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복 세계의 문턱을 넘은 메리제인 슈즈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2월 12일 03시 00분


[패션 NOW]
우아한 아웃핏으로 스테디셀러… 루이뷔통 등 남성복에 선보여
정갈한 슈트·시스루 삭스에 코디
클래식 매력으로 트렌드 이어질 듯

한계를 뛰어넘어 미지의 영역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건 어쩌면 인간의 숙명과도 같은 것이다. 패션계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해 맨즈웨어에서 가장 뜨거운 화두로 지목된 발레 슈즈가 이제는 메리제인 슈즈로 한 걸음 나아간 모양새다. 루이뷔통을 필두로 코페르니와 웨일즈보너, 시네이드 오드와이어 등 여러 굵직한 패션하우스에서 이 트렌드를 과감히 이끌었다.

둥근 라운드 토와 발등을 가지런히 덮는 스트랩 장식이 특징인 메리제인 슈즈는 100년이 넘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본디 메리제인이란 명칭은 1902년 ‘뉴욕 헤럴드’에 연재되며 크게 인기를 끈 만화 ‘버스터 브라운(Buster Brown)’에 등장하는 소녀 이름인 ‘메리 제인(Mary Jane)’에서 유래했다. 메리 제인은 이 만화의 작가 리처드 펠턴 아웃코트가 딸의 이름을 따서 만든 캐릭터였다.

만화 속 메리 제인은 둥글게 마감된 앞코와 걸쇠가 달린 끈의 슈즈를 신고 있었고,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메리제인 슈즈의 시초가 됐다. 후에 아웃코트는 만화 라이선스를 200여 개의 회사에 팔게 되는데 그중 하나인 ‘브라운 슈 컴퍼니’가 소녀들을 타깃으로 한 메리제인 슈즈를 내놓으면서 세상에 첫발을 내디뎠다.

메리제인 슈즈의 클래식하면서도 우아한 아웃핏은 시대와 세대를 초월하며 성인 여성들의 스테디셀러로 거듭나기에 이른다. 태평양전쟁이 발발했던 1940년대엔 실용적인 신발을 찾는 여성이 늘면서 낮은 굽의 메리제인 슈즈가 유행했고, 1950년대엔 뾰족한 앞코와 날카로운 굽을 지닌 메리제인 슈즈가 인기를 얻었다. 펑크 문화가 즐비했던 1960년대엔 두꺼운 플랫폼을 가진 메리제인 슈즈가 등장하면서 개성 넘치는 모습으로 변모하기도 했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 스쿨 걸 룩으로 당당히 자리 잡으며 한층 다양한 소재와 디자인으로 트렌드에 발맞춰 진화를 거듭 중이다.

클래식하면서도 우아한 메리제인 슈즈가 럭셔리 남성 패션에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정갈한 슈트 차림에 시스루 삭스와 메리제인 슈즈를 선보인 루이뷔통(왼쪽 사진), 발가락 모양의 메리제인 슈즈로 눈길을 끈 코페르니(가운데 사진), 정교한 비즈 장식의 메리제인 슈즈로 컬렉션을 빛낸 웨일즈 보너(오른쪽 사진). 각 브랜드 제공
클래식하면서도 우아한 메리제인 슈즈가 럭셔리 남성 패션에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정갈한 슈트 차림에 시스루 삭스와 메리제인 슈즈를 선보인 루이뷔통(왼쪽 사진), 발가락 모양의 메리제인 슈즈로 눈길을 끈 코페르니(가운데 사진), 정교한 비즈 장식의 메리제인 슈즈로 컬렉션을 빛낸 웨일즈 보너(오른쪽 사진). 각 브랜드 제공
그렇다면 여성들의 전유물이었던 메리제인 슈즈가 어쩌다 남성복으로 발걸음을 향하게 된 걸까. 시작은 루이뷔통이다. 2023년 작고한 버질 아블로의 뒤를 이어 루이뷔통의 남성복 아트 디렉터로 임명된 퍼렐 윌리엄스의 공이 가장 컸다. 미국 버지니아 출신의 프로듀서이자 가수인 퍼렐 윌리엄스는 지난 몇 년간 유명 패션하우스와의 협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내며 패션계에서도 다재다능함을 인정받아 왔다. 전형적인 남성성을 여성복과 혼합해 성 관념을 확장시키는 것이 주특기. 데뷔작으로 떠들썩했던 루이뷔통의 2024 봄 컬렉션 무대는 생경한 아름다움으로 가득했다. 이날의 영광은 클래식한 디자인의 메리제인 슈즈 차지였다. 그야말로 성별의 경계에 메리제인 슈즈란 방점을 찍은 것. 이번 시즌에도 메리제인 트렌드는 이어지고 있다. 정갈한 슈트 차림에 시스루 삭스와 메리제인 슈즈를 더하는 방식으로 자리 굳히기에 나선 것. 그는 남자들 스스로 표현의 한계를 두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패션 신에서 룰 브레이커로 통하는 웨일즈 보너도 트렌드에 가세했다. 한결 여유로운 셔츠 차림의 모델이 걸어 나올 때마다 시선이 발끝에 머물렀다. 정교한 비즈 장식의 메리제인 슈즈가 형형색색 빛나는 순간을 만들어 냈으니까. 규칙에 얽매이지 않는 웨일즈 보너의 쇼에서 남녀 구분을 넘어 동시대 모두가 즐기는 패션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가 하면 파리의 디즈니랜드를 통째로 빌려 진행된 코페르니의 컬렉션에서는 디즈니 만화를 연상시키는 발가락 모양의 메리제인 슈즈가 등장해 발가락 신발 논쟁에 불을 지피기도 했다. 눈 모양의 구슬 장식과 양 갈래로 머리를 묶은 듯한 스트랩 디자인으로 키치한 매력을 선보인 8ON8과 스니커즈를 재해석한 시네이드 오드와이어의 메리제인 슈즈도 주목을 끌었다.

이제 막 남성복 세계의 문턱을 넘은 메리제인 슈즈. 더는 새로울 것 없어 보이던 맨즈웨어에 흥미로운 논쟁거리를 던져준다. 논쟁은 결국 유행이 될까? 확실한 건 편견 없이 아름다운 남성복을 만들고자 하는 디자이너들의 노력이 있기에 패션의 세계가 확장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남성복#버스터 브라운#메리제인 슈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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