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대문구 홍제동에 사는 김모 씨(34·여)는 얼마 전 1년6개월간 부은 적금을 깼다. 전세 계약이 끝나자 집 주인이 보증금을 2000만 원 더 올려달라고 요구해서다. 김 씨는 "당장 목돈을 구할 수 없어 적금을 해지해 보탤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최근 김 씨처럼 적금이나 보험을 깨는 서민들이 늘고 있다. 살림이 팍팍해지면서 이자를 포기하거나 원금손실을 감수하더라도 생활자금을 마련해기 위해 금융상품을 중도 해지하는 것이다.
16일 은행권에 따르면 국내 은행 5곳(KB국민, 우리, 신한, KEB하나, NH농협)의 지난해 적립식 예금(적금) 중도해지 비율은 44.5%였다. 2015년 41.7%보다 2.8%포인트 올랐다. 만기를 채우지 못하고 해지한 적금이 10건 중 4건 이상이라는 뜻이다. 은행 5곳의 전체 적금 해지 건수는 2015년 678만6964건에서 1년 사이 670만8591건으로 줄었다. 하지만 이 기간 중도 해지한 건수는 282만6804건에서 298만4305건으로 늘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최근 경기가 어려워진 데다 저금리 기조로 적금 금리가 낮아져 중도해지가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시중은행 3년 만기 적금 금리는 대부분 1%대 후반이다. 적금을 해지해도 포기해야 하는 이자가 많지 않아서 큰 부담을 느끼지 않고 해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보험계약을 중도 해지할 때 받는 보험 해지환급금도 3년 연속 역대 최고치를 경신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3분기(7~9월)까지 생명·손해보험사들이 지급한 해지환급금은 22조9904억 원에 이른다. 생보사의 해지환급금이 14조6419억 원, 손보사가 8조3485억 원 규모다. 보험 해지환급금 규모는 2014년 26조2000억 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보인 뒤 2015년 28조3000억 원까지 늘었다. 이 추세라면 2016년 전체 환급금도 전년 기록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은 수십 년간 부어야 하는 장기 상품이라 살림이 어려워지면 유지가 어렵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최근 보험시장 전체 규모가 커지면서 신규 계약이 늘어난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본다.
금융 전문가들은 최근 장바구니 물가가 치솟는 등 서민 물가가 들썩이는 데다 대출상환 부담까지 커지면서 이 같은 추세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서민들이 금융상품을 유지하기 더 힘들어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정희수 하나금융경영연구소 개인금융팀장은 "최근 시중금리가 상승하면서 대출 이자 부담이 커져 보유하고 있던 금융상품에서 돈을 빼내 이를 충당하는 사람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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