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스타 PD'들, 잇달아 사표 쓰고 독립하는 사연은?

  • 입력 2000년 10월 15일 17시 02분


PD들이 방송사를 떠나고 있다.

MBC 드라마 <아줌마>의 연출자가 최근 장두익 PD에서 안판석 PD로 바뀌었다. 50부작을 기획했던 드라마가 아직 10부도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제작진의 사령탑인 연출자를 교체하는 것은 큰 사고가 나지 않는 한 없는 일이다. 교체의 배경은 장두익 PD의 프리랜서 준비 때문으로 알려졌다.

장두익 PD는 MBC가 자랑하는 평균 시청률 50%의 일일극 <보고 또 보고>의 연출자. 지난 해에도 류시원, 최지우, 박선영이 출연해 인기를 모은 <진실>을 연출하는등 드라마계에서 역량을 인정받고 있는 실력자이다.

방송사 PD들의 이직이 어제 오늘에 있어온 일은 아니다. 10년 전 SBS가 생겼을 때 많은 PD들이 신생 방송사로 이적을 했다. 그후에도 김한영, 김종학, 이진석, 정세호 등 히트 드라마를 만든 꽤 많은 PD들이 프리랜서를 선언하며 방송사를 나갔다.

그런데 최근 들어 PD들의 프리랜서 선언은 빈도도 잦아졌을 뿐 아니라 모양도 크게 바뀌었다.

요즘 경기도 일산 탄현에 있는 SBS 제작센터의 분위기는 꽤 뒤숭숭하다. 한창 연출에 물이 오른 차장급 PD들이 잇달아 회사를 떠나고 있기 때문.

노인들의 진솔한 모습으로 큰 인기를 모았던 <서세원의 좋은 세상 만들기>, '대한해협 횡단'을 시도했던 <뷰티플 라이프>를 제작한 이상훈 PD가 최근 사표를 내고 회사를 떠났다. 그는 예전에 '틴틴 파이브'와 신동엽을 발굴한 주인공. 예능 프로그램에 관한한 탁월한 '아이디어맨'으로 정평이 난 그는 모 제작사로부터 거액의 스카웃비를 받고 간 것으로 알려졌다.

또 얼마 전에는 드라마 <러브 스토리>를 제작했던 이강훈 PD가 역시 회사를 떠났다. 그는 자신보다 먼저 회사를 떠난 <미스터 Q> <토마토>의 장기홍 PD, 작가 송지나가 설립한 '인비넷'이란 독립제작사에 합류했다.

<줄리엣의 남자>를 연출하고 있는 오종록 PD 역시 이 드라마를 끝으로 독립할 것으로 알려졌다.

MBC는 이미 올해 초 시트콤의 대부로 꼽히는 송창의 PD가 국장직을 마다하고 방송사를 떠나 'JOY TV'란 코미디 전문 프로덕션에 몸을 담았다. 인기 높은 시트콤 <세 친구>는 그의 첫 프리랜서 히트작이다.

<국희>의 이승렬 PD 역시 드라마가 끝난 뒤 회사를 떠나 선배인 김종학 PD의 프로덕션에 합류했고, 빼어난 영상미를 자랑하는 황인뢰 PD 역시 지금은 독립 프로덕션의 공동 대표이다.

그외에 30대 주부 시청자에게 인기 높은 L PD도 조만간 독립한다는 이야기가 방송가에서는 거의 정설화되어 있다.

비교적 외풍에 덜 민감한 것으로 알려졌던 KBS에서도 젊은 드라마 연출자중 몇몇이 스카웃 대상에 올라 있다. 탁월한 이야기 솜씨로 네티즌들에게 '컬트 드라마'란 신조어를 만들어낸 P PD, CG와 같은 특수촬영의 귀재로 꼽히는 J PD, 현역 드라마 연출자중 가장 영상감각이 좋다는 Y PD 등이 한 대형 독립 제작사로부터 스카웃 제의를 받았다.

경제적 수입과 사회적 인식 면에서 '물좋은 직업'중 하나로 꼽혀온 PD들이 이처럼 방송사를 떠나는데는 급격한 방송환경의 변화를 꼽을 수 있다. 과거에 PD들이 프리랜서로 독립하는데는 상당한 위험과 고생을 각오해야 했다. 방송사처럼 탄탄한 조직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데다 외주 프로그램의 단가나 물량도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정부에서 정책적으로 외주 프로덕션 제작비율을 높이면서 방송사의 외주 물량이 크게 늘었다.

특히 웬만한 '품질'과 상품성만 갖출 수 있다면 굳이 방송사에 있지 않더라도 히트작을 만들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됐다. SBS의 <순풍 산부인과> <카이스트> <불꽃> MBC <왕초> <세 친구> <출발 비디오 여행>, KBS <병원기록 24시> 등은 모두 외주 제작사가 만든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갑자기 PD들이 직장을 박차고 나가는 현상을 단순히 외주 물량이 늘었다는 이유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그보다는 요즘 새로운 사업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돌풍이 더 큰 요인이라는 분석이다.

최근 인터넷을 필두로 한 미디어 산업이 주목을 받으면서 이른바 '컨텐츠'를 생산하는 엔터테인먼트 기업들이 급부상하고 있다. 벤처 열풍에서 돈을 모은 기업들이 새로운 수익모델로 방송 프로그램이나 영화, 음반, 인터넷 컨텐츠에 눈을 돌리면서 기존 제작사와 손을 잡거나 새로운 회사를 차리는 경우가 늘고 있다.

한 예능 전문 프로덕션의 경우에는 국내 굴지의 가수 매니지먼트사를 비롯해와 쟁쟁한 벤처기업 등이 투자자로 참여해 막강한 자금력을 자랑하고 있고, 방송을 비롯한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투자를 원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그 기업들의 상품이라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내는 PD들의 가치가 높아진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특히 방송사의 경직된 조직 속에서 자신이 거둔 성과만큼 대접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한 '스타 PD'들로서는 새롭게 등장하는 대형 외주 제작사들이 매력적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지금 방송가에서는 '누구는 몇 억을 받고 떠났다. 누구의 몸값은 10억원이 넘는다더라'라는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돌고 있다.

"어제는 A가 떠났다면, 오늘은 B가 떠나는 식이다. 외부로부터 그런 스카웃 제의 하나 못 받았다는 것이 오히려 부끄러운 상황이 됐다. 수십억원의 광고 수익을 거두는 히트작을 만든 PD로서는 밖에서 자신의 성과만큼 부를 거머질 수 있는 상황이 매력적일 수 밖에 없다" 자신도 최근 외주 제작사로부터 '러브콜'을 받았다는 한 PD는 '능력있으면 떠난다'는 것은 PD 사회에서 더 이상 낯선 말이 아니라고 한다.

아직 '프리랜서'를 선언한 PD들이 어떤 성과를 거둘지 판단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동안 모든 프로그램을 모두 자체 생산해 '여의도 공장'이라는 비판을 들어온 우리 방송사가 이제는 외국처럼 제작은 외부로 보내고 '보도, 송출 편성'만을 담당하는 구조로 급격한 변화를 걷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김재범 <동아닷컴 기자>oldfie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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