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달 15일부터 코스피와 코스닥시장의 가격제한폭이 현행 ‘±15%’에서 ‘±30%’로 확대된다. 1998년 이후 현행 수준에서 유지되던 가격제한폭이 17년 만에 갑절로 확대되면서 국내 증시의 활력이 높아지고 효율적인 가격 결정 구조가 자리 잡을 것이라는 기대가 높다.
하지만 증시의 변동성이 높아져 정보에 어둡고 리스크 관리에 서툰 ‘개미’ 투자자들의 피해가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특히 최근 ‘가짜 백수오’ 사태에서 보듯이 시가총액이 큰 종목이 흔들릴 경우 시장 전체가 받는 충격은 더 커질 수 있다.
한국거래소는 17일 코스피·코스닥·파생상품시장의 가격제한폭을 다음 달 15일부터 ±30%로 확대하는 내용의 업무규정 시행세칙을 개정했다고 밝혔다. 일부 외국계 증권사를 제외한 국내 44개 증권사는 가격제한폭 확대에 필요한 전산 개편 작업을 마무리했으며 이달 초부터 거래소와 시스템을 연계해 모의거래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국내 증시의 가격제한폭 확대는 이번이 다섯 번째다. 유가증권시장은 이전에는 정액으로 가격 제한을 실시하다 1995년 4월 처음 가격제한율을 도입해 ±6%의 한도를 뒀다. 이후 가격제한폭은 3차례 확대돼 1998년 말 ±15%로 정해진 뒤 지금까지 이어졌다. 코스닥시장은 1996년 11월 ±8%로 시작해 2005년 3월 현행 수준으로 확대됐다.
주가에 가격 제한을 두는 것은 시장 안정에는 도움이 되지만 효율적인 가격 형성을 가로막고 작전세력의 시세 조종에 악용될 수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또 주가가 상한가나 하한가 근처에서 등락할 경우 투자자들이 과잉 반응해 가격제한폭으로 붙어버리는 이른바 ‘자석 효과’가 발생하는 문제도 있었다.
이런 부작용 때문에 미국, 유럽은 증시에 가격 제한을 두지 않는다. 일본, 중국, 대만 등이 ±7∼22%의 가격제한폭을 운영하고 있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가격제한폭이 확대되면 기업의 가치 변동이 주가에 신속하게 반영될 수 있고 시세를 조작하기가 더 어려워진다”며 “시장의 효율성과 건전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만만찮다. 가격제한폭이 확대되면 가짜 백수오 사태 같은 돌발 악재가 발생했을 때 시장이 받는 충격이 훨씬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현행 가격제한폭 아래서는 주가가 반 토막이 되기까지 5거래일이 걸린다. 하지만 가격제한폭이 30%로 확대되면 이틀 연속 하한가를 맞을 경우 주가가 바로 반 토막이 나고, 나흘 만에 4분의 1 수준으로 폭락할 수 있다.
변동성이 심한 코스닥 종목과 중소형주에 주로 투자하는 개인투자자들의 손해가 순식간에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는 것이다. 현행 제도에서도 지난해 유가증권시장에서는 하한가가 225회 나온 반면에 코스닥시장에서는 440회로 2배가량 많았다. 또 큰 가격 변동 폭을 노려 단기간에 과실을 따먹으려는 ‘단타 매매’가 기승을 부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원배 현대증권 연구원은 “가격제한폭이 확대되면 개인투자자들은 실적이 뒷받침되지 않거나 무분별한 테마에 편승하는 ‘묻지 마 투자’를 더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거래소와 금융당국은 이런 부작용에 대비해 주가가 급등락하는 경우 매매를 일시 정지하는 서킷브레이커 제도를 강화하는 등 보완책을 마련했다. 하지만 개인투자자들에게 공포의 대상인 공매도(가격 하락을 예상해 주식을 빌려서 매도한 뒤 주가가 떨어지면 이를 되갚아 차익을 얻는 방식·기관이나 외국인이 주로 함) 규제 강화방안은 여전히 국회에서 계류 중이어서 법안 처리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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