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도 얼어붙어… 경기침체 장기화 우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9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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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물가 상승률 사상첫 마이너스

8월 소비자물가가 사상 처음 하락(―0.04%)하면서 한국 경제에 ‘디플레이션’ 공포가 커지고 있다. 상품과 서비스 등 전반적인 물가 하락세로 가계와 기업이 소비와 투자를 미루면서 일자리가 줄고 그 결과 소득 감소와 소비 위축이 장기화하는 불황을 우려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당장 디플레이션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사상 초유의 저물가로 경기 회복이 지연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기획재정부는 3일 지난달 소비자물가 하락은 농축수산물과 석유류 가격 안정에 따른 공급 측면 요인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기상 여건이 좋고 도축한 가축이 늘어 농축수산물 가격이 작년 대비 7.3% 내렸다는 것이다. 국제유가 하락세와 정부의 유류세 인하 정책으로 석유류 가격도 6.6% 떨어졌다.

기재부는 유류세 인하, 건강보험 보장 확대, 무상급식 등 정책 효과로 지난달 물가 상승률이 0.2%포인트 하락한 것으로 분석했다. 농산물과 석유류 가격 하락 등 공급 측면 요인은 물가 상승률을 0.74%포인트 끌어내렸다. 이 같은 일시적 요인을 제외하면 물가 상승률이 1%대 초중반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정부는 보고 있다. 실제 계절적 영향을 받는 농산물과 석유류를 제외한 근원물가는 지난달 0.9% 올랐다.

하지만 수출입 물가를 포함한 종합 물가지수인 GDP 디플레이터가 올 2분기(4∼6월)까지 3개 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보이면서 디플레이션 우려가 커졌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년 연속 물가가 하락하면 디플레이션으로 본다.

물가가 내리면 싼 가격에 물건을 살 수 있어 좋을 것 같지만 지금처럼 경기가 나쁠 때는 수요를 위축시키는 부작용이 더 클 수 있다. 상대적으로 돈의 가치가 오르면서 소비자는 소비를 미루고, 재고가 쌓인 기업은 투자와 고용을 줄인다. 저물가가 소비 감소와 실업을 부르고 다시 물가 하락과 경기 침체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디플레이션은 물가가 오르는 인플레이션보다 더 위험하다는 분석이 많다. 1990년대 일본도 디플레이션 악순환에 빠져 장기 불황을 겪었다.

김용범 기재부 1차관은 이날 거시정책협의회에서 “최근 물가 상승률이 낮아진 건 공급 측면 요인의 일시적 변동성 확대 때문”이라며 디플레이션 상황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윤면식 한국은행 부총재도 “내년 이후 1%대로 (상승률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한다”며 디플레이션을 우려할 상황은 아니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공급 측면 못지않게 경기 침체로 수요가 줄면서 물가가 하락하고 있다고 본다. 의류비, 차량 및 가전제품 구입비, 교육비 등 근원물가도 1% 미만의 낮은 성장률을 이어가고 있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올 들어 지난달까지 근원물가가 1% 이상 오른 건 1월, 2월, 7월 세 번뿐이었다. 대내외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경기가 더 나빠질 수 있다는 우려 역시 저물가에 따른 위험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이날 한은이 2분기 GDP 성장률을 기존 속보치보다 0.1%포인트 낮춘 1.0%로 조정하는 등 올해 연간 성장률 전망치 2.2% 달성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내년에 경제가 더 안 좋아지면 그만큼 물가 하방압력이 커질 것”이라며 “정부는 경제 활력을 살릴 근본적인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세종=주애진 기자 jaj@donga.com
#소비자물가#상승률 마이너스#경기침체#디플레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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