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Special Report]“AI 발달로 진선미의 직업 추구하는 시대 열려”

  • 동아일보

이어령-진대제 前장관 ‘AI시대의 인간과 인생’ 대담
진대제 前 정보통신부 장관
알파고, 직관까지 갖춰 큰 충격… 전문-지식인의 영역까지 위협
기존 ‘좋은 일자리’ 무의미해질 것
이어령 前 문화부 장관
인공지능, 정의-윤리관 흔들지만 의식주 해결 떠난 다른 가치관 요구
참다운 삶 모색하는 계기 삼아야

초대 문화부 장관을 지낸 이어령 한일비교문화연구원 이사장(오른쪽)과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현 스카이레이크 인베스트먼트 
대표이사)이 벤치에 앉아 ‘인공지능 시대의 인간과 인생’을 주제로 대담을 나누고 있다. 최훈석 기자 oneday@donga.com
초대 문화부 장관을 지낸 이어령 한일비교문화연구원 이사장(오른쪽)과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현 스카이레이크 인베스트먼트 대표이사)이 벤치에 앉아 ‘인공지능 시대의 인간과 인생’을 주제로 대담을 나누고 있다. 최훈석 기자 oneday@donga.com
2016년 상반기 ‘알파고’ 혹은 ‘인공지능(AI)’이라는 단어가 한국사회를 강타했다. 예상보다 빠른 기술의 진보, 그것도 인간의 ‘추상화 능력’을 배워버린 기계의 등장에 영화 ‘터미네이터’ 시리즈나 ‘매트릭스’ 시리즈처럼 디스토피아를 그린 영화가 현실이 되는 것 아니냐는 농담 반 진담 반의 얘기가 떠돌기도 했다.

이 같은 우려 섞인 농담이 오가는 와중에서도 일부에서는 다소 진지한 질문도 던지기 시작했다. ‘인간은 이제 창조주가 된 것인가? 아니면 보이지 않던 신이 AI로 대체되는 것인가?’ ‘AI와 인간은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가?’ ‘인간처럼 사유하는 로봇이 등장한 시대에 인간다움은 무엇인가?’ ‘이제 인간은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치명적이고 놀라운 기술의 발달로 인해 다시 가장 인간적이고 철학적인 질문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산업사회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꾸는 인공지능의 시대에는 사람들의 세계관과 인간관, 그리고 인생론도 변할 수밖에 없다. 윤리, 가치, 정의, 그리고 ‘인간다움’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는 얘기다.

DBR(동아비즈니스리뷰) 205호에서는 ‘인생론’이라는 큰 주제 안에서 ‘AI 시대의 인간과 인생’에 대해 두 명의 석학으로부터 얘기를 들었다. 한 명은 인문학자로서 세계의 변화와 인간 삶의 변화를 고민하고 예측하고 있는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현 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 이사장), 다른 한 사람은 미국에서 공학자로 이름을 날리다 국내 최고 대기업의 경영자로 놀라운 성과를 내기도 했던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현 스카이레이크 인베스트먼트 최고경영자)이다.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에 대한 얘기에서 시작해 기술과 공학, 수학과 철학을 넘나든 두 석학의 대담을 요약해 싣는다.

진대제: 올 상반기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결이 가져온 충격이 크다. 바둑에서 이세돌 9단은 굉장히 창의적인 선수로 유명하다. 이창호 9단은 계산력이 강한 스타일인데, 그런 스타일로는 알파고한테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항상 놀라운 직관으로 가장 독특한 수를 잘 두는 게 이세돌 9단이었고 그가 졌다. 그런데 이긴 한 경기의 수를 보면 그건 역시 이세돌 다운 수였다. 계산으로는 찾기 매우 어려운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진짜 놀라운 건 그 이후의 알파고다. 그런 수가 있다는 걸 그 자리에서 학습해 그 대국에서 자기도 그런 수를 구사한다. 물론 성공하지 못해서 결국 졌지만 그 순간적인 학습에 정말 깜짝 놀랐다.

