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처녀들의 저녁식사’ ‘눈물’ 이후 ‘바람난 가족’은 임상수 감독의 세 번째 작품이지. 그런데 모두 공통점이 있어. 성에 대한 직설적 담론, 욕설, 폭력 등이 담겨 있거든. 이번엔 폭력 부분은 줄어든 것 같은데 직설적 표현으로 사회적 금기를 깨겠다는 의도는 일관되게 유지되고 있어. ‘처녀들…’ ‘눈물’에선 긴가민가했지만 이번 영화를 통해 임상수 영화에 금기를 깨는 도발성은 있지만 홍상수 영화가 주는 통찰이 없다는 점은 확신하게 됐어. 인생이나 사회에 대한 통찰 같은 거 말이야. 그게 한계지.
심=당신은 나보다 더 부정적으로 봤네. 난 긍정적으로 보긴 했지만 아쉬운 점이 있어. 이번 영화를 보면서 임상수 영화의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을 발견했지. 그가 사회적 금기를 깬다는 점은 맞는데 그게 개인적이 아니라 집단적이라는 점이 특징이야. 임상수 영화에서는 ‘처녀들’이 식사하고 ‘아이들’이 본드를 하거나 가출하고 ‘가족들’이 바람을 피우지. 홍상수 영화는 철저히 개인적이거든. 나 혼자 하는 일은 고독하고 실존적 문제야. 임상수는 집단적 일탈을 통해 어떻게 보면 ‘이렇게 살아도 된다’는 슬로건적 성격을 드러내지. 개인적 욕망보다 사회적 함의를 영화에 집어넣는 것이 그의 강박이야. 자신의 영화가 사회적 현상으로 비치는 것을 바라는 것, 그게 변치 않은 점이지.
남=변한 건?
심=죽음의 문제를 처음 꺼냈다는 점이야. ‘몸’의 문제는 ‘처녀들…’에서도 다뤘지만 이번에 보다 가시화했어. 그런데 왜 이 시점에서 죽음의 문제를 꺼냈는지 의문이야.
남=몸이 중요한 포인트라는 건 올바른 지적이야. 하지만 마지막 부분에서 문소리가 섹스하면서 우는 장면은 입장 차이도 있겠지만 몸이라는 주제보다 슬픔과 연관된다고 생각해. 거의 유일하게 진실한 관계를 맺었던 아들마저 죽고, 남편과는 완전하게 멀어지고, 출구를 찾기 위해 원조교제처럼 고등학생과 섹스를 하고. 그렇게 쌓인 슬픔의 응어리가 터져 나오는 거지.
심=그건 단지 슬픔의 배출이라고만 받아들이기 힘들지. 당신도 알지 모르겠는데, 호정이란 인물은 ‘처녀들…’의 세 여자를 한꺼번에 녹인 것 같아. 그 영화에서도 산을 잘 타는 순이가 나오지. 또 ‘남자를 거문고 타듯 눕혀놓고’ 절정을 오르는 연이의 모습도 담겨 있어. 호정이의 마지막 오르가슴은 결국 여러 우회로를 거쳐 자기 자신을 찾아내는, 다시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을 알아내는 거야. 그 방법이 성을 매개로 한 거지. 하지만 너무 작위적이야. 여자들이 세상을 아는 방법이 꼭 자궁, 성을 통한 것만은 아니거든. 남자 감독들은 여자들이 오르가슴을 통해서만 세상을 알아간다는 확신을 갖는 것 같아.
남=남자들의 판타지일 거야.
심=여자도 머리로, 가슴으로 세상을 알아간다고.
남=죽음 얘기를 마저 해보자. 첫 장면에서 영작이 차를 타고 가다 도로에 죽어 있는 개를 발견하고 치우잖아. 이어 찾아간 곳은 6·25전쟁 때 학살당한 양민들의 유골 발굴지야. 아버지는 간암으로 죽고, 결정적으로 그나마 가족이 지탱할 수 있는 구심점 역할을 했던 입양한 아들도 어처구니없이 죽지. 사소한 죽음, 역사적 의미를 부여할 죽음, 상징적 의미가 있는 죽음들 사이에 어떤 일관성이 있는지 모르겠어. 감독에게 의도가 있었다면 분명 실패한 거라고 생각해.
심=아니지, 충분히 의미 있는 시도였어. 그건 바로 감독이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혈통주의와 작별을 고하려는 의도 같아. 영작의 집은 부계 혈통이 완전히 끊겼으니까 조선시대 같으면 통곡할 상황이거든. 감독이 영작을 찍을 때 여러 앵글로 다른 사람보다 깊게 다루지. 영작이 갖고 있는 외로움 불안감 등을 관객들에게 전달하기 위해서지. 그런 면에서 영작이 유골과 마주 대한 장면은 여러 의미가 겹쳐 있어.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죄, 또 영작이가 범한 죄를 뜻하는 거지.
영작이 젊은 여자들하고 바람을 피우잖아. 한국 남자들의 특성이 뭔 줄 알아? 늙어가고 죽어간다는 현실을 거부할 때 몸보신하고 젊은 여자들을 찾거든. 변호사든 뭐든 일반적 관습을 답습하는 거지.
