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onomic Review]‘창조적 파괴’ 의류 제조업의 성공신화를 다시 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2월 24일 03시 00분


코멘트

호전실업㈜

호전실업㈜ 인도네시아 공장
호전실업㈜ 인도네시아 공장

많은 이들이 혁신을 이야기한다. 경기 상황이 어려울수록, 성장이 정체될수록 혁신은 관용구처럼 회자된다. 사실 경영 위기나 운영 난맥상을 돌파하는 최고의 무기가 혁신이지만, 요즘에는 조금 바꾸는 수준을 넘어 아예 시장을 무너뜨리는 ‘파괴적 혁신’을 지향한다. 적절한 개선이 아니라 아예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혁신. 그것은 상식의 파괴요, 기존 비즈니스의 관습을 파괴하는 혁명 같은 변화를 의미한다.

호전실업㈜(회장 박용철)은 현재 ‘의류 제조 부문의 리딩 컴퍼니’로 군림하고 있다. 모두가 한물간 사업이라 여기던 의류 제조업에서 이들은 한계를 넘어, 업계에 새로운 성공 방정식을 쓰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의류 제조 부문에 ‘혁신’이라는 돌파구를 개척한 박용철 회장을 통해 이뤄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로지 실력과 신용으로 위기를 극복하다

현재 의류 제조업 분야의 리더로 평가받고 있는 박 회장은 우연한 기회를 통해 의류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건 곧 운명이나 다름없었다. 1960년대 식품공학과를 졸업하고 몇몇 식품회사를 전전하던 그는 1970년대 후반 새로운 운명과 마주했다. 당시 성장 중이던 의류 제조업의 잠재력을 발견한 것. 이후 맨바닥에서부터 의류 제조업에 대해 배워가던 그는 ‘남들이 안 하는 것을 해야 성공하고 오래갈 수 있다’는 신념 하나로 특별한 발전방안을 모색한다.

사실 그가 1985년 3월 18일 두 명의 사원과 사업을 시작하던 시기만 해도 의류 수출은 쿼터(일종의 수출입 배당량)제로 이뤄지고 있었다. 하지만 정부에서 나눠준 쿼터는 대부분 대기업들이 갖고 있었고, 그는 당시 모 대기업에서 쿼터를 빌려주겠다는 제안을 받아 가까스로 미국 바이어의 레인코트 10만 장 주문을 처음으로 받게 된다. 하지만 주문한 레인코트의 선적이 임박했을 때 그 대기업이 쿼터를 대여해줄 수 없다고 갑작스레 통보하며 한 차례 위기를 맞았다. 창고에 쌓여 있는 옷과, 이를 수출하지 못해 한숨 쉬던 그에게 파산의 위기가 다가온 것이다.

하지만 그는 막연히 주저앉아 있지 않았다. 아니, 정확하게는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당시 그에게 새로운 돌파구가 된 건 전 세계에서 유통과정이 가장 까다롭고, 유일하게 쿼터 없이 수출할 수 있던 일본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일본 시장에서 성공하면 그 기술력은 어딜 가도 무서울 게 없다’는 생각이 강했다. 하지만 일본어도 모르고, 업체 정보도 잘 모르는 상황. 그럼에도 일단 부딪혀 보기로 한 박 회장의 굳은 의지는 이후 이토추 상사를 통해 캐빈(의류 브랜드)이라는 유통 업체와 첫 거래를 텄다. 별다른 백도 없이 오로지 실력과 신용만으로, 그 까다롭다던 일본 시장 진출에 성공한 것이다.

앞날을 보는 혜안이 글로벌 브랜드를 고객으로 만들어

이후 박 회장은 또 다른 도전에 맞닥뜨리게 된다. 지난 8년간 거래해온 일본의 거래처가 사전 연락도 없이 가격이 싼 중국으로 거래처를 바꿔버린 것이다. 다시 한 번 찾아온 위기. 하지만 박 회장은 이때 완전히 눈앞에 닥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긴 안목으로 새로운 접근법을 찾기 시작했다. 당시 싸다고 모두가 찾는 중국이 아니라, 인도네시아에 진출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당시 그에게는 ‘중국에서 이탈하는 바이어가 반드시 인도네시아로 올 거’라는 강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의 예상은 ‘보기 좋게’ 들어맞았다. 2009년부터 중국의 제조 경쟁력이 떨어지며 인도네시아로 바이어들이 몰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인도네시아에서 크게 성장 중인 아웃도어나 스포츠웨어 팀복 같은 특수 분야를 할 수 있는 회사는 호전실업이 유일했다. 노스페이스, 나이키, 리복, 아디다스, 언더아머 같은 세계적인 스포츠 브랜드들이 호전실업의 고객이 된 건 너무나 당연한 결과였다.

