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삭발」머리민 예술가들 『통쾌한 자기변신』예찬

  • 입력 1998년 3월 6일 07시 32분


최수진(左)-김수영
최수진(左)-김수영
“뒤통수가 예뻐야만 빡빡 미나요/뒤통수가 못 생겨도 빡빡 밀어요/그러나 주위사람 내 머리를 보고 한 마디씩 하죠/너 사회에 불만있니…”

인기그룹 DJ.DOC의 노래 한대목. 노래처럼 삭발은 기존 질서에 대한 저항인가. 새로움에 대한 강렬한 갈구인가….

보기에도 시원한 빡빡머리. 이들이 무용 연극 음악 미술판을 누빈다. 사연은 저마다 다르지만 그들은 입을 모아 삭발을 예찬한다. 얼마나 통쾌하고 즐거운 자기 변신의 수단인가를….

지난달 서울 문예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바뇰레국제안무대회 서울본선. 갑자기 객석에서 작은 탄성이 일었다. 출품작 ‘여행’에 맨 머리로 등장한 여자무용수 최수진(27)과 김수영(24). 경희대 무용과 선후배인 이들은 ‘삭발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안무자의 말 한마디에 화끈하게 일을 저질렀다. 단 한 번의 공연을 위해. 막상 당사자는 담담한데 남자친구와 가족들 설득하기가 더 힘들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이 헤어스타일을 고수할 생각이다. 춤출 때 거추장스럽지도 않고 얼마나 개성적인가.

무용계의 빡빡 머리 커플 박나운과 전인정. 성균관대 무용과 동기동창에 스물여섯 동갑내기로 카페 대학가 등 언더그라운드와 제도권 무대를 넘나들며 활동해왔다. 프로의 숙달된 기량에 아마추어적 실험정신을 조화시킨 춤이 목표라는 이들은 “목욕탕에서 만난 사람들이 합장을 할 때가 제일 괴롭다”고 고백한다.

삭발패션은 문화사적으로 볼 때 몸의 복권 움직임과 무관하지 않다.

몸은 이제 더이상 마음을 담는 그릇이 아니다. 몸 그자체다. 이런 시대 몸의 어떤부분도 예술의 대상일 수 있다.

지난달 서울 소격동 국제화랑에서 첫번째 국내 전시회를 가진 설치미술가 최정화(37). 머리는 윤기가 나도록 밀고 콧수염은 기른 독특한 외모는 ‘포스트모던풍의 키치’라는 그의 작품경향과 잘 어울려보인다. 그는 해외에서 먼저 알려졌다. 가슴시각개발연구소를 차려 ‘나쁜 영화’ ‘러브 러브’ ‘모텔 선인장’ 등의 영화에서 아트디렉터로 활동했고 몇몇 카페와 상품매장의 인테리어작업을 한 전방위예술가.

이들은 삭발을 왜 하는가. 유니섹스 유행에 편승하려고, 그렇지않으면 튀거나 인기몰이를 위해서. 그건 아니다. 그렇잖아도 허전한 뒤통수에 따갑게 꽂히는 시선들을 견디기 어려운데…. 이들은 그 시선들에 충분히 책임을 질 만큼 각분야에서 실력파로 통한다.

스스로 지은 호가 ‘그냥’인 괴짜 피아니스트 임동창(42)의 반들반들 윤이 나는 머리는 나름의 내력이 있다. 그는 피아노를 배우다 잠시 출가한 경험이 있다. 말못할 고민때문에 다시 머리를 민 것은 88년. 그때 국악을 익혔다. 그는 뜯어고친 피아노와 사물, 피아노와 퍼포먼스의 만남을 통해 국악과 양악, 세상의 온갖 잡소리가 어우러진 독보적인 음악장르를 만들어냈다.

‘원시인이 되기위한 벙어리몸짓’ ‘햄릿머신’ 등 80년대 중반부터 실험적인 1인극을 해온 연극배우 심철종(38). 그는 가발을 써야 하는 작품에는 절대 출연하지 않겠다는 과격파. ‘오구’에 저승사자역으로 출연하면서 머리를 민 연희단거리패의 김준배(30)가 뒤를 잇고 있다.

〈김세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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