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텔 선인장」 17일 개봉…사랑의 「덧없는 윤회」

  • 입력 1997년 10월 17일 08시 01분


친구에게 『그건 이런 영화야』하고 소개할 때 가장 곤혹스런 부류가 「모텔 선인장」(연출 박기용)같은 영화다. 모텔 407호가 있다. 여관방은 그 방을 찾은 남녀의 이야기들을 불연속적으로 토해놓는다. 집착과 도피(여름), 설렘과 낯설음(봄), 상처와 그리움(가을), 쓸쓸함과 덧없음(다시 봄)의 기억들이 묘사된다. 사랑의 로맨틱함은 발붙일 곳이 없다. 첫번째 에피소드를 이끌어가는 정우성과 진희경은 처음부터 격렬한 섹스를 벌인다. 그러나 미련할 정도로 남자에게 집착하는 여자와 이기적 모습을 보이는 남자의 관계는 느리게 움직이는 카메라속에서 답답하게만 느껴진다. 섹스는 거리를 두고 묘사되며 어긋나기만 하는 대화는 도리어 강조된다. 채도를 낮추고 콘트라스트를 강화한 색감이 무거운 이미지를 준다. 봄의 공간에서는 영화를 찍으러 온 영화과 대학생 두명이 주인공이다. 실제 서울예전 학생들인 연기자들은 아마추어답게 두려움과 부끄러움을 잘 표현해냈다. 술집에서 시작되는 가을에는 지극히 현실적이면서도 몽환적인 이미지가 나타난다. 상처입은 남녀(박신양과 진희경)의 정사는 욕실의 젖빛 유리창 너머 고통스럽게 이어진다. 다시 봄에 나타나는 이미연과 박신양의 느낌은 돌이킬수 없는 사랑의 쓸쓸함, 망연자실함 같은 것들이다. 연인들의 끈적한 이야기가 진행될 것만 같던 공간에선 의외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단절과 고독이 자리잡는다. 영화에는 시간의 압축과 생략이 있고 이야기들을 짜맞춰보는 재미가 있다. 그리고 아시아에서 가장 주목받는 촬영감독 크리스토퍼 도일의 카메라는 한국의 연기자 감독 스태프들과 잘 어울린다. 영화는 분명 스토리 중심의 기존 한국영화 스타일을 벗어난다. 그러나 그 이미지와 느낌을 관객들의 공감을 얻을 만큼 또렷하게 드러내지 못한 것이 아쉽다. 제2회 부산영화제와 내년 샌프란시스코영화제에 초청됐으며 아트필름 배급사인 「포르티시모」가 세계 배급을 제의했다. 25일 개봉. 〈신연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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