남=제목처럼 가족이 해체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중심인데 바람피우는 것이 가족해체의 원인인지, 아니면 그 반대인지 분명치가 않아. 내가 보기엔 내적으로 이미 해체과정을 거치면서 ‘바람’이라는 행동으로 표현된 거야. 그런 설명은 빠뜨린 채 영화는 그냥 ‘바람’을 피운다고만 설정했어. 모든 가족은 저렇게 해체될 수밖에 없다고 지나치게 일반화한 거지. 그건 임상수 영화가 집단을 등장시켜 슬로건을 얘기하려 한다는 지적과도 통해.
심=사실 구성원 중 일부가 바람을 피울 순 있지만 온 가족이 바람난다는 상황은 보기 힘들잖아. 감독은 극단적 상황을 통해 적극적으로 자기 의견을 개진하는 화법을 택한 거야.
남=진실을 전하기보다 자극이나 센세이셔널리즘을 추구한 거겠지. 그래서 임상수 영화는 불편해.
심=그게 도발이지. 관객들이 불편을 느낀다면 역설적으로 임상수의 도발은 성공한 거야. 그렇게 함으로써 당신을 포함한 한국 남자들이 여자들의 삶에 필요 없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거지.
이번 영화가 임상수 영화 중 가장 잘 만든 것 같아. 에둘러 말하지 않는 통쾌함이 좋았어. 특히 감독이 문소리 황정민 윤여정 같은 연기 잘하는 배우들을 만나 자신이 얘기하고자 하는 것을 잘 전달했어.
남=나도 문소리가 이 영화를 지켜냈다고 생각해. 대개 배우를 보면, 그 배우가 이전에 맡았던 역할이 떠오르잖아. 배우가 배우로서 느껴지면 사실주의 연기에선 실패한 거지. 문소리의 연기를 보면서 ‘오아시스’가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거든.
심=마지막에 영작이 호정을 찾아가 ‘내가 애 키울 게’하며 급진적인 척하잖아. 그런 장면들을 보면 감독이 머리로 영화를 만들었다는 확신이 들더라고. 사실 그럴 수 없잖아. 내면까지 도발이 안 되는 게 임상수 영화의 맹점인 것 같아.
남=이 영화는 여성들 편에 서서 얘기하는 것 같지만, 진정성이 없어. 그냥 이런 식의 세상도 있어. 너무 보수적으로 굴지 마. 그런 정도 얘기지. 그런데도 마치 약자들의 편에 선 것 같은 제스처가 문제야.
심=맞아. 성지루가 아이를 죽인 뒤 ‘내 월급이 60만원이야’ 하고 외치고, 부인이 애를 업고 와 영작에게 사과하는 장면이 불편했어. 왜 그렇게 오버하는 거지. 그들 얘기 하고 싶으면 그들 속으로 들어가야지. 임상수가 속한 세계는 성과 질펀한 디오니소스적 세계야. 거기에 왜 약자들에 대한 시선을 장식처럼 집어넣으려고 했는지 이해가 안 돼.
페미니즘을 표방하지만 페미니즘 영화는 아니야. 머리로 여자를 아는 한계를 드러내는 장면이 꼭 나오거든. 텅 빈 체육관에서 섹스하면서 문소리가 우는 장면도 그래. 여자가 고등학생한테 몸 한 번 주면서 그렇게 울 것 같진 않아. 오히려 진정으로 사랑하는 남자의 품에서나 울까. 그는 결코 여성의 시선을 알지 못해.
남=그래서 임상수의 눈물은 ‘악어의 눈물’이지.
정리=고미석기자 mskoh119@donga.com
▼토론 관전기▼
총알처럼 빠르게 쏘아붙이듯이 말하는 아내와 하나도 급할 것 없는 듯, 느긋하게 뜸들이며 응수하는 남편. 대담을 마치고 두 사람은 일상적 대화를 이어갔다.
남=오늘 인터뷰 갔다왔다며?
심=남궁원씨를 만났는데 50대처럼 보이더라. 진짜 그레고리 펙을 닮았더라고. 만약에 그렇게 멋있는 남자를 젊은 시절에 만났다면 남편이고 애고 다 때려치우고 바람나겠던데(웃음).
남=근데 ‘바람난 가족’에서 일상을 잘 포착한 장면들이 있었어. 호정이 다리를 변기 위에 올려놓고 이 닦는 장면에선 ‘당신이랑 똑같은 사람도 있네’ 하고 생각했지.
심=난 호정이 바람피우고 나서 아이스크림 우적우적 먹는 장면이 제일 명장면인 것 같아.
남=이 영화에서도 마지막에 여주인공이 섹스하면서 울잖아. 스파이크 리 감독의 ‘25시’를 보면, 이런 대사가 나와. 세상에는 두 부류의 여자가 있다. 섹스하면서 우는 여자, 울지 않는 여자.
심=그걸 다른 말로 하면 쾌락을 아는 여자와 불행을 아는 여자가 있다는 뜻이지. 당신이 어떤 여자랑 사는지는 상상에 맡기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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