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부고속도로 양재나들목(IC)이 위치한 서울 서초구 양재동 및 우면동 일대는 수도권에서 가장 경쟁력이 뛰어난 기업 입지로 손꼽히는 곳이다. 교통 여건이 좋고 넓은 땅이 있는데다 대·중소기업 280여 곳의 연구개발(R&D) 시설이 자리잡고 있어 시너지 효과도 클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이 지역의 상당 부분은 토지 용도에 따른 용적률 규제 등을 받고 있어 개발에 제약이 크다. 주요 대기업들이 이 지역에 1조 원에 가까운 R&D 투자 계획을 준비하고 있지만 각종 규제에 발목이 묶여 투자 집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정부가 17일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내놓은 기업투자 프로젝트 지원안은 이처럼 규제에 가로막혀 투자가 늦춰지고 있는 이른바 ‘현장 대기 프로젝트’들이 계획대로 진행될 수 있도록 돕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정부는 현장 대기 프로젝트 6건이 제 궤도에 오르면 ‘6조2000억 원+알파(α)’의 투자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양재IC 일대, R&D 메카로 키운다
정부는 우선 양재·우면동 일대 땅 33만 ㎡를 올 10월까지 지역특구로 지정해 R&D 시설 입주를 위한 각종 특례를 인정하기로 했다. 과거 경부고속도로가 건설된 초창기 시절만 해도 이 지역은 서울 외곽의 대표적인 ‘한적한 동네’라 양곡도매시장, 화물트럭터미널 등 넓은 땅을 필요로 하는 시설들을 세우기 적합했다. 이에 맞춰 당시에 만든 낡은 규제가 지금까지 이어지면서 투자를 가로막았다는 게 정부 판단이다.
실제로 이 지역에 있는 LG전자, KT 등의 R&D센터는 들어선 곳이 자연녹지 또는 2종 주거지역이라 용적률이 50~200%로 제한받고 있다. 2020년 이후에 양재동 본사를 글로벌 R&D센터로 바꿀 현대자동차그룹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양재IC 인근의 미개발 땅이 많지만 대부분 유통업무설비 지역으로 지정된 곳이라 용적률이 사실상 100% 이내로 묶여 있다.
정부는 파이시티 용지, 농협 하나로마트 양재점, 양재동 화훼공판장, 농협 양곡유통센터 등을 특구로 지정할 계획이다. 신분당선 매헌역 인근 중소기업 R&D 밀집 지역도 특구로 묶을 예정이다. 특구로 지정되면 이 지역에 건립하는 R&D 관련 시설에 대해서는 건폐율·용적률을 대폭 완화한다. 각종 인허가 절차 등은 ‘패스트 트랙(fast-track)’으로 빠르게 처리하고 공공용지를 활용해 창업 보육 시설, 회의실 등 R&D 지원시설도 세울 계획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2017년부터 단계적으로 특구 조성이 시작되면 3조 원 규모의 투자 창출이 예상된다”며 “인근 판교 테크노밸리와 연계해 민간기업 R&D의 메카로 육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 수도권 규제 풀어 투자 촉진
양재·우면동 R&D 특구 외에도 정부는 고양 ‘K-컬처밸리’와 자동차 서비스 복합 단지 등 수도권에서 추진 중인 다양한 프로젝트에 속도를 내기로 했다. 기업 투자를 이끌어 내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게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판단해 수도권 규제에 손을 댄 것이다.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장항동 일대에 들어서는 한류 문화콘텐트시설인 ‘K-컬처밸리’ 사업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2월 계획안을 발표하고 12월에는 CJ그룹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지만 공유지 규제에 묶여 사업 진행이 지지부진했다. 현행 공유재산법상 서비스업 사업자에게는 공유지를 빌려줄 수 있는 기간이 5년에 불과하고 수의계약도 불가능해 과감한 투자를 하기 쉽지 않았다. 정부는 공유재산법 시행령을 6월까지 개정해 관광·문화시설 용도로 공유지를 사용할 경우에도 대부기간을 최대 20년까지 늘려줄 계획이다.
고양시가 덕양구 강매동 행주산성 인근에 추진 중인 ‘자동차서비스 복합단지’도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해제지침을 고쳐 사업을 허용할 방침이다. 또 의왕 산업단지, 충남 태안군 타이어 주행시험센터를 만들기 위한 토지 계획 변경을 추진하고 경기 안성시 등 농업진흥구역 저수지 39곳에 수상태양광 발전 시설과 부대시설 설치를 허용하기로 했다.
정부는 새만금 지역을 규제 프리존으로 만들고, 외국인투자기업 뿐 아니라 국내기업에 대해서도 최대 100년간 새만금 국·공유지를 장기 임대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경제자유구역 중 국내기업에도 이 같은 혜택을 주는 건 새만금이 처음이다.
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세종=이상훈 기자 january@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