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지배구조 개선 ‘김상조식 해법’ 현실성 논란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28일 03시 00분


재계 “명분 집착 역효과 우려”

단기 수익을 노린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의 공세로 현대자동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안이 잠정 중단되자, 재계에서는 정부가 실현 가능한 현실적인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현대차, 삼성 등 국내 간판 그룹들의 지배구조 개편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의 역할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재계는 정부가 과연 해외 투기자본 움직임과 국내 법규와의 상충 관계, 실현 가능성 등 여러 요소를 제대로 검토해 지배구조 개편을 밀어붙이고 있는가에 대한 의구심이 크다. 27일 한 재계 관계자는 “주요 기업마다 외국인 지분이 과거보다 훨씬 높아진 상황에서 명분에만 집착한 관치(官治)는 역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 실현 어려운 김상조표 지배구조 개편안

김 위원장은 이달 10일 열린 ‘10대 그룹 최고경영자(CEO) 간담회’에서 자신이 2016년 2월 경제개혁연대 소장 시절 작성한 보고서를 거론하며 금융지주회사 설립을 통한 삼성생명과 삼성전자의 분리방안을 제시했다.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는 “금융지주로 전환하면 삼성생명이 삼성전자의 지배주주가 되지 않을 정도로 약 2% 지분만 삼성물산에 매각하면 된다”고 더 구체적인 방법을 제안했다.

문제는 김 위원장이 제시한 ‘해법’이 현실적으로 추진하기 어려운 시나리오라는 것이다.

우선 삼성물산이 삼성생명으로부터 삼성전자 지분 2%를 사들여 1대 주주로 올라서게 되면 삼성물산은 지주회사로 강제 전환될 가능성이 높다. 현행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1대 주주로서 갖고 있는 자회사의 지분 가치가 회사 전체 자산의 50%를 넘으면 지주회사로 전환된다.

현재 삼성전자 지분을 4.65% 보유 중인 삼성물산이 삼성생명으로부터 삼성전자 지분 2%를 추가로 사들이면 지분 가치는 약 21조 원 규모로, 삼성물산 자산 총액(49조 원)의 절반에는 못 미친다. 하지만 1대 주주로 있는 삼성바이오로직스 지분 가치(43.44%·약 10조 원)를 더하면 50%가 넘어간다. 금융계 관계자는 “김 위원장이 보고서를 작성했던 2016년 2월만 해도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상장 전이라 지분 가치가 지금처럼 크지 않았던 데다 삼성전자 주가도 지금의 절반 수준이었다는 점을 간과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삼성물산이 지주사로 전환되면 마주할 장벽은 더 커진다. 공정거래법에 따라 자회사 주식 확보 비율(상장사 20%, 비상장사 40%)을 맞춰야 한다. 삼성전자 지분만 최소 14%를 더 사들여야 하는 것이다. 이 비용만 약 44조 원에 육박한다. 한 재계 관계자는 “삼성생명으로부터 2% 지분을 매입하는 데 필요한 돈만 6조 원인데, 도합 50조 원은 도저히 동원하기 어려운 액수”라고 했다.

삼성전자 이외의 다른 자회사 지분도 추가 매입해야 한다. 설상가상으로 국회에서 논의 중인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통과돼 지주회사의 상장자회사 지분 확보 비율이 현행 20%에서 30%로 늘어나면 삼성물산이 부담할 비용은 최대 80조 원에 육박할 것으로 추산된다.

○ 중간금융지주사 설립 가이드라인부터


삼성생명이 금융지주회사로 전환하는 것도 난관이다. 설립신고만 하면 되는 일반지주회사와 달리 금융지주회사 설립은 금융위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이 때문에 삼성은 2016년 초 삼성생명의 금융지주회사 전환과 관련해 금융위에 이미 문의한 바 있다. 당시 금융위는 “보험사의 자본 감소로 인해 보험가입자의 안정성 하락이 우려된다”고 불가 의견을 제시했다. 삼성생명을 투자회사와 사업회사로 인적 분할하는 과정에서 금융관계사 지분과 현금 등 유가증권을 투자회사로 넘겨야 해 재무 안전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아무리 정권이 바뀌었다 해도 금융당국이 의견을 갑자기 바꾸긴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그나마 지주회사의 금융회사 지분 보유를 허용하는 중간금융지주회사법이 통과되면 삼성생명을 중심으로 한 중간금융지주사를 세울 수 있다. 김 위원장도 보고서에서 최종적으로 중간금융지주회사 제도가 허용되는 것을 전제로, 삼성생명을 중심으로 한 금융부문의 금융지주회사와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하는 비(非)금융계열사들의 일반지주회사를 수직으로 연결하는 최종지주회사를 세우는 방안을 언급했다. 하지만 중간금융지주회사법은 더불어민주당이 과거 야당 시절 “삼성을 위한 특혜”라고 반대해 이미 무산된 방안이다. 주요 기업들이 중간금융지주 등에 대한 현 정부의 가이드라인부터 제시해야 한다고 하는 이유다.

사안이 복잡하게 꼬여 있다 보니 최근 일부 경제학자 및 금융당국 관계자들 사이에선 삼성이 삼성전자와 삼성생명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는 극단적인 의견까지 나오고 있다. 삼성 사정에 정통한 재계 관계자는 “단순한 의결권 제한과 지분의 강제 매각은 엄연히 다른 이슈”라며 “지분 및 경영권에 대한 강제 매각은 기업의 재산권 침해에 해당하는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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