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이슈]돈과 미래를 맞바꿀 생각 없다? 청년도 외면 ‘청년공제’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4월 9일 17시 48분


코멘트
동아일보DB
동아일보DB
최재웅 씨(29)는 지난해 4월 안산의 한 심리상담센터에 취업했지만 4개월만에 퇴사했다. 중소기업 취업자에게 정부가 목돈을 만들어주는 청년내일채움공제(청년공제)에 가입돼 있었지만 잦은 야근에다 급여도 제때 나오지 않는 열악한 환경을 버티지 못했다. 최 씨는 “중소기업의 근무여건을 개선하도록 유도하지 않는다면 청년공제는 청년들이 불합리한 환경에 묶여 있어야 하는 족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2016년부터 청년이 2년 간 300만 원을 내면 정부와 기업의 추가 납입금으로 만기 때 1600만 원을 만들어주는 청년공제를 도입했다. 올 3월에는 이 제도를 더 확대해 청년이 3년간 600만 원을 내면 3000만 원을 탈 수 있게 해주는 3년 만기형 공제를 도입했다. 임금 측면에서 대기업과의 격차를 줄여주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동아일보 취재팀이 만난 청년들이 생각하는 ‘좋은 일자리’는 돈만 많이 주는 곳이 아니었다.

● ‘돈과 미래를 맞바꿀 생각 없다’

“청년내일채움공제에 든다고 해서 2, 3년이나 중소기업에 붙어 있긴 힘들 것 같아요.”

지난해 9월 수도권의 한 정보통신(IT) 업체에 입사한 김동규 씨(가명·29)의 목표는 뜻밖에도 ‘이직(移職)’이었다. 정부는 중소기업에 오래 근무하면 목돈을 준다지만 김 씨는 돈 때문에 미래가 걸린 기회를 놓칠 수 없다고 했다.

2년 또는 3년 근속해야 불입금을 탈 수 있는 청년공제는 이직이 빈번한 업종에는 ‘그림의 떡’이나 마찬가지다. 장모 씨(31)는 청년공제가 자신이 속한 디자인업계에서는 혜택을 보기 어려울 것이라고 봤다. 업종 특성상 대기업이 아니라면 처음에는 계약직으로 근무하는 청년들이 많기 때문이다. 장 씨도 벌써 3번째 회사에 다니고 있다. 그는 “계약직이라서 어쩔 수 없이 이직하는 청년들에게도 그동안 거친 회사가 중소기업이라면 혜택을 이어갈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 “계약직도 목돈 마련할 기회 달라”


청년들이 이 제도를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김명정 씨(24)는 “중소기업을 준비하는 취준생에게는 근속을 유도할 수 있는 좋은 제도”라며 자신도 취업하면 신청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새로운 청년공제 제도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청년들에게 충분한 시간을 줘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정부는 최근 공제제도에 가입할 수 있는 기한을 ‘입사 후 1개월’에서 ‘입사 후 3개월’로 늘렸다. 이미 시한이 지나버린 사람도 공제에 가입하도록 소급 적용해달라는 것이다.

기존 취업자들은 중소기업 재직자들을 위한 내일채움공제의 실효성에 의문을 표시했다. 이 제도는 근로자와 회사가 1대 2 비율로 납입해 5년 동안 목돈을 모아주는 것이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올해 3월말 기준 2만2920명이 가입했다. 전체 중소기업 재직자(1350만 명)의 0.2% 수준이다. 기업 참여율도 중소기업 350만 개 중 1만1183개로 0.3%에 머물렀다.

이는 기업들이 인건비 추가 부담을 우려해 제도 가입에 소극적이기 때문이다. 소프트웨어 회사에 재직했던 이모 씨(31)는 “지난해 내일채움공제를 문의했더니 회사가 오히려 월급을 깎으려 해 가입을 포기하고 퇴사했다”고 했다. 정부는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편성해 정부 보조금을 3년간 1080만 원으로 높이는 방안을 마련했지만 여전히 기업 부담금이 1200만 원에 이른다.

