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간 178兆 더 늘렸는데… 성장 발목잡는 정책금융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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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금융기관 구조조정 방안’ 보고서

정부가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신용보증기금 등 정책금융기관을 통해 시중에 투입해온 정책금융 잔액이 2012년 말 현재 719조 원까지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연간 국내총생산(GDP) 대비 1년간 쏟아 넣은 정책자금 비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의 2.3배에 이른다.

박근혜 정부 들어 적극적 재정정책을 추진해온 점을 감안하면 전체 정책금융 잔액은 더 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정부 지원으로 연명하는 ‘좀비기업’이 늘고 중복지원 문제가 심해지면서 정책금융이 건전한 성장을 저해하는 애물단지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 정책기관 관리기업 43%가 부실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과 특임교수는 18일 내놓은 ‘정책금융기관 구조조정 방안’ 보고서에서 2012년 말 기준 정책금융기관을 통한 보증 및 대출 잔액이 719조 원으로 금융위기 당시인 2008년 말(541조 원)보다 178조 원(33%) 증가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12년 GDP 대비 당해연도 공급된 정책금융 비율은 7.3%였다. 이는 재정확대 기조를 유지해온 일본(12.1%)보다는 낮지만 독일(1.0%) 캐나다(0.8%) 미국(0.5%) 영국(0.03%) 등에 비해 크게 높은 것이다.

문제는 기업 구조조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가운데 정책자금이 대규모로 풀리면서 퇴출돼야 할 기업이 연명하거나 ‘정책금융 따먹기’에 익숙한 일부 기업에 자금이 중복지원 되고 있다는 점이다. 설비자금 대출 등을 주로 담당하는 산업은행의 지난해 말 기준 총여신 125조 원 중 정책금융 비중은 80조 원(64%)에 이른다. 산업은행이 관리하는 관리기업 268곳 중 구조조정 중인 부실기업은 올해 3월 말 114곳(43%)이나 된다. 이런 가운데 산은이 관리하는 대우조선해양의 부실이 올 2분기(4∼6월)에만 3조 원이나 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수출입은행은 부실 여신이 늘면서 6월 말 기준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이 10.01%로 국내 은행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이다. 수은은 2012년 이후 정부가 여러 차례 출자하며 자기자본비율을 높여왔는데 정부가 다시 1조 원 안팎을 현물 출자해야 하는 상황이다.

중소기업 정책금융을 통해 기업에 지원되는 대출은 전체 은행대출 중 12%로 OECD 평균(5%)보다 크게 높다. 최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내놓은 ‘중소기업 금융지원 효율화 방안’ 보고서 등을 종합해보면 국내 중소기업의 효율성은 미국의 절반 수준이고 1인당 부가가치 생산성은 국내 대기업의 3분의 1에 머물고 있다.

○ ‘낙하산’ 빼고 전문가 중심 구조조정 필요

정책금융체계와 정책금융기관을 대수술을 하려면 구조조정의 칼자루를 전문가에게 맡겨야 한다는 조언이 많다. 부실에 책임이 있는 경영진이 구조조정 작업을 맡으면 개혁의 신뢰성을 얻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정책금융기관의 중심인 산업은행과 관련해서는 민영화를 다시 추진하되 기업 인수합병(M&A) 부문과 투자은행 부문으로 쪼개 시장에 매각하는 시나리오가 다시 제기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산은이 맡아온 수출 관련 정책금융 부문은 수은으로 넘기고 중소기업 관련 정책금융은 기업은행으로 넘겨 일원화해야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중소기업 정책자금 지원체계도 기관 통폐합을 통해 중복지원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오 교수는 “정책자금을 지원할 때 떼일 염려가 없는 곳에만 안정적으로 빌려주기보다는 창조적이고 모험적인 분야에 투자해 미래성장동력을 육성하는 체계로 개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세종=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정책금융#구조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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