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가족 기업은 왜 협업에 소극적일까”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3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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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차세대 기업가 조사해보니
가족 사업에 소속감 클수록
외부 조직과의 협력 망설여

디지털 전환의 가속화로 산업 간 경계를 넘어선 파괴적 혁신의 바람이 거세다. 디지털 전환은 기존의 상품이나 서비스뿐만 아니라 업무 프로세스, 비즈니스 모델, 사업 영역 등 전방위적인 경영 활동의 변화를 요구하기 때문에 개별 기업이 변화에 필요한 모든 지식을 회사 내부에서 확보하는 것은 쉽지 않다. 디지털 전환에 대비하는 전략적 수단으로 기업 외부 벤처링(External Corporate Venturing)이 주목을 받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기업 외부 벤처링은 기업이 새로운 사업 영역 혹은 기회를 탐색하기 위해 외부 조직과 협력하는 전략적 활동으로 디지털 전환 시대에 접어들면서 그 역할과 가치가 더욱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세계적인 혁신 사례로 손꼽히는 독일의 미텔슈탄트(Mittelstand) 기업 상당수는 그 명성과 다르게 디지털 전환에 뒤처지고 있음에도 기업 외부 벤처링에 상당히 소극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미텔슈탄트란 독일 경제의 핵심인 중소기업으로 인력이 500명을 넘지 않고 매출이 5000만 유로 미만인 기업을 뜻한다.

독일 제플린대 연구팀은 이들 대다수가 가족 기업이라는 사실에 주목했다. 그리고 그 원인을 ‘가족 사업 동일시(family identification with the firm)’ 성향에서 찾았다. 즉 가족 기업 구성원들의 특성 탓에 기술 역량 면에서 모범 사례로 꼽히는 기업들이 실제로는 외부와의 협력을 꺼리고, 그 결과 디지털 전환의 낮은 성과로 이어진다고 추론한 것이다.

연구팀은 가족 사업에 대한 동일시 정도를 ‘가족 사업에서 느끼는 강한 소속감’ ‘가족 사업이 개인에게 주는 의미의 크기’ ‘가족 사업의 구성원인 것에 대한 자부심’과 같은 세 가지 측면에서 측정했다. 그리고 디지털 전환을 준비하는 미텔슈탄트 기업들의 차세대 가족 기업가 254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진행했다. 차세대 가족 기업가란 창업주의 후손 세대들로 임원 혹은 주주로서 기업 경영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며 장차 실질적인 주역이 될 가능성이 큰 가족 구성원을 뜻한다.

연구 결과, 가족 사업에 대한 동일시 정도가 높을수록 가족의 명예(reputation)와 정체성(identity)을 지키기 위해 외부 조직과의 협력을 망설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외부 세력과 손잡는 것을 마치 ‘불확실성(디지털 전환)이 또 다른 불확실성(외부 세력)을 만나는 것’으로 인식하는 데 따른 결과였다.

연구 결과는 국내의 수많은 가족 기업에 시사점을 준다. 가족 기업은 가문에 대한 평판과 기업의 성과가 맞물려 있기 때문에 단순히 경제적 이익뿐만 아니라 사회감성적 부(socio emotional wealth)를 축적하는 데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평판 혹은 정체성에 대한 지나친 집착은 기업이 변화의 물결에서 뒤처지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최병철 한국외국어대 경영대학 교수 bchoi@hufs.ac.kr
정리=최호진 기자 hojin@donga.com
#가족 기업#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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