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오후 7시 반경 서울 강남구 개포동 개포주공1단지 상가. 상가에 들어선 공인중개소 20여 곳 중 불이 켜진 곳은 2곳뿐이었다. 이 상가의 A공인중개사 대표는 “올해 초 부동산 시장이 호황일 때는 오후 9시가 넘어도 퇴근길에 들르는 고객들을 응대하기 위해 문을 연 공인중개소가 많았지만 지난달부터 거래가 뜸해져 다들 일찍 문을 닫고 있다”고 말했다. 매수 문의도 10월에는 하루에 5건 정도 됐지만 이제는 하루에 1건이라도 들어오면 다행이라는 것이다. 인근 대치동 도곡동 중개소들의 사정도 비슷하다.
올해 부동산 열기를 이끌었던 서울 강남3구(강남·서초·송파구) 아파트 시장에 이상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최근 매매거래량과 매매가격이 동시에 감소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부동산업계에서는 “기존 아파트 매매시장부터 슬슬 얼어붙는 신호”라는 관측과 “일시적 위축”이라는 견해가 엇갈리고 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겨울방학 이후 새 학기를 준비하는 학부모들의 이주 움직임을 보면 강남 아파트시장의 향방을 가늠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8일 한국감정원 부동산통계정보에 따르면 강남3구 아파트 매매거래량은 9월과 10월에 지난해 같은 달보다 각각 22.2%, 12.7% 감소했다. 주택시장 성수기인데도 가장 몸값이 높은 강남3구 아파트가 오히려 시장의 외면을 받은 셈이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12월 첫 주 강남구의 아파트 평균 매매가는 전주보다 0.01% 하락했다. 강남구 아파트 값이 떨어진 것은 지난해 11월 말(―0.02%) 이후 1년여 만이다. 강남3구 공인중개소 사이에서는 “부동산 경기가 지난해 ‘9·1 부동산 대책’ 발표 이전으로 유턴하는 게 아니냐”며 말까지 나온다.
부동산업계는 강남 아파트값과 거래량의 하락 원인으로 집주인과 매수자 간의 미스매치를 꼽고 있다. 분양가 상승세를 타고 기존 집주인도 집값을 높이고 있지만 매수자는 가격 부담 때문에 집 사길 주저한다는 것이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 럭키공인 관계자는 “‘반포 래미안 아이파크’ 등 이 지역 아파트 분양가가 3.3m²당 4000만 원을 훌쩍 넘어서자 집값이 오를 것으로 기대하는 집주인들이 높은 가격에 매물을 내놓고 있지만 매수자들은 움직이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가계대출 규제가 내년에 강해질 것으로 보고 투자자들이 고가의 강남 아파트 매매를 주저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금 집을 사면 대출 규제가 시작되는 내년에 잔금을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 학사공인중개사 관계자는 “무지개아파트가 12억5000만 원에 거래될 정도로 집 사겠다는 사람이 많았는데 내년에 대출 규제를 강화하겠다는 정부 발표가 나온 이후 투자자들이 집 사길 부담스러워한다”고 전했다.
불경기로 인해 강남권 학원가를 찾아오는 수요자들이 줄어든 점도 강남권 아파트 거래 둔화에 한몫했다. 집값이 오르면서 비싼 강남권 학원가를 고집하는 학부모들이 줄었다는 게 인근 공인중개사들의 설명이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 학원가의 B공인중개소 관계자는 “경쟁은 치열한데 학생은 많지 않아 재수학원이나 단과반을 운영하는 작은 학원들이 평수를 줄여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간다”며 “건물주가 학원을 내보내고 사무실을 내놓기도 한다”고 말했다.
통계적인 착시도 원인으로 지목된다. 지난해 ‘9·1 부동산 대책’ 발표 직후 거래량이 갑자기 늘어나다 보니 올해 거래량이 상대적으로 더 감소한 듯이 보이는 착시효과가 나타난 결과라는 것이다.
경기 변화에 가장 민첩하게 움직이는 강남권 시장이 위축되자 일각에서는 수도권 부동산시장으로 침체가 확산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박상언 유엔알컨설팅 대표는 “재건축조합만 조직된 사업 초기의 재건축 아파트들의 수익성이 나빠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반면 겨울방학철인 다음 달부터 ‘학군 수요자’들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면 강남 주택시장이 활기를 되찾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공급 과잉 논란, 금리 인상 전망 등의 악재로 투자심리가 일시적으로 위축됐을 뿐 본격적인 경기 하락기로 보긴 이르다”며 “학군 수요자들이 움직이는 내년 1, 2월의 움직임이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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