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로 스무 살이 된 롯데제과 아이스크림 ‘설레임’은 최근 재탄생했다. 우선 우유 함량이 기존 1%에서 10%로 10배나 높아졌다. 구입 직후 제품이 꽁꽁 얼어있어 즉시 먹기 힘들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었다. 우유 함량이 늘면 어는점이 낮아져 풍미가 높아진다. 포장도 먹기 좋게 바꿨다. 뚜껑 크기를 기존 16㎜에서 22㎜로 키우고 돌출 면을 만들어서 쉽게 열리도록 했다. 롯데제과 관계자는 “잘 녹는 배합비율을 연구·개발하는 데만 꼬박 1년 걸렸다”며 “수백 번 테스트를 거쳐 재탄생한 제품”이라고 말했다.
식품·제과업계가 최근 신제품이 아닌 ‘장수 제품’에 유독 힘주고 있다. 반짝 뜨고 사라지는 신제품 대신 수요가 탄탄한 장수 제품에 집중하려는 전략이다. 소비자들의 입맛이 쉽게 변하지 않는데다 최근 레트로 열풍으로 1990년대 나온 제품까지 다시 소환되는 분위기다.
●쉽게 변하지 않는 입맛…장수제품 더 장수하게
6일 식품업계에 따르면 오뚜기는 자사 볶음면 판매량 1위 제품인 ‘콕콕콕’ 용기면 3종을 대대적으로 재단장(리뉴얼·renewal)을 했다. 패키지 디자인을 새로 선보이고 맛도 보완한 것. 제품 특유의 맛은 유지하되 감칠맛을 더하고 건더기도 늘렸다. 또 소비자들이 전자레인지 조리를 편리하게 여긴다는 점을 감안해 기존 폴리스티렌(PS) 재질 용기를 전자레인지 조리가능 친환경 용기로 대체하기도 했다. 콕콕콕은 2004년 처음 선보인 뒤 지난해 연간 매출액 150억 원을 올린 오뚜기의 간판 제품으로 꼽힌다.
식품업계가 장수 제품으로 눈 돌린 건 기존에 ‘먹던 것’을 선호하는 소비자 입맛 때문이다. 통상 연 매출 100억 원 이상을 내는 핵심 제품 중 상당수가 최소 20~30년 전에 출시된 장수 제품들이기 때문이다. 롯데제과 관계자는 “소비자 입맛은 보수적이라 식품기업에선 인기 브랜드가 곧 장수 브랜드”라며 “독특한 신제품이 반짝 인기를 끌다 사라지기 일쑤인 반면 장수 브랜드는 탄탄한 수요를 바탕으로 꾸준히 매출을 올리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롯데제과의 설레임은 연 매출 250억 원을 올리는 효자 상품이다.
최근 대형 마트나 백화점 식품관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시식이 어려워진 점도 장수 제품 강화에 영향을 미쳤다. 시식이 곧 구매로 이어지는 신제품 특성상 구매 환경이 달라졌다는 점은 신제품 진입장벽이 높아졌다는 점을 뜻한다. 리뉴얼을 위한 설비 개조와 제품 연구개발 등에 투입되는 수 억~수십억 원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오뚜기 관계자는 “신제품은 무조건 시식 아니면 입소문이기 때문에 직접 맛보지 않으면 구매로 이어지기 어렵다”며 “신제품을 출시해 성공하기보단 기존 알던 제품을 업그레이드 하는 게 더 효율적이고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시식 어렵고 레트로 확산되며 장수제품 인기
꾸준히 이어지는 레트로 트렌드도 장수 먹거리에 대한 관심을 끌어올렸다. 익숙한 맛인 동시에 어릴 적 즐겨 먹던 추억을 자극해서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레트로 열풍이 불며 오래 전 출시된 제품들이 재조명되고 있다”며 “기존 제품을 활용한 레트로 마케팅은 시간, 금액 면에서도 부담이 적다”고 말했다.
레트로 열풍이 불며 단종된 상품을 장수 제품으로 부활시키는 움직임도 거세다. SPC삼립은 1998년 선보였다가 2000년대 초 단종시킨 ‘포켓몬빵’을 지난달 다시 내놓았다. 과거에 빵에 들어간 스티커, 이른바 ‘띠부실’(떼었다 붙였다 하는 스티커) 수집 열풍이 번지면서 월 평균 500만 개 팔릴 정도로 인기 상품으로 꼽혔다. 하지만 캐릭터 라이선스 계약이 만료되면서 생산도 중단됐지만, 최근 다시 판매되면서 재출시 일주일만에 150만개가 팔려나가는 등 인기 몰이를 하고 있다. 빙그레도 1990년대 초 등장했다 2016년 단종된 아이스크림 ‘링키바’를 3월 중 다시 판매할 예정이다. 빙그레 관계자는 “단종 후 재출시해 달라는 소비자 요청이 꾸준했다”며 “제품에 대한 추억을 갖고 있는 분들에게 보답하는 마음으로 재출시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장수제품은 일정 규모의 매출이 보장되기 때문에 맛이나 포장을 약간 변주해 다시 출시하는 게 유행”이라면서도 “혁신적인 제품 개발보다는 안전한 영업 방식에 기대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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