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족, 그리고 아내
△김영철(이하 김)〓이 드라마를 찍으면서 ‘빵점 남편, 빵점 아빠’가 됐어요. 일주일을 꼬박 일에 매달렸고 집에 돌아와서는 사극의 감각이 무뎌질까봐 되도록 말도 안 했으니까.
△최수종(이하 최)〓그나마 하루 쉬는 일요일에도 가족에게 소홀했던 게 참 미안해요. 일요일 새벽에 촬영 마치고 돌아오면 축구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잠자리에 들었어요. 눈뜨면 바로 축구하러 나갈 수 있게.(그는 ‘일레븐’ 연예인 축구단 단장으로 축구광이다.) 아내가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고 하더군요.
△김〓그래도 드라마 찍으면서 가장 큰 힘이 돼준 건 가족, 특히 아내였어요.(아내 이문희는 탤런트로 활동하다 결혼 후 그만뒀다) 지방 촬영을 갈 때마다 옷가지 속에 편지를 끼워넣는 일을 잊지 않았으니까요.
△서인석(이하 서)〓너무 고생스러워서 이 드라마 끝내고 당분간 쉬겠다고 하니까 우리 아내가 그래요. “배우가 무대를 떠나면 안된다. 쉴 궁리 말고 열심히 하라”고. 무지 야속하대.(웃음) 하지만 냉정한 채찍질이 나를 여기까지 오게한 원동력이었어요.
△최〓둘째 아들이 태어난지 얼마 안돼 촬영이 시작돼 얼굴 볼 시간이 없었어요. 두 살배기 둘째가 나를 낯설어할 때 정말 가슴이 아팠죠.
김영철 |
빵점남편-빵점아빠 |
그래도 가족이 큰 힘 |
최수종 |
한동안 쉬고 싶지만 |
월드컵덕에 또 바빠 |
서인석 |
데뷔후 가장 힘들어 |
막상 끝나니까 허전 |
# 고생, 그리고 보람
△최〓매번 본드로 수염을 붙이고 석유로 지우는데다 하루 2∼3시간씩밖에 잠을 못자 피부가 말이 아니었어요.(가까이 본 그의 얼굴엔 기미와 검버섯이 피었을 정도다.) 왕건에 어찌나 몰입했던지 자다가 갑자기 대사를 외쳐 아내가 깜짝 놀란 적도 많았죠.
△서〓75년 데뷔 이래 이렇게 고생한 드라마는 처음이에요. 이 드라마 하면서 5년은 늙은 것 같아. 나중에는 연기가 아니라 ‘노동’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노동법을 위반해도 한참 위반했지.(웃음) 드라마가 성공을 못했으면 중간에 그만두고 싶을 정도였어요.
△김〓일주일에 세 번씩 삭발하지, 한쪽 눈은 안대로 가리고 있지…. 참, 나.(어이없는 표정) 지난해 5월 드라마에서 빠진 뒤 ‘태조 왕건’을 딱 세 번 봤어요. 출연자나 스탭들이 고생하는 걸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져서 볼 수가 없더라고.
△서〓그래도 한 초등학생 팬이 “목 쉬지 않게 조심하라”며 사탕 한 봉지를 소포로 보내왔을 땐 정말 연기할 맛이 나대요. 하도 선물이 많이 답지하니까 우체부 아저씨가 우리집 우편물만 따로 관리를 해줬어요.
# 권력의 맛, 그리고 현실
△서〓드라마이긴 해도 권력의 맛이란게 정말 달콤합디다. 내 한마디가 세상을 바꿀 수 있으니까. 비록 집에서는 아내한테는 꼼짝 못하지만.(웃음)
△김〓정치계로부터 간간이 ‘러브콜’도 받았지만, 극 중에서 누린 권력만으로 충분히 대리만족했어요. 뭐든지 ‘욕심이 화(禍)’인 것 같아요. 사회 모든 분야가 성장을 거듭했지만 정치수준은 아직도 제자리 걸음이에요. 국회에서 멱살잡고 싸우지 않고 좀 신사적으로 할 순 없나.
△서〓사심(私心)을 버려야 돼요. 요즘 정치 스캔들 하나 터지면 친인척이 줄줄이 잡혀들어 가잖아요. 현군(賢君)이 된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죠.
# 그 후
△최〓또 사극 하라면 전 못할 것 같아요.(일제히 고개를 끄덕인다) 적어도 지금은. 최대한 가족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요. 그런데 월드컵 때문에 쉴 시간도 없네요. 5월까지 해외 연예인 축구단과의 경기 일정이 꽉 짜여 있어요.
△김〓MBC 미니시리즈 ‘위기의 남자’에 출연할 계획이에요. 정통 멜로는 거의 처음인 것 같은데…. 궁예의 이미지를 벗어던질 때가 된거죠.
△서〓사람이란게 참 묘하죠. 이 고생 끝나기만 기다렸는데 막상 마지막 대사를 던지는데 너무 공허한거에요. 갑자기 실업자된 기분이고. 제의는 이곳 저곳에서 들어오고 있는데 아직 결정된 건 없어요.
그들은 가까운 시일 내에 아무도 없는 동굴에라도 들어가 ‘찐하게’ 소주 한 잔 걸치며 마음껏 ‘망가지자’고 약속했다. ‘평민’의 삶을 되찾은 그들은 당분간 소박한 행복에 젖어지내게 되겠지만 더 이상 ‘태조 왕건’을 볼 수 없다는 시청자들의 아쉬움은 꽤 오랫동안 지속될 것 같다.
김수경기자 sk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