즌들은 ‘애정…’이 뜨는 이유는 채시라 덕이고 ‘장미…’가 미끄러지는 것은 최진실 탓이라고 한다.
“채시라씨 보러 주말마다 TV 앞에 앉아 있어요.”(‘위운아’)
“엄마랑 엉엉 울면서 보고 있습니다.”(‘이성호’)
‘애정…’의 제작진도 채시라의 신들린 연기에 놀라고 있다.
이에 반해 ‘장미…’ 사이트 게시판에는 최진실의 연기를 비난하는 글이 많이 올라온다.
“애정의 조건은 채시라 땜에 살고, 장미의 전쟁은 최진실 땜에 죽는다.”(‘김상모’)
“식상하다. 변신 좀 하라.”(‘이평희’)
“경쟁 드라마 주인공이 최진실로 확정됐을 때 걱정이 많았다. 그런데 채시라의 연기가 무르익었다는 느낌이다. 아이와 정 떼는 장면을 찍고 나서 우리도 펑펑 울면서 기립박수를 쳤다. 처음에는 젊은 배우 한가인과 극중 비중이 반반이었는데 나중에 채시라의 비중을 높였다.”(‘애정…’ 조연출 이상욱)
● 채시라가 최진실을 이긴 이유
채시라와 최진실의 엇갈린 희비는 ‘캐릭터 결정론’과 ‘배우 연기론’으로 분석되고 있다.
“채시라는 캐릭터 덕을 보고 있다. 최진실의 팬도 여전히 많지만 채시라의 극중 역할이 더 흡인력 있다. 채시라 역을 최진실이 맡았더라도 반응이 좋았을 것이다.” (MBC 관계자)
‘애정…’에서 집 밖에 모르는 주부가 이혼 전문 변호사 남편에게 이혼 당한다는 설정이 동정표를 산다는 분석이다. 시청자들은 “21세기에 웬 신파냐”라고 비난하다가도“이혼을 생각한 적이 있다”고 공감한다. 시청자 박상호씨는 “신파는 여전히 삶의 일부다”라고 고개를 끄덕인다.
최진실의 극중 배역인 오미연은 산부인과 의사로 회사원 남편(최수종)을 쥐 잡듯 잡는다. 시청자들은 “현실과 동떨어진 상황 설정이다”(‘조규영’) “실제로 남편한테도 그런 것 아니냐”(‘서미석’)며 반감을 보인다.
‘배우의 연기’를 잣대로 두 탤런트의 희비에 대한 분석도 나온다.
“채시라의 연기는 원숙해지면서 시청자들의 공감을 산다” “최진실은 중년에 따른 연기변신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그것.
대중문화평론가 강명석씨는 “로맨스의 주인공만 맡았던 채시라는 SBS 드라마 ‘여자만세’(2001년)에서 남자에게서 버림받는 노처녀 연기를 하면서 30대에 어울리는 캐릭터를 찾아간 반면 최진실은 여전히 로맨틱코미디의 깜찍한 주인공이 되려 한다”고 말했다.
최진실은 결혼 후 첫 출연작인 MBC 드라마 ‘그대를 알고부터’(2002년)에서도 연하남의 구애를 받는 조선족 처녀로 나왔으나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나 드라마 한두 편으로 탤런트의 연기생명에 대한 판단은 이르다는 지적이 많다.
“특정 배우에 대해 한물갔다고 하면 절대 안 된다. 배우는 선택받는 존재다. 황신혜나 조재현처럼 좋은 작품과 감독에게 선택돼 언제 부활할지 모를 일이다.” (김성덕 영화감독)
이진영기자 ecolee@donga.com
사진=김미옥기자 sal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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