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직장인 회식문화]한우등심 배부르게 먹고 일찍 집으로… '911' 회식

  • 동아경제
  • 입력 2015년 4월 10일 10시 00분


코멘트
직장인들의 회식문화가 바뀌고 있다. 과거 2차, 3차, 심하게는 새벽까지 코가 삐뚤어지게 마시던 폭주 회식은 사라지고 가볍게 저녁식사를 하며 반주를 즐기는 정도에서 그치고 있는 것.

최근 직장인들의 회식을 대변하는 대표적인 키워드 중 하나는 ‘911’이다. 아홉시까지(9), 1가지 술로(1), 1차(1)에서 끝내고 빨리 귀가한다는 의미다.

회사원 A씨는 며칠 전 부장으로부터 회식장소를 알아보라는 명(?)을 받았다. 추진했던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끝낸 것을 자축하는 회식이다. 조건은 3가지다. 첫째는 사무실(서울 광화문)에서 멀지 않은 곳, 둘째는 시끄럽지 않고 깨끗할 것, 셋째는 가능하면 한우를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곳이다. 이날 예상 회식비는 부서원 10명에 50만 원(1인당 5만 원선) 내외. 과연 서울 도심 한 복판에서 이런 조건의 음식점을 찾을 수 있을까.

#요즘 회식 트랜드 ‘911’이 정답

과거 이 부서의 회식은 고깃집이나 횟집에 모여 1차로 폭탄주를 돌리고, 2차 호프집, 3차 포장마차로 이어지며 먼저 취한 사람부터 택시에 태워 집으로 보내는 식이었다. 최후까지 살아남은 몇 명은 해장국으로 속을 풀고 집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지난해 말부터 회식문화가 서서히 바뀌어 최근엔 1차에서 끝내는 경우가 태반이다. 이번에도 부장만 발동이(?) 걸리지 않는다면 ‘911’ 회식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A씨는 인터넷 검색과 가까운 친구들에게 물어 적당한 음식점 1곳을 찾아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조건까지는 정확히 들어맞았지만, 세 번째 조건은 일단 먹어봐야 알겠다.

#한우 싸게 먹을 수 있는 우리 동네 맛집
4월 어느 수요일 오후 6시40분. 평소보다 일찍 일을 끝낸 팀원들은 사무실에서 10여분 거리에 있는 불고기브라더스에 모였다. 불고기브라더스는 국내는 물론 최근에 중국과 미얀마에 진출한 불고기 전문 프랜차이즈 음식점이다. 주변 직장인들 사이에선 1등급 한우를 비교적 싸게 먹을 수 있는 곳으로 알려진 ‘동네 맛집’이기도 하다.

별도의 방을 예약해 자리를 잡고 프로젝트 결과와 회사의 실적 등 부원들이 꼭 알아야할 사항을 간단하게 전달한 뒤 음식을 주문했다.

오늘의 메뉴는 한우채끝등심과 소고기냉채. 술은 사무실에서 가져온 와인 2병에 취향에 따라 맥주와 소주를 몇 병 주문했다. 회식에 참가한 인원 중 정확하게 절반이 여성이다.
#술 권하지 않는 분위기 화기애애
채끝등심은 불고기브라더스가 최근 새롭게 내놓은 메뉴로 4인분이상 주문 시 할인쿠폰을 가져가면 20%를 할인받을 수 있다. 홈페이지를 방문해 할인쿠폰을 출력하는 일은 당연히 막내인 A씨의 몫이다.

음식이 나오고 술이 몇 순배 돌면서 자연스럽게 주거니 받거니 즐거운 시간이 흘렀다. 두께가 1센티미터가 넘어 두툼한 채끝등심은 종업원이 직접 굽고 먹기 좋게 잘라준다. 아무래도 소고기는 잘못 구우면 타거나 딱딱해지기 쉬운데 이곳은 종업원들이 구워주기 때문에 막내(?)가 고기를 굽느라고 신경 쓸 일이 없어서 좋다. 특히 비싼 소고기를 태워 선배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았던 경험이 있는 A씨는 종업원들의 서비스가 너무나도 고맙다.

요즘 회식은 첫 잔을 따라준 뒤에는 권하지 않고 주량에 따라 알아서 마시는 분위기가 강하다. 이날도 각자의 취향에 맞게 좋아하는 술을 알아서 즐기는 분위기로 흘렀다. 물론 옆 사람의 술잔이 비면 눈치껏 채워 준다.
#소주에서 저도주나 와인으로 주종 바뀌어
최근엔 회식의 주종이 과거 천편일률적인 소주에서 탈피해 저도주나 와인 등으로 바뀌고 있다. 이에 음식점들도 맞춤 변신을 시도 중이다. 이곳도 매장에서 판매하는 와인이 있지만, 손님이 자신의 와인을 가져와도 별도의 서비스 요금을 받지 않는 와인 콜키지 프리(Corkage free)를 시행하고 있다. 와인 마니아라면 귀가 솔깃할 일이다.

술을 많이 마시지 않으니 조용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많은 얘기들이 오갔다. 과거 술에 취해 고성을 지르거나, 횡설수설하던 회식 장면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이 때문에 최근 회식엔 여성 부원들의 참여율이 높다.

순식간에 시간이 흘러 고기와 냉면을 먹고 후식으로 커피까지 마신 뒤 자리에서 일어난 시간은 정확하게 오후 9시5분 전.

드디어 부장이 카운터에서 계산서를 받아들었다. 과연 세 번째 조건은 맞았을까? 이날 부원들이 주문한 메뉴는 정확하게 한우채끝등심 16인분, 소고기냉채 3개, 후식냉면 8그릇, 소주 3병, 맥주 7병이다.
#취하지 않아 안전한 귀가길
계산서의 금액은 61만4700원. 하지만 등심 20% 할인쿠폰으로 9만5360원을 할인 받아 최종적으로 51만9340원을 지불했다. 50만 원을 약간 초과했지만, 이 정도면 합격이다.

음식점을 나오며 부장의 입에서 “식당 잘 골랐네, 수고했어요.”라는 한 마디가 나오자 A씨의 어깨는 가벼워지고, 입 꼬리는 하늘로 올라갔다.

이날 막내인 A씨의 할일이 또 하나 줄었다. 팀원들의 택시를 일일이 잡아주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과거에는 많이 취한 선배들이나, 여성 부원들의 택시를 잡아주고 번호를 스마트폰으로 찍어두는 일까지 막내가 맡았었다. 이래저래 깔끔한 회식이다.

조창현 동아닷컴 기자 cch@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