● 청년 자존감 높이는 ‘히든챔피언’ 키워야

청년들을 채용해야 할 기업인들은 공제제도에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경기 김포시의 한 제조업체 대표 박모 씨는 “청년들이 일자리대책으로 받은 돈을 퇴직금 삼아 퇴사할 것 같다”고 우려했다. 서울의 한 전산업체 대표 박모 씨도 “청년 입사자들로선 3년 뒤 목돈을 받은 다음에는 낮은 연봉을 감수해야 하는데 이를 감당할 청년이 몇이나 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한시적 일자리정책에 대한 불신이 청년 뿐만 아니라 중소기업계에도 퍼져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일자리정책이 당장의 중소기업 취업률을 높이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어 효과가 제한적이라고 지적했다. 돈을 얹어주는 것 뿐만 아니라 회사에 다니는 것 자체가 자존감을 높이는 ‘히든 챔피언’을 육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일시적 지원책보다 중소기업에 다니면서 소득이 늘 뿐 아니라 희망적인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근본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한시적인 시범사업”…논란의 ‘고용디딤돌’ 사업, 사실상 폐지 ▼

박근혜 정부의 대표적 일자리 정책이었던 ‘고용디딤돌’ 사업이 당초 기대한 고용 효과를 내지 못한 채 2년 여만에 사실상 폐기됐다. 정부가 책상머리에서 만든 정책은 현장에서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입증된 셈이다.

고용디딤돌은 대기업과 공공기관이 직접 취업준비생을 뽑아 훈련시킨 다음 대기업 계열사나 협력업체, 벤처기업에 취업하도록 알선하는 사업이다. 2015년 9월 청년 1만 명에게 일자리 기회를 준다는 취지로 시작한 뒤 대기업 11곳, 공공기관 7곳이 참여했다. 2016년에는 대기업 16곳, 공공기관 17곳으로 확대됐다.

대기업 등의 참여가 늘면서 고용디딤돌이 활성화하는 듯 보였지만 실효성 논란은 꾸준히 제기됐다. 지난해 SK의 고용디딤돌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박정민 씨(가명·24·여)는 “대기업에서의 교육프로그램은 도움이 됐다”면서도 이후 소개 받은 중소기업에서는 회의 때 음료수 세팅이나 대표이사 강연자료 만들기 등 잡일을 도맡아 했다고 전했다. 결국 박 씨는 3개월 후 해당 중소기업에서 취업제안이 왔지만 거절했다.

고용디딤돌 취업 훈련프로그램에 지원되는 재정은 2016년에만 143억 원이었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을 통해 취업한 뒤 지난해 8월 말까지 계속 직장을 다닌 청년은 전체 채용인원의 38.4%에 그쳤다.

고용디딤돌 사업은 지난해 말 종료된 뒤 현재는 ‘국가 인적자원개발 컨소시엄 사업’에 통합됐다. 대기업이 빠진 채 직업훈련과 취업이 모두 중소기업과 공공기관에서 이뤄지는 방식이다. 대기업이 고용의 가교 역할을 한다는 취지의 고용디딤돌과는 성격이 다르다. 고용노동부는 고용디딤돌에 대해 “애초부터 한시적인 시범사업이었다”고 설명하지만 지난 정부 말부터 대기업의 호응이 급격히 줄어 정책 자체를 유지하기 어려웠다.

고용디딤돌을 통합한 국가 인적자원개발 컨소시엄 사업에는 현재 중소기업 28곳과 공공기관 3곳이 참여의사를 밝히고 있다. 정부의 일자리정책 중 상당수가 한시적 시범사업 형태로 추진되지만 수요자의 목소리를 반영하지 못하면 재정만 낭비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세종=최혜령 기자 herstory@donga.com
세종=이건혁 기자 gun@donga.com
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