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갈증」을 푼다…유머있는 아름다움 『만끽』

  • 입력 1997년 9월 26일 07시 35분


폴 그리머의 「왕과 새」
폴 그리머의 「왕과 새」
일본만화 「신세기 에반겔리온」을 보기 위해 현해탄을 건너는 젊은 마니아들. 만화영화제의 심야 상영에는 수천명이 몰려들어 밤을 새고야 말고, PC통신에는 애니메이션에 대한 갈증을 풀려는 동호회들이 폭발적 증가를 보이고 있다. 만화를 코흘리개 아이들의 「불량식품」 정도로 쳤던 어른들은 마침내 두손을 들었다. 정부는 만화산업을 21세기 정보화사회의 고부가가치산업으로 중점 육성키로 했으며 대학의 만화관련학과도 11개로 늘었다. 그러나…. 국내의 「애니마니아」는 「아니메 오타쿠」와, 「만화」는 「망가」와 동일어가 돼버렸다. 「세일러 문」이나 「은하철도 999」 등 인기 TV시리즈 역시 일본식 섹스어필과 폭력을 전도사처럼 퍼뜨린다. 이것이 전부인가. 만화 본래의 유머와 넉넉한 아름다움을 갖춘 작품은 없는가. 애니메이션의 뿌리는 무엇이며 영화와는 다른 애니메이션 고유의 영역은 어디인가. 29일부터 10월5일까지 서울 종로5가 연강홀에서 열리는 「97 동아·LG 국제만화페스티벌 애니메이션 영화제」는 이에 대한 해답을 준다. 동아일보사 주최 LG그룹 협찬. 2년전 프랑스의 유명한 「안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는 그해 사망한 폴 그리모의 특별전이 열렸다. 고고학자의 아들로 태어나 전세계 애니메이터들로부터 추앙받는 프랑스의 국민 영웅이 된 폴 그리모. 그의 대표작 「왕과 새」가 국내 첫선을 보인다. 1979년 제작된 이 장편 애니메이션은 프랑스 민중의 눈에 비친 사회를 신랄하게 풍자, 비판한 수작이다. 난폭한 군주 샤를 16세는 장난기 많고 수다스러운 새 한마리 때문에 항상 놀림을 당한다. 어느날 그는 예쁘고 착한 양치기소녀에 반해 강제로 결혼하려 한다. 그러나 굴뚝 청소부를 사랑하는 양치기소녀는 새와 함께 탈출한다. 경찰의 추격이 시작되는데…. 상영시간 83분. 이 작품은 애니메이션을 상업적 오락물로만 생각해온 사람들의 눈을 번쩍 뜨게 할 만큼의 위력이 있다. MBC방송아카데미 황선길교수는 『애니메이션은 독특하고 차별적인 방법으로 작가정신을 드러내는 예술 양식의 하나』라며 『강한 작가주의를 재미있게 표현한 폴 그리모의 작품은 모든 애니메이션 감독들의 꿈』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애니메이션의 원류는 무엇인가. 영화사가들은 에밀 콜의 1908년작 「판타스마고리」를 최초의 애니메이션으로 추정한다. 풍자화가로 출발해 애니메이션의 무한한 잠재력을 발견한 에밀 콜의 단편영화 「판타스마고리」 「클라크 남작의 모험」 「정말 귀엽기만 한 파우스트」 등이 역시 이번 영화제에서 국내팬들을 처음으로 찾아간다. 할리우드 SF에 젖은 영화팬들에게 유럽 공상과학만화의 정수를 보여줄 르네 랄루(프랑스)의 장편 「미개인 행성」과 「강다하」도 준비돼 있다. 역사로부터 현재와 미래로 나아가보자. 미국의 반대쪽에서 미국 오스카상까지 정복한 영국의 아드만 스튜디오가 있다. 최근 「월레스와 그로밋」으로 널리 알려진 아드만 스튜디오는 클레이(찰흙)애니메이션 전문. 잠들지 않는 어린이 눈에 모래를 넣는 귀신이야기를 그린 「샌드맨」은 93년 안시페스티벌 최우수 단편영화상을 받았다. 「샌드맨」과 「미로」 「극장 안내원의 고백」 등 아드만의 중단편모음이 상영된다.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사로잡을 만큼 재미있기로는 미국의 양배추인형 애니메이션도 빠질 수 없다. 밝고 웃음이 넘치는 뮤지컬 애니메이션 「클럽하우스」 「뉴키드」 「스크린 테스트」 등의 시리즈는 가족단위 관객들을 손짓한다. 새롬 엔터테인먼트가 수입해 일반극장개봉도 할 예정이다. 이밖에 △3차원 입체 장편 애니메이션 「톰섬의 비밀모험」(데이브 브루스위크 감독) △「꿈꾸는 종이인형의 살인」 「테너 가수」 등 공모전 수상작품 모음 △한국독립애니메이션 작가작품 특별상영 △세계애니메이션필름협회(ASIFA) 러시아회원 패도르 치트루크 우수작품선 △벨기에 헝가리 ASIFA회원 단편모음 등이 상영된다. 이제 사흘후면 국내 어떤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도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만화세상이 열린다. 〈신연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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