뛰어난 기술로 100년 기업을 꿈꾸다!

호전실업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우수한 품질과 납기 준수’다. 장인정신을 기반으로 꾸준히 노력해 남다른 기술 경쟁력을 유지하고, 고객들이 원하는 납품시기를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키는 신용도를 절대적으로 지킨 것이다. 특히 기술력에 대한 관심이 바늘과 실을 이용하지 않는 박음질 기계를 개발해 봉제 혁신을 이루고, 고주파를 이용한 접합기술로 완전 방수를 달성할 수 있었다. 호전실업이 개발한 고주파 접합 기술은 이 단점들을 모두 해결해 제조 경쟁력을 한층 더 높일 수 있었다.

앞으로도 호전실업은 기술 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자카르타에 설립 중인 섬유연구소를 통해 공정을 완전 매뉴얼화해 전 세계 어디서든 생산량을 늘릴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할 것이다. 또한 적극적인 연구개발(R&D) 투자를 통해 세계 최고 수준의 품질과 생산 효율을 달성하려 한다.

“뛰어난 기술로 50년, 아니 100년 이상 가는 기업을 꿈꾸고 있다”는 박 회장의 말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영속적인 기업을 꿈꾸며 TOC(Theory Of Constraints)를 도입하고 올 하반기 코스닥 상장을 목표로 하는 호전실업의 도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최윤호 기자 uknow@donga.com
▼호전실업㈜ 박용철 회장 인터뷰▼
성공적 현지화 직접 이끈 ‘재계의 인도네시아통’


현재 재계에서는 박용철 회장을 ‘대표적인 인도네시아통’으로 평가하고 있다. 일찍이 한정된 국내 시장을 넘어 해외 시장을 물색하던 그는 1991년 현지 ‘까웰(Kawell)’ 브랜드와 합작 회사를 설립하며 그 물꼬를 텄다(이후 까웰 지분 100% 인수). 이후 부문별로 제조 범위를 넓혀 갔으며 2008년에는 인도네시아에 대규모 공장을 설립해 현재까지 6개에 달하는 공장을 세워 회사를 발전시켰다.

특히 ‘신용을 사업의 생명’처럼 여기는 박 회장은 단순 진출이 아니라 인도네시아 현지화에 더욱 진력하고 있다. 이를 위해 인도네시아에서 단순히 저렴한 노동력만을 얻으려는 것이 아니라, 아예 현지 직원들에게 꾸준한 교육을 제공하고 자카르타에 섬유연구소까지 설립해 의류 제조기술의 발전도 함께 모색 중이다.

누구보다 인도네시아 제조업의 경쟁력 강화에 관심 있는 그는, 이 자리를 빌려 양국 정부에 꼭 이야기하고 싶은 사안이 있다고 한다. “인도네시아의 사무직 현지인들은 한국에 데려와 교육을 시킬 수가 없어요. 한국에 공장이 없으면 국내에서 교육을 못 시키는 법 때문인데, 이들을 데리고 와서 교육을 시키면 현지에서의 생산량을 크게 늘릴 수 있을 겁니다.” 그러면서 그는 인도네시아 정부에도 “현지에서 기업이 커지면 그만큼 한국인들이 인도네시아에 상주할 수 있는 TO를 더욱 늘려줘야 합니다. 인도네시아 정부가 이 문제에 더욱 관심을 가져줘야 우리도 더 적극적으로 진출해 현지 제조업의 경쟁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란 당부를 빼놓지 않았다.

올해로 창립 31년째를 맞는 호전실업은 인도네시아에서 제2, 제3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이미 현지에 대규모 공장을 설립하고 자동화 시스템까지 구축한 호전실업은 세계 최고의 생산 효율성을 달성하기 위해 더욱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문화 한류의 또 다른 성공사례를 기대해본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