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Case Study]SNS 홍보-패션쇼 생중계… 트렌치코트 날았다

  • 동아일보

디지털 문법에 발맞춘 패션 명가 버버리의 혁신
라이선스 남발 따른 위기 오자, 트렌치코트 중심 단순화에 집중
코트 입은 연예인-예술가 사진 게시하는 SNS사이트 개설… 온라인 통해 패션쇼 생방송도
韓 카카오-日 라인과도 손잡아… 젊은층 타깃 ‘진부함’ 벗기 성공

영국을 대표하는 럭셔리 브랜드 버버리는 한때 라이선스 남발과 체계적인 브랜드 전략의 부재로 위기를 겪었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최고경영진은 디지털이라는 도구를 채택했다. 현재 버버리는 ‘디지털 미디어 회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디지털은 ‘태양’처럼 이 회사 마케팅 전략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160년 전통의 ‘올드 컴퍼니’에서 밀레니얼 세대의 사랑을 받는 ‘영 컴퍼니’로 거듭난 버버리의 경영 비결은 무엇일까. DBR(동아비즈니스리뷰) 200호(5월 1일 자)에 실린 버버리의 디지털 혁신 사례를 요약해 소개한다.

○ 브랜드를 재정립하다

2006년 7월, 버버리의 최고경영자(CEO)로 취임한 앤절라 애런츠 전 사장은 첫 임원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전 세계에서 몰려든 임원들의 옷차림을 보자마자 뭔가 잘못됐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트렌치코트를 입기에 딱 좋은 날씨였는데도 60여 명의 임원 중 이 제품을 입고 나타난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임원들마저 입지 않는 마당에 어떻게 고객들에게 트렌치코트를 팔 것인가. 이것이 고민의 출발점이 됐다.

당시 명품 시장은 전 세계적으로 높은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버버리는 매년 평균 2%씩 거북이걸음으로 성장하는 데 그쳤다. 각 대륙으로의 영토 확장에 힘입어 글로벌 인지도는 높아졌지만 이 과정에서 23개의 라이선스가 남발됐고 대륙별로 가격 정책도 조금씩 달랐다. 경영진은 이런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당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던 크리스토퍼 베일리를 ‘브랜드 제왕’으로 추대했다. 이후 의상 디자인뿐 아니라 광고 이미지 등 ‘고객이 눈으로 볼 수 있는 모든 것’은 그의 사무실을 반드시 거쳐 가도록 했다.

디자인 의사결정 체계도 통합했다. 홍콩의 디자인팀을 해체하고 트렌치코트를 주로 만들던 미국 뉴저지 공장을 폐쇄했다. 일관성과 통일성을 기하는 ‘원 브랜드-원 컴퍼니’ 전략에 힘을 싣기 위해서였다.

또 경영진은 “모든 전략을 트렌치코트 중심으로 짜자”고 강조했다. 트렌치코트 안에는 ‘영국다움(Britishness)’ 등 이 브랜드의 핵심 요소가 모두 담겨 있었다. 이러한 움직임은 브랜드의 핵심 가치가 무엇인지 치열하게 고민한 끝에 나온 것이다. 버버리는 1차 세계대전 때 영국군에게 트렌치코트를 제공하고 많은 할리우드 스타들이 이 코트를 입고 은막을 누볐던 트렌치코트의 명가(名家)다. 그러나 2000년대 중반만 해도 트렌치코트를 필두로 한 외투의 매출 비중은 20% 남짓에 불과했다.

이 과정에서 버버리는 지금까지 럭셔리 업계가 메인 타깃으로 삼지 않았던 새로운 소비 계층에 집중했다. 바로 1980년대 초부터 2000년대 초 사이에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였다. 이들을 타깃으로 하다 보니 자연스레 디지털은 버버리 부흥 전략의 중심이 됐다.

