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타가 만든 전기차는 무엇이 다를까?[원성열의 카이슈]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6월 28일 12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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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타 첫 순수전기차 ‘RZ’ vs 기아 ‘EV9’ 비교 시승기

렉서스 브랜드의 첫 순수전기차 RZ가 강원도 인제 일대의 와인딩 로드를 달리고 있다. 사진 제공|토요타코리아
토요타 그룹의 프리미엄 브랜드 렉서스가 지난 21일 드디어 국내 시장에 첫 순수 전기차 ‘RZ’를 출시했다. 사실 이제야 내놨다고 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하이브리드 자동차로 글로벌 시장을 휘어잡던 토요타 그룹의 전동화 전환 속도는 매우 느리다.

렉서스 브랜드가 한국 시장에 최초의 하이브리드 모델인 RX 400h를 출시한 것이 2006년이라는 것을 돌이켜보면 전동화 전환 속도가 얼마나 느린지를 체감할 수 있다.

물론 2021년 토요타가 첫 순수전기차 ‘BZ4X’를 선보이기는 했었지만, 품질 논란만 일으키다 존재감 없이 사라졌기 때문에 사실상 이번에 선보인 렉서스 ‘RZ’가 토요타 그룹의 진정한 첫 번째 순수전기차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토요타가 망설이는 사이 글로벌 전기차 시장 규모는 무서울 정도로 성장했고, 올해는 1700만대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다. 발 빠르게 전동화 전환에 성공한 현대차그룹은 올해 글로벌 전기차 시장에서 33만대를 판매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으며, 2026년 94만 대, 2030년 200만 대를 판매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토요타 그룹은 여전히 여유로운 모양새다. 와타나베 타카시 렉서스 인터내셔널 사장은 “2030년에 모든 렉서스의 라인업에서 전기차(EV)를 선택할 수 있도록 구현할 것”이라며 “2050년 글로벌 탈탄소 목표에 앞서 2035년부터 순수전기차(BEV)가 선택사항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라고 말했다.

●렉서스 ‘RZ’, 압도적 주행 성능·운전자 중심의 럭셔리
RZ 후측면. 사진 제공|토요타코리아
렉서스 ‘RZ’는 토요타 그룹이 전동화 전환에 여유를 부려도 좋을 만큼 압도적인 상품성을 갖췄을까? 22일 강원도 인제 스피디움 일대에서 시승한 RZ는 분명히 매력적이었지만, 렉서스의 대반격이라고 말할 만큼의 충격을 주지는 못했다. 15년 전 렉서스 하이브리드차를 처음 탔을 때 느꼈던 그 압도적인 승차감과 정숙성이 재현되기를 기대했지만, 전기차에서는 역시 후발 주자였다.

RZ 외관. 사진 제공|토요타코리아
물론 주행 성능에서는 굉장한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와타나베 타카시 사장이 강조하던 “전기차라는 이질감을 없앤 운전의 재미”는 가속페달을 밟아 차를 출발시킬 때부터 분명하게 느껴진다.

RZ에 적용된 eAxle 시스템. 사진 제공|토요타코리아
프런트와 리어에 적용한 eAxle 시스템이 이 매력적인 운전 재미를 만들어낸 핵심 기술이다. 다양한 센서에서 받아들이는 주행 정보를 바탕으로 전후방 휠의 토크 분배를 100:0에서 0:100까지 정밀하게 제어한다. 강원도 인제 일대의 급격한 코너로 이뤄진 와인딩 로드에서 ‘RZ’가 보여준 민첩함은 기존 경쟁 전기차들에서 느낄 수 없었던 안정감과 짜릿함을 만들어냈다. 특히 전륜에 주파수 반응형 댐퍼를 적용해, 거친 노면 구간에서도 렉서스다운 안정적인 스포츠 드라이빙을 가능하게 했다는 점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일반 도로 주행 이후 서킷에서 진행된 짐카나(짧은 장애물 코스) 테스트에서도 놀라운 능력을 보여줬다. 공차 중량이 내연기관보다 훨씬 무거운 전기차의 초기 출발 가속이 이렇게 빠르고 안정적이라니 놀라울 정도다. 동력의 손실이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빠르고 민첩하게 치고 나간다. 또한 풀 제동 이후 빠르게 코너를 빠져 나 때도 노즈다운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안정적인 몸놀림을 통해 운전자가 마음껏 기량을 펼칠 수 있도록 만들어줬다.

RZ 운전석 인테리어. 사진 제공|토요타코리아
다만 인테리어는 여전히 운전자 중심의 구조다. 현대차 아이오닉 5나 기아 EV9의 실내에서 만날 수 있었던 확장성, 함께하는 이동의 자유라는 개념은 찾아볼 수 없었다.
렉서스는 이 인테리어를 승마에서 말과 사람이 함께 일체를 이루듯, 차량과 운전자가 함께 일체감을 느끼며 운전할 수 있는 ‘타즈나(Tazuna)’ 콘셉트라고 설명한다. 향후 자율주행차로 확장될 전기차에 적용하기에는 다소 올드하다고 느껴졌다.

