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리뷰]"일밤" 게릴라 콘서트엔 게릴라가 없다?

  • 입력 2000년 10월 23일 11시 02분


한때는 <일요일일요일밤에>(일밤)를 안보면 다음날 친구들과 대화가 안되던 시절이 있었다. 몰래카메라에 속아 넘어가는 스타를 보며 웃고 양심냉장고를 받아가는 반듯한 사람들을 보며 흐뭇해했었다. 그러더니 얼마 전엔 <일밤>을 보면 다음날 대화가 안됐다. 드림팀 조성모가 높이뛰기 몇 m에 성공했는지, 대한해협 횡단이 잘 되고 있는지를 알아야지, 왠 <일밤>?

요즘 <일밤>의 '게릴라 콘서트'에 대해 말이 많다. 이름도 거창한 '게릴라 콘서트'란? 가수가 한 시간 동안 콘서트를 홍보해서 5000명의 관중이 모이면 공연을 할 수 있지만 5000명이 안 모이면 관중들이고 가수고 집에 가야하는 '모 아니면 도', '죽기 아니면 살기'식 콘서트다.

뭐, 재미있는 규칙이다. 나름대로 스릴도 있다. 5000명이 넘을 것이냐, 말 것이냐 초조하게 기다리는 스타의 얼굴이 클로즈업되고 무지하게 커다란 시계가 야속하게 흘러가는 시간을 혹시라도 못 볼까 친절하게 알려준다. 눈물까지 고인 스타의 얼굴을 보면 "참, 먹구 살기 힘든 세상이구나..." 싶다.

물론 '게릴라 콘서트'엔 좋은 점이 있다. 공연이 많지도 않은 현실에서 생각지도 않았던 스타의 공연을 가족들이랑 이웃들이랑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게다가 불우이웃까지 돕는다는데. 그야말로 일석이조가 아닌가?

하지만 5000명이 안되면 어떻게 되는건가? 기껏 공연 보러 갔는데 "저기요...4359명밖에 안와서요...집에 가세요..." 그럼 "아, 안타깝다. 641명만 더 왔더라면..."하면서 집에 가야하는 건가? 어느 마음씨 좋고 시간 남아도는 스타가 개망신 당할 것을 무릅쓰고 그런 무모한 도전을 할 것이며(프로그램에서도 늘상 강조하듯 5000명이란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그런 상황이 진짜 생길 거라고 생각하는 순진한 시청자가 아직 있을까?

동네 사람들보다 많아 보이는 고만고만한 학생들 모습에 놀라 "아니 이럴수가! 조성모의 팬들은 다 분당에 사는 것 같더니 핑클의 팬들은 일산에 몰려사나보네..."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이번 주 HOT 공연에는 하루 전에 팬클럽에 공지했음을 고백했다. 이게 무슨 게릴라 콘서트인가? 처음부터 5000명은 모이게 돼있고 한시간의 홍보는 그저 "사전 쇼려니..."하고 봐주는 것이다. 이래저래 팬들만 더 바빠지게 생겼다. 내가 사랑하는 스타 눈에 눈물 안나게 하려면 이 한몸 얼른 뛰어가서 머릿수 채워줘야 하니...

이러니 스타님들의 눈을 가리고는 몰려든 관객들에게 "쉿, 조용히 하세요..." 어쩌구 하는 게 다 그야말로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밖엔 보이지 않는 거다. 어차피 이 콘서트는 스타님들의 팬 동원력을 만방에 알리는 게릴라의 탈을 쓴 콘서트다. 아니 스타들이 팬들에게 뜻밖에 좋은 공연을 서비스하는 게 아니라 팬들이 스타님들의 눈을 가려놓은 채 "저희들, 이만큼이나 왔어요..."하고 깜짝 놀래켜주는 깜짝 선물같다. 물론 그 덕에 공짜로 스타의 공연을 구경하는 시민들에겐 좋은 일이겠지만...

예전의 <일밤>이 그립다. 예전엔 이렇게 속보이는 생쇼도, 먹을 것 가지고 장난치는 미녀들도 없었지만 <일밤>을 보며 기분좋게 일요일을 마무리했었는데...요즘 <일밤>은 "붕어빵엔 붕어가 없고 게릴라 콘서트엔 게릴라가 없다"는 허탈함만을 남겨준다.

조수영 <동아닷컴 객원기자> sudatv@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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