다행히 당시 버버리의 영국 본사 직원 중 70%가 30세 미만의 밀레니얼 세대였다. 버버리는 기술 혁신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사는 이들이 수평적 분위기 속에서 참신한 아이디어를 내게 하는 전략혁신위원회를 마련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탄생한 것이 2009년 11월 출시한 ‘아트오브더트렌치(Art of the trench)’였다. 이는 트렌치코트를 입은 연예인과 예술가 등을 찍어 올린 글로벌 소셜미디어 웹사이트다.

2009년 9월 영국 런던에서 열린 ‘버버리 프로섬’ 2010년 봄여름 패션쇼에서는 온라인 채널을 통해 버버리 패션쇼 전체가 실시간으로 생중계되기도 했다. 당시 해외 언론들은 ‘소수의 업계 관계자를 위해 열렸던 패션쇼가 ‘민주화’를 맞이했다’고 해석했다.

○ 혁신은 계속된다

2014년 5월, 애플로 이직한 애런츠의 뒤를 이어 버버리의 CEO를 맡게 된 후계자는 놀랍게도 베일리였다. 총괄 디자이너가 경영까지 맡은 것은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인사 혁신’이었다. 베일리는 이후 기업 내 디지털 DNA를 자신의 방식으로 차근차근 살찌워 나가기 시작했다. 또 글로벌 채널뿐 아니라 각국의 로컬 디지털 플랫폼을 통한 마케팅도 더욱 활발하게 펼치기 시작했다. 2015년 한국에서 카카오, 일본에서 라인 등과 제휴를 맺고 각국의 소비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방식으로 온라인 콘텐츠를 공급하기 시작했다.

구글 애플 등 세계의 혁신 기업들과 제휴를 확대해 나가면서 뉴욕의 리서치회사 L2가 럭셔리 업체들의 디지털 역량을 평가하기 위해 만든 ‘L2 패션 디지털 인덱스’에서 지난해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베일리는 또 매년 네 차례 선보였던 남성복과 여성복 쇼를 통합해 연 2회만 열고 쇼에 나온 의상들은 쇼가 끝나자마자 즉시 매장과 온라인을 통해 팔 것이라고 선언했다. 버버리가 진행하는 디지털 이벤트 중에는 ‘럭셔리 업계 최초’라는 타이틀이 붙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만큼 빠른 속도로 혁신이 진행되고 있다는 뜻이다. 물론 앞으로의 과제도 적지 않다. 예컨대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는 온라인 유통 채널의 특성상, 국가별 가격 정보 관리 전략은 시급히 수립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 성공 요인 및 시사점

버버리가 오늘날 가장 혁신적인 럭셔리 브랜드로 꼽히게 된 첫 번째 성공 요인은 브랜드 구조의 단순 집중화를 통해 정체성을 강화한 것이다.

많은 브랜드가 세계 시장에 진출하며 대형화하기 시작하면 흔히 외형 중심의 확장에 함몰된다. 이때 ‘아이덴티티’라고 불리는 브랜드 정체성, 또는 고객과의 약속, 브랜드 핵심 가치는 뒷전으로 밀려날 수 있다. 이러다 보면 ‘브랜드 중심’이 아닌 제품 또는 지역 중심의 조직 구조와 관리 시스템이 생겨나게 된다.

브랜드 혁신을 통해 옛 명성을 되찾고자 하는 명가(名家) 브랜드 부활의 첫 출발점은 제품, 지역 중심의 구조를 버리고 초심으로 돌아가 브랜드 중심의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버버리는 ‘브랜드 제왕’을 중심으로 브랜드 관리 구조를 집중하고 통제력을 강화하면서 이를 실천할 수 있었다.

젊은 고객층을 타깃으로 삼은 점도 돋보인다. 젊은 세대를 겨냥한 마케팅 활동을 벌이면서 버버리는 젊은 브랜드라는 인식을 대중에게 심어줬다. 이 같은 마케팅 전략은 전통에 함몰돼 자칫 생기를 잃을 수 있었던 럭셔리 브랜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

김현진 기자 bright@donga.com
여준상 동국대 경영학부 교수 marnia@dgu.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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