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 김종서 이승철 이승환이 메탈 그룹을 한다며 「음악 구걸」을 다니던 80년대 후반. 이들 무리 가운데 「반 뼘」 정도 낫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던 가수가 임재범(34)이었다.
그가 돌아왔다. 91년 「이밤이 지나면」으로 판매량 50만장이 넘는 성공을 거둔 뒤 돌연 자취를 감춘 지 6년만이다. 그동안 임재범의 복귀설은 록마니아들의 꾸준한 화제였다. 그의 보컬이 지닌 마력의 맛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
임재범의 새 노래는 「그대는 어디에」. 직접 작사 작곡했다. 노래를 다시 부른 이유.
『마무리가 안됐다는 느낌 때문입니다. 6년을 꼬박 헤매기만 했지 정리를 못했거든요. 그래서 임재범을 추억으로만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현실로 다가서고 싶었습니다』
「그대는 어디에」는 록발라드다. 그의 보컬은 여전하다. 메탈의 절규, 통기타의 포근함, 피아노의 공명 등이 어우러진 소리. 여러 개의 악기를 빨아들인 듯한 음. 고음을 내지를 때도 한 음에서 서너 가지의 소리가 갈라져 나온다. 댄스 음악이 주류를 이룬 90년대 들어 이 같은 목소리와 창법은 오랜만에 접하는 것이다.
새 음반의 첫곡 「비상」은 임재범의 자기 이야기다. 그는 『20대 후반의 소중한 열정을 까닭 모르게 「낭비」했지만 당시에는 어쩔 수 없었다』며 빙그레 웃는다.
「누구나 자기만의 세계로 빠져 들게 되는 순간이 있지/그렇지만 나는 제자리로 오지 못했어/나도 세상에 나가고 싶어…」(비상).
6년 전 임재범은 「도망」에 가깝게 가요계를 떠났다. 당시 방송가에서는 펑크를 자주 내고 고집도 턱없이 센 사고뭉치로 통했다.
『짧은 노래 하나라도 완벽하게 해야 하는데 방송의 형식은 그렇지 않았어요. 스케줄은 마냥 잡히고 그럴수록 무대는 무서워지고…. 또 철없는 마음에 내가 최고인 줄 알았고. 그래서 「도망」쳤어요』
지금의 모습은 예전과 다르다. 단정한 정장 차림에 가지런히 빗어 넘긴 말총머리. 유순한 미소와 간간이 나오는 재담.
『철들었지요』
임재범은 왕년의 명아나운서 임택근씨의 외아들. 그러나 부자지간의 이야기를 좀처럼 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가 돌아오는 길은 순조롭다. 한달만에 판매량이 5만장을 넘어섰다. 인기보다 무대에 서기를 초조하게 기다려 온 그는 10월 라이브콘서트를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인터뷰 말미에 남긴 몇마디가 여러가지 여운을 남긴다.
『다시 도망치고 싶은 병이 도질지 몰라요. 「끼」가 없는가 봐요. 무대는 여전히 낯설고. 깨끗하게 마무리가 되면 연예계를 떠나고 싶은데…』
〈허 엽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