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요구만 들어달라는 부산시”…불난 르노삼성에 부채질?

  • 뉴스1
  • 입력 2019년 3월 11일 13시 26분


부산시 사측에 ‘대승적 결단’ 요청…사실상 양보 요구
부산시 갑작스러운 개입 ‘정치적 외압’ 비칠 수도

르노삼성 부산공장. (뉴스1DB)© 뉴스1
르노삼성 부산공장. (뉴스1DB)© 뉴스1
임단협을 둘러싼 르노삼성의 노사 갈등이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부산시가 노조편에서 사측의 양보를 촉구하고 나섰다. 그러나 부산시의 노조 편들기는 르노삼성 사태의 본질을 왜곡, 회사의 생존마저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르노삼성은 현재 생산·수출 주력 모델인 로그의 후속 물량을 르노의 일본 공장에 빼앗길 위험에 처했다. 노조의 요구를 모두 수용할 경우 르노삼성은 생산 경쟁력 악화로, 로그 후속 물량을 일본 공장에 넘겨줄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에서 부산시가 대승적 결단을 빌미로 사측에게 무리한 양보를 강요한 것은 르노삼성의 생존마저 위협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부산시 요구대로 회사가 양보한다면 당장 상황 수습은 가능하지만 결국 회사 경쟁력 약화에 따른 부산공장 구조조정 사태가 불거질 우려가 있다. 기업경영 측면에서 회사 존폐여부가 달린 위기 상황에 ‘정치적 외압’으로 비칠 수 있는 부산시의 일방적인 개입은 사태를 오히려 악화시킬 수 있다는 분석이다.

11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오거돈 부산시장은 지난 10일 입장문을 통해 난항을 겪고 있는 르노삼성 노사간 임단협 협상을 두고 “르노삼성이 대승적 결단을 내려줄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오 시장은 “주요의사결정 때 시민의 이익이 기준이라는 것은 시민과 상생하는 기업의 의무”라며 사측의 결단을 촉구했다. 동시에 “고용안정, 더 나은 노동조건을 위해 협의하고 투쟁하는 것은 노동자의 당연한 권리”라며 “르노삼성 노조의 협상과 투쟁은 보호받아 마땅하다”고 노조를 지지했다.

이같은 메시지는 르노삼성 임단협 장기화에 따른 지역경제 우려 때문으로 보인다. 르노삼성은 부산수출의 약 20%를 책임지고 있으며 직접 고용은 4300명 규모다. 부산·경남 협력업체 직원 수는 1만2000명에 달한다. 협력업체들은 본격적인 파업이 시작된 지난해 12월 이후 예상치 못한 휴업과 단축 근무로 현재까지 1100억원에 달하는 손실이 발생한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르노삼성 노사가 겪고 있는 임단협 타결의 핵심쟁점은 노조가 막판 협상 의제로 제시한 작업 전환 배치 등에 대한 인사 경영권의 합의전환 요청이다.

노조는 올해 9월 닛산 로그의 위탁생산 중단 후 확보되는 새로운 물량의 생산기간까지라도 합의권을 달라는 시한부 요구를 했다. 하지만 사측은 이는 인사권에 대한 침해로 협상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전환 배치, 인원 투입 등 현재 협의로 돼 있는 인사 경영권을 노조 합의로 전환하는 것은 부산공장의 우수한 글로벌 경쟁력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라며 “경쟁력 저하는 물론 향후 부산공장의 고용 안정성까지 위협할 수 있는 사항”이라고 설명했다.

현대자동차에 비해 르노삼성이 처한 사업 환경이 매우 불리한데도, 노조에게 현대차 노조 수준의 인사 경영권을 쥐어주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든 요구라는 의미다.

특히 부산시가 노조를 지지하고 나서자 사측은 당혹감을 드러냈다. 지난 1월 사측이 임단협 협상 상황 보고를 위해 오 시장 면담을 요청했으나 응하지 않고 수수방관하다가, 여당 소속의 부산시장이 뒤늦게 나서면서 사측에 무조건적인 양보를 요구하는 것은 일종의 ‘정치적 외압’으로 비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르노그룹의 경우 지난 2009년 스페인 바야돌리드 공장이 판매 부진과 경제 위기가 맞물려 희망퇴직을 실시하는 등 경영 위기를 겪었지만 3년간 임금 동결을 골자로 하는 노사 합의를 통해 공장 정상화를 이뤄낸 바 있다. 이 과정에서 바야돌리드 지방 정부가 나서 노사 양측 모두에게 양보를 요구하는 등 중재에 나서 대타협이 가능했다. 회사의 장기 생존에 대한 고민 없이 노조 요구를 일방적으로 들어주라는 부산시 개입과 대비된다.

이 관계자는 “바야돌리드 공장의 경우, 노사 대립이 끝이 없자 지방정부가 나서 노사 양측에 양보를 요구했다”며 “부산시는 사측이 상황 보고를 위해 면담을 요청했음에도 만나지 않다가 갑자기 노조 논리대로 사측에 대승적 결단을 요구하고 있어 당황스러운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르노삼성 노사는 향후 일정을 논의하지 않아 협상이 언제 재개될지는 미지수다. 업계에서는 양측의 극적인 합의가 없다면 향후 수출물량 확보는 사실상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생산 및 판매량 절반을 차지하는 닛산 로그의 생산은 오는 9월 종료되는데 임단협을 타결하지 못한 상태여서 사업계획서 제출도 어려운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사업장별로 사업계획서가 완성돼야 이를 토대로 9월 이후 신규 물량 배정 협상을 진행하게 된다”며 “오는 29일까지 임단협 협상을 마무리하지 못하면 부산공장이 아예 문을 닫게 되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뉴스1)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오늘의 추천영상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