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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8월 23일 19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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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전문 위성방송 채널V의 VJ인 버니 조(한국명 조수광·31·서울 용산구 동부이촌동).
‘프로페셔널’에 대해 다시 묻자 “겉은 ‘날라리’지만 속은
‘보수’인 사람”이라고 나름의 정의를 내놓았다.》
▽‘여피’ 또는 ‘부르주아’〓학벌로 보면 그는 ‘프레피’다. 미국 동북부의 7대 명문 기숙사립고교 중 하나인 그로턴(Groton)고교를 나온 뒤 다트머스대 정치외교학과, 캐나다 밴쿠버 필름스쿨을 졸업했다. 생활환경은 여피족에 가깝다. 한국으로 건너와 음악케이블 MTV의 PD로 3년간 일하다 얼마 전 VJ 활동을 시작했다. 프로그램의 기획부터 진행까지 맡아 해보려는 의지에서 비롯됐다.
부인은 싱가포르에 있는 3D 프로그램연구소에 근무하고 있다. 2달에 한 번 정도 얼굴을 보는 ‘기러기 부부’로, 아내가 일정한 직업적 성과를 낼 때까지 따로 살아야 한다. 대신 매일 밤 아내와 국제 화상채팅을 하며 적적함을 달랜다.
함께 사는 개 ‘클라이드’(달마시안 종)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쏟는 것을 보면 다분히 부르주아적 이미지가 흐른다. 개가 바깥으로 자유로이 드나들 수 있도록 일부러 아파트 1층에 산다. 조씨가 나가 있는 동안 외롭지 말라고 수족관도 실내에 설치했다. 물거품을 내며 노니는 열대어들을 보는 것이 개의 정서에 좋다고 보기 때문이다.

▽성실한 ‘보헤미안’〓회사 조직에 몸담고 있지만 근무형태는 자유롭다. 오전에는 재택근무로 컴퓨터를 이용해 자신의 프로그램 ‘서울 소닉’의 대본을 만들거나 그래픽디자인을 구상한다.
점심때부터는 회사에서 녹화를 하거나 아이디어 충전을 위해 사람들을 만난다. 누군가를 만나면 그 자리에서 PDA단말기를 사용해 연락처와 기본정보를 상대방의 PDA에 바로 전송하기 때문에 조씨는 명함을 휴대하지 않는다. 오후 6시부터 9시까지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스쿼시를 하며 몸을 가꾼다.
귀가하면 ‘바카디 에이트(8)’럼을 한잔 걸치며 CNN 경제뉴스와 이코노미스트, 뉴욕타임스, 국내 주요일간지 등을 인터넷판으로 꼼꼼히 챙겨본다. “세계 경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음악도 산업인데 저와 관련없는 분야라고 할 수 없죠.”
▽‘젊은 보수’를 지향한다〓가구를 배치할 때는 풍수(風水)에 신경을 많이 쓴다. “좋은 기(氣)를 받기 위한 것입니다.” 이 때문인지 그의 방은 헝클어져 있는 자취방 같은 분위기가 아니다. 소파나 장롱의 배치 하나 하나에도 다 이유가 있다.
화려한 겉모습과는 달리 그의 생활은 검소한 편이다. 미국이나 유럽 등지의 중고의류 시장을 자주 이용하는데 10∼30달러짜리 너절한 빈티지룩 티셔츠와 세미힙합 바지를 즐겨 입는다. 지금이야 그런 ‘보헤미안 룩’이 많이 보급됐지만 10년 전만 해도 ‘철없는 오렌지족’ ‘방종하는 X세대’라는 도매금이 매겨지기 일쑤였다.
조르지오아르마니와 구치 정장이 한 벌씩 있지만 입는 날은 1년에 손을 꼽을 정도다. “비싼 술집은 거의 가지 않습니다. 친구들이랑 바에서 간단히 한잔하는 정도죠.” 저녁에는 피자나 도시락을 배달해 먹는다.
조씨는 나름대로 한국인이란 정체성에도 철저하다. 그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의 배경세트에 ‘.’ ‘ㅏ’ ‘ㅓ’ 같은 한글 자음과 모음을 형상화한 그래픽을 만들어 넣었다. 대학 졸업논문으로 ‘남북통일을 위한 제언’을 쓰기도 했다.
“앞으로도 ‘건실한 직업인’으로 살 겁니다. 제 프로그램이 우리나라의 문화적 위상을 높이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다면 더욱 좋겠고요.”
<조인직기자>cij199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