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 ESG는 생존위한 필수”… 최태원의 새 경영문법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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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새해특집
[재계 세대교체, 디지털 총수 시대] <4> 최태원 SK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재무 성과 중심의 성장방식에서 벗어나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기업 가치를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제주에서 열린 ‘2020 CEO세미나’에서 최 회장이 발언하는 모습. SK그룹 제공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재무 성과 중심의 성장방식에서 벗어나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기업 가치를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제주에서 열린 ‘2020 CEO세미나’에서 최 회장이 발언하는 모습. SK그룹 제공
‘플라스틱 때문에 발생하는 피해를 최소화하라.’

SK그룹 환경사업위원회는 최근 ‘플라스틱, 이산화탄소 감축’을 목표로 삼고 새해 사업계획을 추진하기로 했다. 환경사업위원회는 그룹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수펙스추구협의회가 에너지·화학위원회를 없애고 올해 신설한 기구다. ‘환경’을 핵심 키워드로 SK 주요 계열사의 사업을 바꿀 혁신 방안을 찾기 위해 만들어졌다.

환경사업위원회의 새해 목표는 최태원 SK그룹 회장(61)의 달라진 ‘경영 문법’을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최 회장은 지난해 10월 SK 핵심 경영진이 모이는 CEO 세미나에서 “매출과 영업이익 등 재무적 성과를 중심으로 한 기업 평가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며 ESG(환경·사회·지배구조)를 기업 경영의 원칙으로 삼겠다고 밝혔다.

환경, 사회, 지배구조 가치를 훼손한다면 아무리 매출을 많이 올려도 경영 성과를 인정받기 어렵다는 의미다. 기업 임직원, 소비자, 투자자, 시민단체 등 ‘이해관계자’의 생각이 달라진 것처럼 기업도 뿌리째 변해야 생존할 수 있다는 게 최 회장의 생각이다. 최 회장은 지난해 한 강연에서 “기업은 ‘돈을 버는 것’이란 목적이 너무 강해 공감 능력이 없었다. 기업인으로서 반성한다”고 말했다.

올해 신년사에서도 “기후변화, 팬데믹(대유행) 같은 사회 문제로부터 기업도 자유로울 수 없다”며 “사회와 공감하며 문제 해결을 위해 함께 노력하는 ‘새로운 기업가 정신’이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 디지털 시대, 새로운 기업가 정신 강조


최 회장은 누구보다 변화에 대한 갈증이 큰 총수로 꼽힌다. 2015년 경영 복귀 이후 “기존의 기준과 규칙으로 굴러가지 않는 새로운 시대가 오고 있다”며 ‘딥체인지’(근본적 변화), ‘사회적 가치’, ‘공유 인프라’ 등 새로운 경영 화두를 꾸준히 던져왔다.

SK가 ESG를 핵심 키워드로 대대적인 비즈니스 혁신에 나선 것은 최 회장의 이 같은 고민의 결과물이다. 기업의 모든 경영 활동이 투명하게 공개되고 사내외 소통이 극대화되는 디지털 시대에는 기업의 이해관계자 역시 주주를 넘어 사회와 구성원, 환경 등으로 확산돼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밀레니얼 세대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기업에 대한 평판을 빠르게 디지털 세상에서 공유하고 습득한다”며 “누구보다 디지털 시대의 문법에 밝은 최 회장은 기업 임직원, 소비자, 투자자의 변화를 보고 ESG를 바탕으로 사업의 근간부터 바꾸려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ESG 중심의 사업 재편은 아직 ‘돈 써야 하는 일’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최 회장은 생존을 위한 필수 선택으로 본다. 최 회장은 “이미 각 기업들은 ESG 경영 추진 노력과 성과에 따라 가치를 평가받고 있다. 기업의 ESG 경영 성과에 상응하는 보상체계가 마련돼야 하고, 이 가치 측정의 체계가 고도화될수록 기업들의 행동 역시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은 지난해 주주 서한을 통해 기업에 대한 투자를 결정할 때 환경지속성 등 ESG를 검토 기준으로 삼겠다고 발표했다. 애플도 2030년까지 전 세계 제조공급망에서 탄소 중립화 100%를 달성하겠다고 선언하는 등 ESG 중심 경영을 선택하는 기업도 늘고 있다.

○ ESG 기반 사업 재편에 속도


최 회장 주도로 SK의 사업은 ESG를 키워드로 재편되고 있다. 플라스틱을 예로 들면 단순히 사용량을 줄이는 노력에 머물지 않고 사업적 성과로 이어질 기술이나 제품을 개발하는 식이다. 올해 SK이노베이션은 폐플라스틱에서 석유화학 연료를 뽑아 재사용하는 열분해유 기술 상용화에 나설 예정이다. SK케미칼은 환경호르몬이 나오지 않는 플라스틱 개발에 착수했다.

올해 SK건설은 환경 사업을 중심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전환하겠다고 선언했다. 지난해 1조 원을 투자해 인수한 국내 최대 종합 폐기물 처리업체 EMC홀딩스를 중심으로 친환경·신에너지 사업자로 변신하고 있다.

SK E&S도 친환경 에너지 기업으로 변신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해 9월 새만금 간척지 태양광 발전단지 조성사업자로 선정됐다. 246만 m²에 달하는 서울 여의도 크기의 면적에 발전 규모만 200MW(메가와트)에 달하는 태양광 발전 단지를 짓겠다는 계획이다. 민간 기업 사상 최대 수주다. SK E&S는 전남 신안에 국내 단일 규모 최대 해상풍력 사업(96MW)을 추진 중이고, 수도권에 액화수소를 공급할 수 있는 생산설비 건설도 추진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이 지난해 가동을 시작한 VRDS(감압 잔사유 탈황설비) 등도 ESG 중심의 사업 재편과 맥을 같이한다. SK이노베이션은 또 전기차 배터리 생산뿐만 아니라 수리, 충전, 재사용 등까지 연계해 환경오염을 최소화하는 사업 밸류체인을 구축해 나가고 있다. SK㈜는 지난해 12월 수소사업추진단을 신설했다.

최 회장은 환경, 사회, 지배구조 문제를 해결해야 할 리스크로 보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ESG 이슈에 적당히 대응하거나 수비해서는 안 된다. ESG를 비즈니스 모델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문을 내놓았다.

서동일 기자 dong@donga.com
#sk 그룹#최태원 회장#esg#사업구조 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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