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만화]가사일 맡은 남편 이야기 '카지의 일기'

  • 입력 2000년 10월 17일 17시 01분


남편과 아내의 역할이 뒤바뀐 가족 이야기를 서정적으로 그린 만화 '카지의 일기'(시공사, 전3권)가 출간됐다.

회사 유도부원 카지는 경기가 나빠지자 회사에서 해고된다. 카지는 평소에 관심이 있던 가사일을 맡기로 한다. 대신 직장에 다니는 아내가 생계를 책임지게 된다.

큰 덩치에 어울리지도 않는 앞치마를 두른 카지는 의욕적으로 집안 살림과 육아를 맡지만 번번이 낭패를 당한다. 유치원생 딸의 행사를 깜박 잊어먹는가 하면 부주의로 음식을 망치기도 한다.

하루도 편할 날이 없지만 카지는 특유의 온순하고 낙천적인 성격으로 자잘한 일상사를 꿋꿋하게 해결해 나간다. 그 과정에서 카지는 조금이라도 마음이 위축될라치면 자신의 뺨을 치며 "힘차게 Go Go"를 외친다. 코믹한 그 모습에서 독자들은 서글픈 연민을 느끼게 된다.

반면 카지의 아내 요코는 빠듯한 경제사정으로 야근을 밥먹듯 한다. 돈을 벌어야 한다는 강박관념 탓에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도 줄어든다. 그런 아내를 위해 카지는 한 잔의 맥주로 아내를 위로한다.

작가 구라타 요시미는 이처럼 카지가 겪는 일상적인 에피소드를 토막내 가족애와 가정의 의미를 차분하게 부각시켜 나간다. 자식들을 교통사고로 잃고 홀로 사는 할머니가 등장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그 할머니는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카지를 호되게 혼내지만 카지네 식구를 서서히 가족으로 받아들인다.

요코가 밝게 웃는 가족의 얼굴을 보며 "가장 힘이 나는 것은 가족의 웃는 얼굴을 보는 것"이라고 독백하는 것에서 만화의 메시지는 더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작가는 물질만능의 현대사회에서 믿고 의지할 것은 가족뿐이라고 믿는 것이다.

구라타 요시미의 그림은 상,중,하로 출간되던 70년대 대본소용 소년만화와 닮았다. 예쁜 그림은 아니지만 인물 하나하나의 얼굴에 정감이 넘치고 편안하게 그린 듯하지만 갖가지 표정이 다양하게 살아있다.

'카지의 일기'는 가사에 관한 짭짤한 상식도 덤으로 선사한다. 냄비가 새까맣게 타버려 당황한 카지가 양파 껍질을 넣고 냄비를 삶아 깨끗하게 설겆이를 하는 과정을 통해 생활의 지혜를 소개한다.

방혜영<동아닷컴 기자>luc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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