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심, 완도 어가와 40년 동행
‘너구리’ 상징 다시마 조달
공급망 확보-지역경제 기여
두 마리 토끼 잡은 CSV 사례
전남 완도군 완도금일수협 다시마 위판장에서 다시마 경매가 진행되고 있다. 농심 제공
‘나야, 다시마.’
‘국민 라면’ 너구리를 상징하는 건 단연 큼직한 다시마 조각이다. 포장지를 열면 대번에 마주할 수 있는 너구리의 얼굴과도 같은 재료다. 바싹 말린 상태에서도 은은한 바다 향을 풍기며 존재감을 드러내고, 끓는 물 속에선 다른 라면과 확연히 구분되는 진한 해물 우동의 맛을 완성한다. ‘다시마 빠진 너구리’는 상상하기 어렵다. 우연히 다시마가 2개 들어간 제품은 소비자들에게 ‘행운의 너구리’로 불릴 정도다. 1982년 출시 이래 다시마는 이렇게 너구리의 핵심 정체성 역할을 해왔다.
전남 완도군 금일도의 한 어민이 농심의 대표 상품 ‘너구리’에 들어갈 다시마를 채취하고 있다. 농심 제공이 다시마의 고향은 전남 완도다. 농심은 너구리를 출시한 1982년부터 ‘다시마의 고장’ 완도군 금일도와 인연을 맺었다. 일조량과 바람 등 양식에 최적화된 조건을 갖춘 이 지역은 현재 국내 다시마 생산량의 70%를 책임지고 있다. 농심은 매년 400t 안팎의 다시마를 구매하는데, 올해까지 총 1만8000t의 완도산 다시마가 너구리 봉지에 담겨 소비자들을 찾았다. 너구리 출시 당시만 해도 일대 다시마 어가가 손에 꼽을 정도였지만, 이젠 금일도의 전체 600여 어가 가운데 380여 어가가 다시마를 기른다. 농심이라는 안정적인 판로 덕분이다. 농심과의 동행 속에 성장한 금일도 일대 어가는 더 나은 품질의 다시마를 공급하며 너구리의 맛을 끌어올리는 데 혁혁한 기여를 하고 있다. 기업과 지역이 함께 성장하고 진화하는 상생형 비즈니스 모델이다.
● 다시마 어가와의 동행
농심은 국내 대표 식품기업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동시에, 품질 좋은 핵심 원재료를 확보하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 지속 가능한 공급망(Sustainable Supply Chain)을 구축해 왔다.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가 동시에 만들어지는 구조다.
경영학자 마이클 포터와 마크 크레이머가 제시한 공유가치창출(CSV·Creating Shared Value)의 대표적인 사례로 볼 수 있다. CSV는 기업이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동시에 사회적 필요와 도전을 해결하면서 사회적 가치 또한 창출하는 것을 뜻한다. 본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가치를 어떻게 창출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춘다. 주로 자선 활동이나 환경 보호에 주안점을 두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투자자의 시각이 크게 반영되는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와는 구분되는 개념이다. 농심의 사례는 포터와 크레이머가 제시한 공유가치 창출 방법 가운데 △가치사슬 내 생산성 재정의 △지역 클러스터 개발 두 가지 측면으로 살펴볼 수 있다.
올해 5월 전남 완도군 해변공원에서 열린 ‘2025 장보고 수산물 축제’에서 농심이 마련한 ‘너구리 라면가게’ 행사장이 방문객으로 북적이고 있다. 농심 제공‘지역 클러스터 개발’은 지역사회와 협력업체를 아우르는 지역 생태계의 여건을 개선하면 기업의 성과 개선에도 도움이 된다는 판단 아래 이뤄진다. 농심이 완도 어민과 협력적 관계를 구축하면서 지역 경제를 활성화한 것도 지역 클러스터 개발 중 하나다. 장기적이고 긴밀한 협력을 이어가면서 지역 내 다시마 생산자 수를 늘리고 역량을 끌어올렸다. 안정적으로 다시마를 생산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한 것은 물론이고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했다.
이는 자연스럽게 ‘가치사슬 내 생산성의 재정의’로도 이어진다. 다시마 어가가 안정적으로 성장하면서 생산 역량이 높아지면, 원재료의 품질은 향상되고 공급 중단 리스크도 줄어든다. 생산자와의 우호적인 관계 속에서 장기적인 조달 비용의 예측력 또한 높아진다. 상생을 지향하는 농심의 방침이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강신형 충남대 경영학부 교수는 “지역 생산자와 좀 더 가깝게 밀착하는 농심의 상생 모델은 단순한 CSR이 아닌 CSV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다”며 “핵심 원재료의 품질과 공급 안정성을 확보하면서도, 다시마 어가의 발전과 지역 경제의 활성화라는 사회적 가치 또한 달성하면서 공유가치 창출에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갖고 지원하는 기업은 많지만, 그 지원이 기업의 본업과 연결되면서 이해관계자 모두가 함께 성장하고 이점을 얻는 구조가 돼야 지속 가능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 귀농 청년 지원사업 전개
농심은 다시마 어가와의 동행 외에도 다양한 분야에서 CSV 활동을 펼치고 있다. ‘함께하는 청년 농부’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농심이 2021년 국내 식품업계 최초로 시작한 귀농 청년 지원 사업이다.
올해로 5년째 운영 중이며, 올해 3월 농림수산식품교육문화정보원과 양해각서(MOU)를 맺고 사업 추진에 더욱 힘을 실었다. 매년 10명의 청년 농부를 선발해 파종 전 선급금을 지급하고, 계약 재배를 통해 수확 후 감자를 넘겨받는다.
사들인 감자는 농심의 대표 스낵 ‘수미칩’과 ‘포테토칩’ 생산에 쓴다. 청년들은 안정적인 공급처 덕분에 농사에 집중할 수 있고, 농심은 제품 생산 규격에 맞는 감자를 대량으로 확보할 수 있는 구조다. 지난 4년 동안 이 프로그램을 통해 농심이 구매한 감자는 1210t에 달한다.
양봉 농가 지원도 같은 맥락이다. 농심은 대표 스낵 ‘꿀 꽈배기’의 주재료인 아카시아꿀을 모두 국내산으로 조달한다. 매년 약 160t의 아카시아꿀을 구매하는데, 그저 원재료만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국내 양봉 농가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활동도 한다. 2022년부터 3년째 국립농업과학원, 한국양봉농협과 손잡고 ‘함께하는 양봉’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스마트 양봉 기자재나 꿀벌 질병 진단키트, 양봉 밀원수(꿀샘 나무)를 확보하는 데 쓸 지원금을 지급한다. 경험과 노하우를 갖춘 우수 양봉 농가와 청년 양봉 농가를 연결하는 멘토링 지원도 한다. 기후변화로 꿀벌 개체수가 급감한 상황에서 산업 생태계 전반의 생산성과 생존 능력을 높이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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