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피플]신기록 행진 '실미도' 시나리오 작가 김희재씨

  • 입력 2004년 2월 9일 17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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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영화 사상 최초로 단일 영화 관객 1000만명 돌파를 앞두고 있는 영화 ‘실미도’의 작가 김희재씨. 이훈구기자 ufo@donga.com
국내 영화 사상 최초로 단일 영화 관객 1000만명 돌파를 앞두고 있는 영화 ‘실미도’의 작가 김희재씨. 이훈구기자 ufo@donga.com
“난 목숨 걸었습니다. 김 작가도 목숨 걸 겁니까?”

‘실미도’의 시나리오 작업이 한창이던 2000년 12월. 연출자인 강우석 감독은 ‘농담반 진담반’으로 작가에게 이런 말을 던졌다.

국내 영화 사상 최초로 단일 영화 관객 1000만명을 넘보고 있는 이 작품의 작가는 30대 중반의 여성 작가 김희재씨(35). “그 자리에서 같이 죽겠다고는 하지 않았지만 죽을 각오로 썼다”는 게 그의 대답이다.

가녀린 그의 손끝에서 국가 권력에 의해 벼랑 끝에 내몰린 북파 부대원들을 그린 작품이 탄생했다는 것은 의외였다. 차라리 그의 시나리오 데뷔작인 멜로 영화 ‘국화꽃 향기’라면 “정말 어울린다”며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작가 대신 배우를 하라”는 ‘아부성’ 칭찬을 곧잘 듣는다는 그는 연출 전공이지만 한양대 연극영화과 재학 시절 엉겁결에 TV 드라마 ‘토지’의 서희 역 오디션에 참가하기도 했다. 강인찬 역의 설경구는 대학 동기다.

“이재수의 난과 실미도 사건은 오래전부터 꼭 한번 다루고 싶었던 소재였습니다. 그런데 이재수의 난은 박광수 감독이 영화화했고, 실미도도 영화로 만들어진다고 해 나와는 인연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기회는 갑작스럽게 다가왔다. 평소 친분이 있던 ‘실미도’의 조감독에게서 강 감독이 만나고 싶어 한다는 연락이 왔다. 이미 작가 6명이 물러난 상태였다. 만족스러운 시나리오가 나오지 않자 강 감독은 ‘작품을 엎어버릴까’ 심각하게 고민하던 시기였다.

그 자리에서 강 감독은 “‘국화꽃 향기’만큼만 써 달라”고 했다. 얼마 뒤 김 작가는 A4용지 4장 분량의 제안서를 제출했고 ‘실미도’의 7번째 작가가 됐다. 극 중 “이 칼 나라를 위해 다시 잡을 수 있겠나” 하는 최재현 준위(안성기)의 대사가 강 감독을 사로잡은 것.

“난 ‘실미도’를 이름으로 상징되는 정체성의 문제를 담은 작품으로 생각합니다. 그들은 왜 도망치지 않고 죽음을 선택했을까? 영화 속에서는 버스에 이름을 남기는 것으로 표현되죠. 무엇을 위해 목숨을 건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작가 자신도 실화를 소재로 한 이 작품의 폭발력은 인정했지만 이처럼 큰 반향을 얻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개봉에 앞서 배우들과 제작진이 모인 자리에서 있었던 에피소드. 관객 수 알아맞히기 내기를 했다. 설경구는 999만, 강 감독은 1001만, 김 작가는 딸 서연양(13)의 생일을 떠올리며 1026만을 적어냈다.

“내가 쓴 숫자가 맞는다는 의미보다는 집단최면에 걸린 열정의 표시였죠. 흥행에 대한 욕심 말고도 의미있는 작품인 만큼 1000만 이상의 관객, 다시 말해 많은 사람이 봐주면 좋겠다는 선한 희망이 담겨 있었습니다. 내기에서 누가 이길지는 아직 모르죠.”(웃음)

이어 그는 정부가 684부대원에 대한 말살 명령을 내렸는지 여부, 극중 최재현 준위의 피살 장면과 강인찬의 생존설 등 영화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 다른 해석을 내렸다.

“‘실미도’는 영화지 다큐멘터리가 아닙니다. 정부는 이미 한 집단에 대한 약속을 저버렸고 당시 부대원들은 주민등록이 말소된 상태였습니다. 말살 명령에 대한 기록을 아직 찾지 못했다지만 큰 차이는 없다고 봅니다. 여기까지가 영화의 몫이고, 정확한 진상규명은 책임 있는 자들의 몫이 아닐까요?”

그는 만화가 이현세 박원빈의 스토리 작가로 활약하기도 했고 현재 공군정보장교 출신인 남편 이효철씨(42)와 함께 온라인상에서 스토리 제공과 컨설팅을 하는 ‘베네딕투스’를 운영하고 있다.

김갑식기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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