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V속 '위기의 남자'
-TV를 이리저리 돌리다 우연히 이 드라마를 봤어요. 라면이 불은 것도 모르고 이 드라마에 몰입한 거 있죠. 요즘 어디가나 이 드라마 얘기 안하는 사람이 없어요.
-황신혜씨 연기가 압권이에요. 전에는 연기 잘 못한다고 생각했었데…. 금희 역할이 가장 공감할 수 있는 캐릭터라서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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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동주(김영철)도 이해가 돼요. 첫사랑에게 끌리는 건 자기 부인보다 더 멋져서 그런 것만은 아니거든요. 아내는 곧 생활을 의미하니까, 비루한 생활에서 벗어나고픈 욕구가 그렇게 표출되는 거죠.
-부부 작가가 쓴다죠? 그래서 그런지 한쪽을 일방적으로 편들지 않는 것 같아요. 지금까지 불륜을 다루다보면 바람 핀 쪽이 무조건 ‘죽일 놈’으로 그려졌잖아요. 물론 동주의 행동이 옳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해는 돼요. 내 얘기는 아니니까(웃음).
-그래도 2회에 동주와 연지(배종옥)가 잠자리를 한 건 성급한 전개였던 것 같아요. 드라마의 주제는 불륜이 아니라 이 시대의 힘겨운 남성이잖아요. 동주의 행동이 타탕성을 부여받을 시간이 좀 더 필요하지 않았을까.
# 현실 속 '위기의 남자'
-‘위기의 남자’문제가 제기된 계기는 외환위기 때입니다. 그 전까지는 ‘위기의 여자’가 사회적 문제였죠. 주부들이 우울증으로 아파트에서 뛰어내리는 일이 자주 있었잖아요.
-외환위기 이전에는 그래도 남자들이 가정을 뒤로 한채 뼈빠지게 일하면 사회적 보상이 있었잖아요. 그렇지만 이제는 뼈빠지게 부려먹은 뒤 ‘나가라’니까, 가정에도 사회에도 자기 자리는 없는 것처럼 보이죠.
-제가 아는 분은 대기업 간부였는데 주식 투자로 번 돈 10억원을 가족에게 주고 집을 나가버렸어요. 5개월동안 사라졌다 다시 나타났죠. 농촌에서 농사를 지었다나봐요. 돈만 벌어다주면 인간으로서 자기 존재의 의미가 없다고 느꼈던 것 같아요.
-주말 놀이공원에 가면 ‘위기의 남자’의 전형을 볼 수 있어요. 원숭이 쇼장 앞 벤치에 30, 40대 남자들이 죽 누워있더라고요. 아내와 아이들을 들여보내고 자신들은 쪽잠을 자는 거죠. 가정에 몰입할 수도, 방관할 수도 없는 모습을 보면 안쓰러워요.
-40대는 과도기 세대에요. 40대 이상의 남자들은 일을 더 중시하고 그 아래 남자들은 가정을 중시하죠. 요즘 40대는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해요.
-남자들은 고민을 나홀로 해결하려 해요. 하지만 여자의 교육수준이 낮은 것도 아니고, 얼마든지 부인과 대화를 통해 해결할 수 있어요. 모든 고민을 밖에서 해결하려 하니까 유혹에도 쉽게 넘어가고….
# 가정으로 돌아오라
-나이가 들수록 남자보다 여자가 대담하고 강해지는 것 같아요. 신혼땐 안 그랬는데 요즘 부쩍 남편이 많이 기대오는 것 같고. 전 그런 모습이 더 좋아요. 혼자 힘들어 하는 걸 곁에서 보고 있으면 너무 마음이 아프죠.
-가정의 중심이 아버지가 아닌, 자식인 것도 문제죠. 엄마는 아이 교육에만 매달려 가끔 남편을 귀찮게 여기기도 해요. 어떨 땐 남편이 일찍 돌아와 TV를 틀면 짜증나죠. 애들 공부에 방해될텐데…. 아내가 좀더 남편을 따뜻하게 맞아줄 필요가 있어요.
-그러고 보면 여자도 참 힘들어요. 아이와 남편, 모두 챙겨주느라 정작 자기 자신을 돌아볼 여유는 없죠. 결혼은 희생과 봉사인 것 같아요. 억울하다는 생각이들면 그건 이미 희생이 아니죠.
-남편도 아이와 친해지기 위한 노력을 해야할 것 같아요. 제가 아는 분은 스타 크래프트를 열심히 배워 아들와 함께 PC방에 간대요. 아들과 한 팀이 돼 경기하는데 아버지 기지가 위험에 처하자 아들이 자기 기지를 포기하고 아버지를 지원하더래요. 그때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였다고 해요.
나성엽기자 cpu@donga.com
김수경기자 sk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