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日, 친환경차 의무판매제 도입 시동… “우리도 속도 내야할 때”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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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까지 친환경차 200만 대 목표, 친환경차 의무판매 제도 도입 논의

#장면 1. 경기 용인시는 전기차 174대를 ‘완판’해 올 하반기 배당된 전기차 보조금을 모두 소진했다. 그런데 돌연 20명이 전기차 구입을 취소하겠다고 나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취소 사유는 “차를 받는 데 너무 오래 걸린다”는 것. 경기도 친환경차 보급 담당자는 “7월에 전기차를 신청했는데 지금까지 받지 못한 신청자도 여럿 있다”며 “소비자 수요는 빠르게 늘어나는데 자동차 제조사가 그 속도를 맞추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면 2. 다둥이 아빠인 홍모 씨(34)는 친환경차를 사고 싶어도 살 수 없다. 아이들을 모두 안전하게 태울 수 없어서다. 그는 “아이 셋을 태우려면 카시트 3개를 달아야 하는데 그만큼 큰 차가 없다”고 말했다.

친환경차의 수요를 생산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친환경차 보조금 제도처럼 수요를 끌어올리는 정책뿐 아니라 생산을 증진할 정책도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친환경차 의무판매 제도 도입 논의가 그중 하나다.

○ “어차피 맞을 매라면 빨리 맞는 게…”

서울시가 2010년 도입한 남산순환 전기버스 9대는 노후하고 잔고장이 잦아지면서 지난해 압축천연가스(CNG) 버스로 교체됐다. 국내 제조사의 친환경버스, 화물차 생산이 늘고 있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친환경차는 승용차에 국한돼 있다. 그나마 승용차의 종류도 많지 않아 소비자가 선택하기 충분치 않다. 동아일보DB
서울시가 2010년 도입한 남산순환 전기버스 9대는 노후하고 잔고장이 잦아지면서 지난해 압축천연가스(CNG) 버스로 교체됐다. 국내 제조사의 친환경버스, 화물차 생산이 늘고 있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친환경차는 승용차에 국한돼 있다. 그나마 승용차의 종류도 많지 않아 소비자가 선택하기 충분치 않다. 동아일보DB
도심 대기질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단연 자동차 배기가스다. 이르면 내년 상반기 미국 일본 수준의 대기환경 기준을 도입하는데, 대기질이 지금과 같다면 수도권 초미세먼지(PM2.5) ‘나쁨 일수’가 최대 7배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새 환경 기준에 발맞추려면 친환경차 확대가 시급하다.

하지만 현재 보조금 제도나 의무구매 제도로는 한계가 있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2011년 338대에 불과했던 전기차 보급대수는 5년 새 2만 대 넘게 늘었다. 하이브리드·수소차까지 합하면 현재 우리나라 친환경차 보급대수는 30만 대에 이른다. 하지만 전체 자동차 대수 대비 1%수준에 불과하다. 보조금과 구매 혜택만으로 ‘2022년까지 친환경차 200만 대 달성’을 실현하려면 최소 수조 원의 국가 재정이 필요하다.

이에 정부는 자동차 제조사에 친환경차 의무판매 비율을 부과하는 제도를 새로 도입하려 하고 있다. 의무판매 제도의 이점은 크게 네 가지다. △친환경차 보급 목표 달성이 쉽고 △국내 안정적 공급량을 확보할 수 있다. 또 △보조금 축소로 국가 재정부담이 줄고 △제조사로 하여금 다양한 모델과 기술 개발을 독려할 수 있다.

하지만 제조사들은 우리나라 친환경차 인프라를 감안할 때 시기상조라고 맞서고 있다. 친환경차 협력금 제도(대기오염물질 배출량이 많은 내연기관차에 부담금을 징수해 그 돈으로 친환경차를 지원하는 제도)도 도입이 추진되고 있어 기업에 이중 부담이 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전기차 확대의 가장 큰 걸림돌로 꼽힌 충전 인프라는 전국에 급속충전기 1468개, 완속충전기 1만4117개가 생겨 거의 전기차 1대당 1개꼴로 늘었다. 일반 내연기관차 생산 비율이 높은 국내 기업에 ‘역차별’이라는 친환경차 협력금 제도 논란도 국내 기업이 친환경차를 많이 만들면 자연스럽게 해결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황상규 한국교통연구원 명예연구위원은 “미래 자동차산업은 싫든 좋든 친환경차 쪽으로 가게 돼 있고 기업 입장에서 보면 신산업동력을 키우는 길”이라며 “외국도 자국 내 친환경차 비율을 늘리고 있어 수출을 하려고 해도 어차피 일정 비율 친환경차를 만들 수밖에 없다. 기왕 맞을 매라면 조금이라도 빨리 맞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 중국도 조만간 의무판매제 도입할 듯

실제 우리가 차를 팔아야 할 주요 수출국은 이미 의무판매제를 도입했거나 곧 도입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친환경차 의무판매 제도를 가장 먼저 시작한 곳은 미국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2005년부터 연평균 자동차 판매량을 기준으로 중·대형급 제조사에 일정 비율 친환경차 판매를 의무화하는 제도(Zero Emission Vehicle·ZEV)를 도입했다. 2019년엔 목표치가 4.5%지만 2026년엔 22.0%로 대폭 상향된다. 현재 미국 내 전기차 누적 보급대수 26만6000대 중 절반이 캘리포니아주 등록차량이다.

캐나다 퀘백주도 지난해 의무판매 제도를 도입해 2018년까지 친환경차 비율을 3.5%로 끌어올릴 예정이다. 중국과 일본도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특히 중국은 당장 내년부터 의무판매제 시행을 목표로 지난해와 올해 기본 계획을 발표했다. 2021년에는 현 보조금 제도마저 없애고 의무판매 비율을 더 높일 계획이다.

한국도 세계 최고 수준인 친환경차 보조금은 조금씩 감축할 예정이다. 의무판매 비율이 생기면 제조사는 자연히 소비자 입맛에 맞는 다양한 모델을 선보일 테고, 기업 간 경쟁으로 가격도 떨어질 것으로 정부는 보고 있다.

미국 아르곤 국립연구소가 대기오염 물질을 비교한 결과 전기차는 경유·휘발유차 등 내연기관차에 비해 대기오염 물질을 최대 98% 적게 내뿜었다. 지난해 10월 발표된 송한호 서울대 교수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전기차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내연기관차에 비해 51% 적었다. 황 명예연구위원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맞추기 위해서라도 친환경차 의무판매가 불가피하다”며 “이 제도는 국가와 기업, 소비자가 모두 상생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친환경차#친환경차 의무판매#전기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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