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어서 못 파는 ‘사과계 에르메스’ 감홍…“부사밭 갈아엎어도 물량 못대”

문경=이지윤기자 입력 2021-10-18 14:58수정 2021-10-18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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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성진 기자 psjin@donga.com
15일 오전 7시 경북 문경 마성면 고인환 씨(32)네 사과농장에는 비상이 걸렸다. 요즘 고 씨네 사과는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찾는 이들이 많은데 오후에 비 소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 어스름한 시간이었지만 그는 비가 쏟아지기 전 바삐 수확에 나섰다.

멀리서 본 그의 밭은 인근 드넓은 사과 농지 가운데서도 단번에 눈길을 끌었다. 두 주먹을 포갠 것보다 크고, 가을 대추만큼 붉은 ‘감홍’ 사과가 주렁주렁 열려서다. 고 씨는 “기존 부사를 키우던 땅까지 올해 감홍 밭으로 바꿨는데도 물량을 대지 못할 정도로 인기”라며 “아버지와 20년간 감홍을 재배해왔지만 지금만한 호황이 없었다”고 말했다.

●사과계 에르메스 ‘감홍’을 잡아라


사진=박성진 기자 psjin@donga.com
올 가을 유통업계는 ‘사과계의 에르메스’ 감홍 확보로 경쟁이 치열하다. 홍로, 부사 등 대중적 품종의 2배 가격이지만, 뛰어난 품질 덕에 지난해부터 이름을 떨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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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홍은 평균 당도가 16.5브릭스로 국내 육성되는 품종 가운데 가장 높다. 중량은 부사의 약 1.5배이며 후숙할수록 맛과 향이 진해진다. 이 때문에 감홍을 찾는 이들이 최근 늘어났지만 구하기가 녹록치 않다. 품종 특성상 고두(표면이 검게 물러지는 증상)가 생기기 쉬워 생산하는 농가가 많지 않고 10월 중순부터 20여 일만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업계가 감홍 확보전에 나선 건 이 같은 ‘니치 과일’ 수요가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동일한 품목이어도 더 달고 희귀한 품종이 인기다. 전통적 포도 강자였던 캠벨포도를 완전히 밀어낸 샤인머스캣이 대표적이다. 샤인머스캣 평균 당도는 캠벨보다 최대 8브릭스 높고 특유의 망고 향으로 큰 호응을 얻었다. 이마트에 따르면 지난 1~9월 샤인머스캣 매출은 전년 동기보다 93% 늘어 전체 포도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그밖에도 이마트가 국내 최초로 선보인 니치 과일은 잭슨 자몽은 보름 만에 6톤이, 슈가키스·써머키스 메론은 한 달 만에 20톤이 판매되며 인기를 끌었다.

●갈수록 몸값 뛰는 고당도 ‘니치 과일’

니치 과일 인기는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소비자들의 먹거리 선택이 까다로워진 것과 관련된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이왕 먹을 거면 새롭고 맛있는 걸로 잘 먹자’는 트렌드가 생겨다. 저당·저탄수화물 식품이 인기를 끈 한편 가끔씩은 비싸도 입맛에 꼭 맞는 음식을 찾아 먹는 ‘음식 플렉스’가 확산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최근 건강과 다이어트에 이로운 식사를 추구하다 보니 이왕 몸에 안 좋은 걸 먹을 거면 맛있고 독특한 걸 선호하게 됐다”며 “젊은층의 경우 이를 SNS로 공유하는 게 하나의 문화”라고 말했다.

실제 업계가 더 다양한 품종을 확보할수록 매출도 올랐다. 이마트가 지난 4월 토마토 품종을 16종으로 확대하자 전체 토마토 매출은 전년 같은 달보다 31% 성장했다. 딸기 역시 킹스베리 등 7종으로 지난 연말 확대한 직후 3개월 간 매출이 전년 동기보다 27% 증가했다. 이마트 관계자는 “계절마다 어렵게 확보하는 니치 품종이 매 시즌 과일 매대 선봉장”이라며 “이번 가을에도 사과를 감홍, 시나노골드 등 10월에만 구할 수 있는 프리미엄 희귀 품종으로 확대하게 됐다”고 말했다.

니치 과일 인기는 앞으로도 이어질 거란 전망이 나온다. 한번 높아진 안목이 이전으로 돌아가긴 어려워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국내 감홍 재배면적은 약 3.3% 늘어난 반면 후지(-1%), 홍로(-4%), 쓰가루(-2%) 재배면적은 감소했다.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최근 소비자들이 한우, 쌀뿐 아니라 과일에 대해서도 취향과 용도에 맞는 품종을 찾아 먹는 경향이 커졌다”며 “니치 품종을 생산하는 작은 농가들의 수익이 확대되면 품종은 더욱 다양해지는 선순환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문경=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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