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태양의 남쪽’엔 아련한 추억이…

  • 입력 2003년 9월 25일 18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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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만난 연희(최명길·왼쪽)와 성재(최민수)가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고 있다. 중장년층 시청자의 감성을 자극했다는 평을 받고 있는 SBS 주말드라마 ‘태양의 남쪽’. 사진제공 SBS
우연히 만난 연희(최명길·왼쪽)와 성재(최민수)가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고 있다. 중장년층 시청자의 감성을 자극했다는 평을 받고 있는 SBS 주말드라마 ‘태양의 남쪽’. 사진제공 SBS
SBS 주말 드라마 ‘태양의 남쪽’이 ‘신파조’의 멜로로 중장년층을 흡인하고 있다. 16부 작중 8부작까지 방송된 이 드라마의 20, 21일 시청률은 22.9% (닐슨미디어리서치 조사)로 주간 시청률 9위에 올랐다. 드라마 중에서는 네 번째.

시청층은 여성 40, 50대와 남성 50대다. 이들의 시청률은 13.41%∼24.73%인 반면 20대 여성의 시청률은 6.76%에 불과하다.

‘태양의 남쪽’은 최근 시청률 1위를 달리고 있는 KBS2 ‘노란 손수건’ 등 멜로드라마 바람을 타기도 했지만 이보다 더‘아날로그적 신파’를 보여주고 있다는 게 특징이다. 특히 SBS는 10월 4일 시한부 인생을 사는 아내의 곁을 지키는 ‘착한’ 남자를 다룬 김수현 극본의 최루성 주말극 ‘완전한 사랑’을 첫 방송할 예정이어서 신파조 멜로드라마 바람이 불 것으로 보인다. ‘태양의 남쪽’이 지닌 인기코드를 분석해본다.

▽아날로그적 ‘편지’=이 드라마의 주 시청층은 중년 여성이다. 김은숙 작가는 “모든 중년 시청자들이 가지고 있을, 연애편지를 쓸 때의 아릿한 경험을 편안하게 자극한 것 같다”고 말했다.

감옥에 갇힌 성재(최민수)가 떠나기 전의 41세 동갑내기 약혼녀 민주(유선)와 면회하며 나누는 마지막 대화는 특히 애틋하다. “우울해 하지 말고, 밥도 더 많이 먹고, 더 많이 웃고. 민주야, 그래야 내 맘이 편해.”(성재) “내가 오빠 많이 사랑하는 거 알지?”(민주) “알아. 그래서 더 미안하다. 너 이렇게 만들어 놓고도 그 사랑 받고 있어서.”(성재)

옥살이 하는 성재와 메마른 남편에게 버림받아 ‘감옥 아닌 감옥’ 생활을 하고 있던 연희(최명길)가 자기가 놓인 상황과 반대되는 ‘거짓’ 편지를 주고받는 대목은 e메일이 난무하는 이 시대에 기다림과 사랑의 의미를 일깨운다는 분석이다.

“만선의 깃발을 올리고 돌아올 때, …작업을 마치고 땀으로 온몸이 흠뻑 젖어 있을 때…, 그 행복으로 또 하루를 삽니다. 여기선 시간이 파도처럼 흘러갑니다.”(성재) “결혼한 지 8년입니다. 그래도 여전히 남편은 내 손을 잡고 산책하는 걸 좋아합니다. 그런 남편을 볼 때마다 세상엔 변하지 않는 사람도 있구나, 고마운 생각이 듭니다.”(연희) “나는 자유롭습니다.”(성재) “나는 행복합니다.”(연희)

연희가 남편의 젊은 여자에게 체념한 듯 내뱉는 말도 중년 여성의 심리를 제대로 자극했다는 평가. “결혼해 보니까 그래요. 남자보다 여자 인생이 더 질척해요. 결혼도 하기 전에 미리 질척해지지 말아요.”(연희)

▽아날로그적 캐릭터=등장인물들은 △배신당하는 남자(성재) △배신하는 남자(용태) △버림받은 여자(연희) △희생하는 여자(민주) 등으로 역할의 선악 캐릭터가 뚜렷하다. 최민수의 경우 배신한 친구에게는 짐승처럼 날선 복수심을 불태우고, 운명적 여인과의 사랑에서는 한없이 부드럽고 약한 연기를 보여준다.

최민수 최명길과 더불어 연극배우 출신인 유선(민주) 등 차분한 중저음을 보여주는, ‘오디오가 강한’ 배우들이 운명적인 사랑의 주인공으로 대거 출연한 것도 중년여성 시청자들의 소녀적 감성을 부채질했다는 지적이다.

▽아날로그적 작가=이 드라마의 작가는 역설적이게도 30대 초반의 여성 김은숙 강은정씨로 두 사람 모두 데뷔작이다.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97학번 동기인 이들의 실제 삶도 아날로그적이다. 대학 내내 시와 소설을 공부한 이들은 휴대전화의 문자 메시지도 사용하지 못한다. 컴퓨터도 ‘타자기’ 수준으로 사용한다. 냉장고의 기능 중 유일하게 사용하는 것은 ‘온도 조절’ 기능일 정도다.

이승재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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