RZ 뒷좌석. 사진 제공|토요타코리아
RZ 트렁크 공간. 사진 제공|토요타코리아
RZ의 1회 충전 주행가능 거리는 377km다. 국내 소비자들은 이미 400~500km를 주행할 수 있는 전기차에 익숙해져 가고 있는데, 다소 아쉬운 주행 가능 거리다. RZ의 가격은 8480만 원부터다.

●EV9, 전기차 종합 선물 세트
기아 EV9은 에어서스펜션 없이도 후륜 셀프 레벨라이저를 통해 우아한 승차감을 완성해냈다. 사진 제공|기아
토요타의 첫 번째 전기차인 RZ를 시승하고 나자 앞서 시승한 기아 EV9의 경쟁력이 더 도드라지게 느껴진다. 렉서스만의 파격적인 디자인과 안정적인 주행 성능은 매우 인상적이었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소비자들이 원하는 첨단 사양이나 확장성이라는 측면에서는 EV9이 한발 앞선다.

EV9은 스마트폰 연결 없이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영화를 볼 수 있다. 사진 |원성열 기자 sereno@donga.com
차 안에서 스마트폰 연결 없이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영화를 볼 수 있는 앞선 커넥티드카 서비스, 2열 좌석을 3열 쪽으로 돌릴 수 있는 스위블 시트로 온 가족이 마주 보며 여행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으며, 차량 전원을 외부로 공급해 다양한 전자기기를 집에서와 똑같은 전력인 220V로 마음껏 사용할 수 있는 V2L 기능 등은 너무나 매력적인 옵션들이다.

EV9은 디지털 패턴 라이팅 그릴의 그래픽을 추가 구매해 자산의 개성을 드러낼 수 있다. 사진 제공|기아
EV9을 통해 본격화된 현대차그룹의 SDV(Software Defined Vehicle,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진화하는 자동차) 전략도 무시 못 할 경쟁력이다. EV9은 무선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통해 항상 차량을 최신 상태로 유지할 수 있고, 필요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Fod(옵션구독서비스)를 통해 ▲원격 주차·출차 및 주차 보조를 지원하는 ‘원격 스마트 주차 보조 2’ ▲디지털 패턴 라이팅 그릴에 5가지 그래픽으로 개성을 표현할 수 있는 ‘라이팅 패턴’ 등을 구매해 적용할 수 있다.

EV9에는 자동차의 전력을 외부로 꺼내 쓸 수 있는 V2L 기능이 적용되어 있다. 사진 제공|기아
주행 성능, 정숙성, 고속도로 주행 보조 기능도 진일보했다. 에어서스펜션이 적용되지 않았는데도 고속 주행에서 굉장히 매력적인 주행 질감을 보여준다. 기본형 댐퍼보다 길고 두꺼우며 진동 및 충격을 흡수하는 능력이 뛰어난 후륜 셀프 레벨라이저를 적용한 덕분이다. 상황에 따라 댐핑 압력을 조절해 우아한 승차감을 완성해냈다.
긴 주행가능 거리도 무시할 수 없는 경쟁력이다. EV9 이륜구동 모델은 99.8kWh 배터리를 탑재해 1회 충전으로 501km(19인치 휠 기준)를 주행할 수 있다. EV9 4WD 어스(21인치 타이어) 모델도 1회 충전으로 454km를 주행할 수 있다. 전국 어디든 한 번만 충전하면 닿을 수 있다는 것은 충전이 번거로운 전기차에 있어서는 엄청난 장점이 아닐 수 없다.

EV9에는 성능이 대폭 개선된 고속도로주행보조2 기능이 적용되어 있다. 사진 제공|기아
성능이 대폭 향상된 고속도로주행보조2 기능도 인상적이다. 설정된 속도로 앞차와의 간격을 유지하고 차선을 유지하며 달리는 기능인데 이전 버전보다 코너 구간에서도 차선을 유지하는 능력이 월등하게 향상됐고, 자동 차선 변경 기능도 대폭 개선되어 더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다. 하반기 출시될 EV9 최상위 트림 GT라인에는 고속도로와 같은 특정 조건에서 운전자가 개입하지 않아도 되는 레벨3 자율주행 기능(80km로 속도 제한)인 HDP도 적용된다.
유일한 단점은 가격이다. EV9의 가격은 기본형 모델 기준으로 7814만 원 부터이며, 풀옵션 모델의 경우 1억 원에 육박한다.

원성열기자 seren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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