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 그만…』
KBS1 드라마 「용의 눈물」에서 이방원 역을 맡은 유동근이 극중에서 곧잘 내뱉는 대사.
신하들의 상소나 중전 민씨의 요구가 집요하게 계속될 때 유동근은 귀찮다는듯 신음이 섞인 이 대사와 함께 고개를 젓는다.
드라마 속의 「용」 유동근은 요즘 밖에서도 괴롭다.
각 대선 후보진영이 「용의 눈물」의 대중적 인기와 드라마 속에서 이미 대권(大權)을 차지한 상징성을 감안, 그를 영입 「0순위」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유동근은 선거전이 본격화한 지난달 이후 각 캠프의 지지요청과 전화공세에 시달려왔다. 주요 정당만이 아니다. 그의 정치 입문설이 퍼지자 전화가 쉴새없이 울어댔다.
『후보를 지지한다는 데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유동근씨는 제발 정치하지 말고 연기자로 남아달라』
가까운 주변의 공세도 만만치 않았다. 국민회의 김한길의원의 부인이자 극중 중전 역의 최명길과 드라마의 「절대중립」을 주장하는 스태프의 눈길도 보이지 않는 「압력」이 됐다.
유동근은 5일 기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공인의 신분인 만큼 공개적으로 특정 후보를 절대 지지하지 않겠다』며 『유권자의 한 사람으로 투표소에서 한 표의 권리를 행사할 뿐』이라고 밝혔다.
지난 2일 한나라당 이회창후보를 면담한 것이 「특정 후보 지지설」로 이어졌지만 요청이 있다면 다른 후보들도 얼마든지 만날 생각이다.
「정치는 짧지만 연기는 길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만약 정치를 할 생각이 있었다면 좋은 조건을 제시한 정당을 골라 진작 입당했을 것이다. 정치보다는 좋은 드라마를 통해 팬들에게 기억되는 연기자의 길을 걷겠다』
그는 『시청자들이 「용의 눈물」에 보내준 뜨거운 성원에 답하는 것은 앞으로 남은 5개월간 좋은 연기를 하는 것뿐』이라며 『정치판에 기웃거리는 건 시청자에 대한 배신』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연예인의 정치활동을 반대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소신없이 반짝 인기를 틈타 정치에 입문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연기자는 좋은 연기자로, 정치인은 소신있는 정치인으로 제 갈 길을 갈 수 있는 풍토가 아쉽다며 『그만 그만…』하듯이 고개를 저었다.
〈김갑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