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드 인 홍콩」,닫힌 홍콩의 청춘 만가…來2일 개봉

  • 입력 1998년 4월 29일 08시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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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人類 新世紀 電映 第一號….’

눈치빠른 관객이라면 예고편의 화면에 쉴새없이 흐르는 암호같은 한자들 사이에서 영화 ‘메이드 인 홍콩’의 성격을 대충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기이한 운명의 식민지 홍콩이 중국에 합쳐지기 직전에 제작된 이 영화는 1백년만에 적자(嫡子)인 중국과 화해하게 된 서자(庶子) 홍콩의 우울한 현재를 담아낸 만가(挽歌)이다.

라디오방송을 통해 ‘홍콩의 젊은이들은 우리의 미래이자 희망’이라는 마오쩌둥(毛澤東)의 ‘말씀’이 홍콩으로 날아오지만 정작 홍콩 10대들의 미래는 밝지 않다. 탈출구가 봉쇄되어버린 듯한 숨막히는 도시의 공간, 닭장같은 아파트 사이에서 꿈꾸고 사랑하고 상처받는 홍콩 10대들의 쓸쓸한 모습이 마치 초상화처럼 이 영화에 담겨 있다.

이 영화의 유별난 점은 거의 모든 장면이 인공조명을 하지 않은 낮 장면이라는 것. 이는 저예산 독립영화의 한계를 장점으로 승화시킨 이 영화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

감독 프루트 챈은 94년 조감독 시절부터 틈틈이 모아온 8만척의 짜투리 필름으로 이 영화를 제작했다. 5명의 스태프는 모두 무보수로 일했고 출연 배우들은 홍콩의 길거리에서 즉석 캐스팅된 생짜 신인들이다.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1억원도 안되는 저예산으로 챈 감독은 홍콩 10대들의 초상을 아름답게 그려냈다.

스무살의 차우가 바라본 세상은 온통 모순투성이. 요란한 권위만이 남아있는 학교의 획일적인 제도도 실망스럽고 젊은 여자와 딴 살림을 차린 아버지도 증오스럽다.

폭력과 협박으로 일수금을 챙기는 왕형님의 해결사로 살아가지만 차우는 돈 몇 푼 때문에 흉악해지는 어른들의 세상을 이해할 수 없다. 그의 소망은 저능아로 늘 그를 따라다니는 고분 아롱과 시한부 인생을 사는 가엾은 소녀 핑을 지켜주는 것.

어느날 우연히 길거리에서 투신자살한 여학생 보산의 유서를 주운 뒤부터 보산은 이들의 삶에 깊이 투영된다. 보산은 왜 그랬을까. 사람들은 쓸데없이 왜 죽을까….

그러나 핑의 치료비 마련을 위해 청부살인을 하려다 실패한 차우는 핑의 절명과 마약운반책으로 이용당한뒤 살해된 아롱의 죽음을 알게 되고 그들을 위한 전쟁을 치르러 가면서 생각한다. 보산의 심정을 알 것 같다. 오죽 절박하면 죽음을 택했을까….

차우의 쓸쓸한 독백, 묘비 위를 뛰어다니면서 보산의 이름을 부르며 노는 이들의 모습은 보는 이의 가슴을 아리게 한다.

영화속 10대들의 미래에는 희망이 없지만 홍콩의 10대들은 이 영화를 통해 희망을 발견하는 듯하다. 홍콩의 중국반환이후 5월 26일 처음 열린 영화제 ‘홍콩 금상장’시상식에서 최우수 작품상과 최우수 감독상 최우수 신인상 등 3개 부문을 수상했다. 2일 개봉.

〈김희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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