이어령: 그 ‘학습’이라는 게 참 놀라운 지점이다. 지금까지의 AI는 기억력 측면에서는 인간이 따라갈 수 없는 수준이었지만, 추론은 잘 하지 못했다. 맥락을 알아내는 걸 못했다. 그런데 알파고가 하는 그 ‘딥러닝’은 이걸 하기 시작했다. 과거의 AI가 주로 정확하고 세밀한 데이터 입력 위주의 ‘전문가 시스템(expert system)‘이었다면 지금의 AI는 올바른 결과가 나오면 승인하고 그렇지 않으면 거부하는 방식이다. AI가 경험을 쌓고 학습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옛날에는 하나하나 다 분석하려고 했기 때문에 실패했다. 그런데 인간의 뇌가 그러하듯, 정보를 필터링 해서 ‘대충’ 인식하는 방식, ‘특징을 잡아내는’ 방식을 적용하면서 AI가 달라졌다. 즉 예전 AI가 고양이와 개를 구별하기 위해 전 세계의 모든 고양이와 개의 사진을 입력해야 했다면, 지금의 AI는 마치 세 살짜리 아이가 금세 고양이와 개를 구별하듯 ‘직관적으로 대충 대충’ 둘의 차이를 구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진:
기술 발전으로 인해 우려되는 부분도 적지 않다. 급격한 변화의 과정, 현재의 AI가 만들어내는 변화 속에서 산업이 붕괴된다는 문제가 있다. 그게 산업주의를 벗어나는 과정이겠지만 어쨌든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자율주행차로 현재의 자동차가 완전히 대체된다고 생각하면, 서울시내에는 굳이 주차장이 필요없고, 차는 계속 움직이게 된다. 그러면 서울에 500만 대밖에 차가 필요가 없다. 자동차 산업은 물론이고 연관 산업이 엄청난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이:
기계가 지능을 갖게 되는 사회,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 인공지능, 그리고 인간과의 공존, 여기에서 참 많은 고민거리가 등장한다. 생명은 죽음과 동의어다. 사람이 죽지 않으면 지구가 멸망한다. 그런데 AI는 죽지 않기 때문에 위험성도 매우 높다. 당장 자율주행차 운전에서 윤리적인 문제가 등장한다. 사람이 운전할 때에는 아기가 갑자기 뛰어나오면 반대편에서 트럭이 오고 있어도 운전자는 운전대를 트럭 쪽으로 꺾는다. 운전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머릿속 ‘정의’ 문제다. 그런데 자율주행차의 AI라면, 트럭도 스캔을 해본 뒤에 거기 엄청난 화학물질, 폭발 물질이 있다는 걸 알 수 있고 그러면 그냥 더 큰 희생을 막기 위해 아이를 칠 수도 있다. 그런데 만약 그 아이가 또 하필 운전자의 아이라면? 이렇게 지금까지 우리의 윤리관과 정의 관념이 다 뒤죽박죽될 수가 있다.

진: 이 전 장관께서 인문학자로서의 중요한 통찰을 들려주셨는데, 나는 현재 기업인이니까 그런 측면에서 얘기해보고 싶다. 우리가 삶을 바라보는 시각, 인생관 같은 것도 많이 바뀌지 않을까 싶다. 지금처럼 대기업, 공기업, 공무원 등 좋은 일자리를 찾는 것도 무의미해질 수 있다. 지금까지는 소득도 높고 사회적 존경도 받았던 전문직과 지식인의 일자리가 사라지지 않을까 생각된다. 단기적일 수도 있겠지만 양극화가 더 심해질 수 있다. 기업가도 그렇고 어떤 전문직도 아예 AI를 넘어서는 수준의 일을 하는 소수가 아니면 당분간은 소득이 없는 상태로 전락할 수 있다. 역설적으로 가장 풍족한 시대에 가장 욕망을 자제해야 하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이: 나는 인문학자로서 좀 더 긍정적으로 먼 미래에 대해 얘기해볼 수도 있겠다. 세상은 ‘의식주를 해결하는 삶’에서 ‘진선미를 추구하는 삶’으로 바뀔 수도 있다. ‘진선미 추구’의 탈산업주의 시대에는 전혀 다른 가치관과 인생관이 지배하게 된다. 의식주는 다른 짐승도 다 한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무엇이 참다운 삶인지 따지는 ‘진’의 직업, 어떤 행동이 착한 것인지 규명하는 ‘선’의 직업, 무엇이 아름다움인지 생각하는 ‘미’의 직업이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노동’하고 ‘작업’하는 삶에서 ‘활동(봉사)’하는 삶으로의 전환이 이뤄지고, 우리는 어쩌면 처음으로 가장 인간적인 삶을 살 수도 있다. 그걸 지금부터 준비하고 사고의 패러다임을 바꿔나갈 필요가 있다.

고승연 기자 seanko@donga.com
#진대제#정보통신부#이어령#문화부#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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