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VR 생태계 없어 콘텐츠 해외로 샐 우려”

국내 대표 VR 콘텐츠 기업 이끄는 3人의 고민

한국이 가상현실(VR) 산업을 선도하려면 어떤 경쟁력을 갖춰야 할까. 국내 VR 콘텐츠 기업을 이끌어온 김용훈 옴니C&S 대표(왼쪽), 서동일 볼레크리에이티브 대표(오른쪽), 김일 매니아마인드 대표는 “콘텐츠의 질을 높여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스마트폰이 처음 나오기 시작했던 2010년대 초반, 2세대(2G) 피처폰 콘텐츠를 만들어왔던 개발자들은 고민에 빠졌다. 그동안 게임할 때 조이스틱처럼 써왔던 키패드가 스마트폰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초기에 개발됐던 스마트폰 게임 화면 하단에 피처폰에서 그대로 따온 키패드를 위치시켰다. 지금처럼 화면 터치와 드래그로 조작하는 무궁무진한 게임들이 나오기 전에 일어난 시행착오였다.

가상현실(VR) 콘텐츠 기업 볼레크리에이티브를 만든 서동일 대표(39)는 최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초창기 스마트폰 콘텐츠가 미처 단말기 혁신을 따라잡지 못했던 것처럼 VR 기기들이 등장하는 현 시점에서도 VR 콘텐츠 역량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자칫하면 왕 서방이 돈 버는 판”

VR는 인공지능(AI)과 함께 올해 정보통신기술(ICT) 업계의 키워드로 떠올랐다. 정부는 20일 VR 산업에 2년간 500억 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국내에서의 논의는 아직까지 삼성전자·LG전자 등 제조사가 내놓는 하드웨어 품평에 그치고 있다. 본보는 이미 앞서 국내 대표 VR 콘텐츠 기업을 이끌어온 대표 3인방을 만나 향후 고민해야 할 VR 산업의 방향성을 들어봤다.

서 대표는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왕 서방이 버는’ 상황을 가장 우려했다. 그는 “국내에서 VR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의 가장 근본적인 고민은 ‘어디에 유통할 수 있느냐’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대만 HTC가 소프트웨어 회사인 밸브를 통해 VR 콘텐츠를 빨아들이고, 미국 가상현실 기업 오큘러스도 자체 콘텐츠 플랫폼을 만들어 내고 있다. 하지만 국내엔 아직 마땅한 생태계가 없어 애써 개발한 콘텐츠가 해외로 샐 수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 텐센트가 자국 정서에 맞는 자체 VR 콘텐츠 플랫폼 구축에 앞장서고 있다는 점도 주시해야 한다. 김일 매니아마인드 대표(40)는 “한국 기업들도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부터 시도해봐야 한다”며 “최종 소비자들과의 체험 접점을 많이 만들고, 장기적인 개발뿐만 아니라 6개월, 1년짜리 단기 콘텐츠를 만들어 반복적으로 학습하고 실험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 게임산업 태동기처럼 커뮤니티 만들어져야

국내 게임 산업의 시초는 인재들의 커뮤니티에서 태동했다. 서울대 공대 선후배 사이였던 김정주 넥슨 창업주와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가 그 사례다. 우수한 개발 인력들끼리 정보 교류로 게임 시장이 꽃피었다. 하지만 VR 콘텐츠 업계에선 아직 개발자끼리 활발하게 교류하지 않고 있다. 김용훈 옴니C&S 대표(43)는 “우수한 기술력이 분산돼 있다는 느낌”이라며 “신생 콘텐츠 기업들이 모이고 정보를 나눌 수 있는 포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내 제조업계의 관점이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서 대표는 “소니가 ‘플레이스테이션(플스)’을 성공시킬 수 있었던 것은 기존 게임 콘텐츠 기업들 중 잘하는 곳을 재빨리 섭외해 론칭과 동시에 플스 전용 콘텐츠를 내놨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소니의 플스를 사야만 되는 이유를 먼저 제공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용훈 대표는 “구글처럼 VR 콘텐츠 개발 축제나 포럼 등을 실시하고 이를 통해 우수 콘텐츠를 발굴하는 시도도 중요하다”며 “이번에 LG전자가 ‘G5’ 개발자 콘퍼런스를 연 것은 좋은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곽도영 기자 no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