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도세 감면해줄 때 美 주식 차익 실현하자”
vs “강남 아파트 팔고 지방 아파트 사라는 격”
전문가 “투자 리스크-제도 취지 고려 세밀한 접근”
2021년부터 미국 증시에만 투자한 직장인 구모 씨(35)는 최근 ‘부분 귀순’을 결심했다. 구 씨가 2021~2022년 매수했던 나스닥100 추종 상장지수펀드(ETF) 수익률이 100%를 넘겼기 때문이다. 구 씨는 증권사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을 켤 때마다 흐뭇했지만, 언젠가 매도할 때 부담해야 할 양도소득세가 늘 고민이었다. 구 씨는 “내년 초 ‘국내시장 복귀 계좌(RIA)’가 도입되는 즉시 미 증시 매도액을 옮겨 성장 전망이 밝은 국내 주식에 투자할까 한다”며 “미국 지수 투자는 계속 이어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반면 서울 양천구에서 자영업을 하는 한모 씨(39)는 미국 주식을 꽉 쥐고 있을 생각이다. 서 씨는 투자금의 절반은 알파벳(구글), 아마존, 테슬라 등 우량주에 투입하고, 나머지 절반은 공격적인 레버리지 ETF에 투자한다. 그는 올해 레버리지 ETF 매매로 2000만 원이 넘는 수익을 올려 300만 원가량의 양도세를 내야 한다. 서 씨는 “미장(미국 증시)에서는 세금을 내지만, 국장(국내 증시)에서는 원금을 잃는다는 말이 있다”며 “글로벌 우량주와 레버리지 ETF 모두 국내 증시에서는 대체재가 없다”고 말했다.
● “미 주식 팔라니, 강남 아파트 팔란 건가”
2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정부가 국내 증시에 복귀하는 서학개미에게 제공하겠다고 밝힌 양도세 한시 혜택이 뜨거운 감자다. 정부는 24일 ‘외환시장 안정 세제 패키지 대책’을 발표하며 23일까지 보유하고 있는 해외주식을 매각하고 환전해 국내 증시에 투자하면 양도세 비과세 혜택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국내 개인 투자자들은 올해 들어 미국 주식을 사들이는 데 적극적이었다. 한국예탁결제원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개인 투자자들은 국내 주식을 팔고 미국 주식을 사들였다. 개인 투자자는 올해 코스피에서만 24조9519억 원 순매도했는데, 특히 코스피가 3,100에서 4,100으로 오른 9월과 10월 17조 원 이상 순매도했다. 반면 올해 미국 주식은 327억4118만 달러 순매수했다.
이 때 해외주식 양도세가 서학개미들에게 ‘손톱 밑 가시’였다. 매년 거둔 매매차익 중 250만 원을 초과하는 금액에 대해서는 22%의 세금이 부과되기 때문이다. 이 제도는 국내 주식이나 주식형 ETF의 매매차익이 비과세라는 점을 고려하면 수익률을 갉아먹는 규제다. 때문에 연말이면 수익을 본 종목과 손실을 낸 종목을 판 뒤 다시 매수해 비과세 한도를 맞추거나, 배우자에게 한도까지 증여한 뒤 1년 뒤 매도하는 방식으로 양도세를 피해하는 투자자들이 많다.
이런 이유로 RIA 계좌를 적극 활용하겠다는 투자자들도 적지 않다. 회원 43만 명의 미국주식 커뮤니티에는 “장기투자로 수익률이 커진 종목을 매도하고 방산, 조선 등 성장성 큰 종목에 투자하는 것도 괜찮아 보인다” “안전한 국내 상장 단기채 ETF 등을 매수하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냐”는 등의 의견이 올라왔다.
다만 미국 증시를 국내 증시가 대체하기는 힘들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미국주식 투자자는 “미국주식 팔고 국내 주식 사라는 말은 강남 아파트 팔고 지방아파트 사라는 말과 비슷하다”며 “정부 고위관계자들부터 해외주식 팔고 국내주식을 사는 솔선수범을 보였으면 좋겠다”고 비판했다.
● 투자자 리스크와 취지 고려한 제도 설계 필요
정부가 외환시장 안정을 위해 강력한 조치를 잇따라 취하면서 세밀한 부분을 놓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더불어민주당 이소영 의원은 “정부의 대응은 더 차분하고 침착해야 한다”며 “양도소득세 감면이 단기적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하더라도 다른 계좌에서 국내주식을 팔고 해외주식을 사는 것이 가능하다면 조세 손실만 발생하고 실익은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RIA 계좌를 활용해 보유 중인 해외주식을 팔아 국내주식을 사고, 다른 계좌에서 국내주식을 팔아 해외주식을 다시 살 경우 포트폴리오 변동 없이 양도세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오고 있다.
정부가 발표한 개인용 선물환은 소비자 보호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직 구체적인 상품이 나오지 않았지만, 환헤지 상품의 경우 비용과 기회비용 모두 발생할 수 있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선물환 매도 상품은 상황에 따라서 손실이 날 수도 있는 것인데 어떻게 안전하게 설계할지 의문이고, 개인투자자들에게는 아직 생소한 선물 투자에 많이 뛰어들 것인지도 미지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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