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돈맥경화… 막힌 혈관 놔두면 돈 풀어도 안돌아”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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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 해법 전문가 조언]

“기준금리를 한두 번 올리고 내리는 것으로 한국 경제가 처한 현실을 바꿀 수는 없다. 합리적인 처방과 액션플랜을 통해 구조개혁에 적극 나서야 할 때다.”

전직 경제부총리와 전직 한국은행 총재, 경제연구기관장 등 전문가들은 정부의 경제정책이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에 의존하기보다 저출산·저성장 시대에 맞춘 경제구조의 근본적 개편에 집중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일부 전문가는 한국 경제가 아직 디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하락)에 진입하지 않았지만 머지않아 디플레이션에 빠질 수 있는 위험이 크다며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디플레이션, 불균형 문제 경고

한국 경제에 대한 경제원로들의 고민은 깊었다. 최근 물가상승률이 0%대를 기록하면서 디플레이션 우려가 커진 데 대해 전문가들은 대부분 “아직 디플레이션에 진입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디플레이션 위험이 점점 커지고 있어 구조개혁을 위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경고했다.

진념 전 경제부총리는 “디플레이션 가능성은 낮지만 수요가 줄고, 성장이 멈추는 것이 문제”라며 “고령화와 저출산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으면 어떤 위험이 닥칠지 알 수 없다”고 지적했다. 권오규 전 경제부총리와 박재완 전 기획재정부 장관 역시 우리 경제가 디플레이션에 진입하지는 않았지만 성장률 저하 문제는 심각하다고 평가했다.

저성장보다 분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게 문제라는 지적도 나왔다. 이성태 전 한은 총재는 “생산-분배-지출이라는 국민 소득의 순환과정에서 분배 부분이 고장 나 경제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사고 싶은 사람은 돈이 없고, 돈이 있는 사람은 살 게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박승 전 한은 총재 역시 “경제성장의 과실이 가계로 전달되지 않고 있다”며 분배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했다. 그는 “한국경제는 기업 이익이 가계로 이어지는 ‘낙수성장’이 아닌 가계 소비가 기업 성장을 일으키는 ‘분수성장’ 단계에 있는데, 정부는 여전히 수출 육성이나 기업 투자에 집중하는 산업화 시대의 처방만 내리고 있다”고 꼬집었다.

○ 저성장 저출산 고령화 대비해 구조개혁 나서야

경제원로들은 통화정책은 미봉책일 뿐이며 결국 구조개혁을 통해 한국 경제의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윤창현 한국금융연구원장은 “한국의 법과 제도, 경제구조는 인플레이션 시대에 만들어진 형태”라며 “저성장 시대에 맞춰 체질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윤증현 전 기재부 장관은 “수출에 의존한 성장으로는 일자리 창출이 어렵기 때문에 내수 진작을 통해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며 우리 경제가 당면한 최대 과제로 일자리 문제를 꼽았다. 진념 전 부총리는 “국공립 어린이집 확충이나 국내 의료서비스 개선 등을 통해 투자의 물꼬를 터주고 일자리 창출 효과를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업환경 개선에 대한 지적도 빠지지 않았다. 권혁세 전 금융감독원장은 “기업들이 투자를 하고 싶어도 족쇄가 채워져 있어 할 수가 없다. 경제활성화 입법부터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장도 “통상임금, 근로시간 단축 등 고용 관련 규제와 더불어 배당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등으로 기업 하기에 환경이 나쁘다”고 지적했다.

경제원로와 중견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는 “글로벌 통화완화 정책에 보조를 맞추고 경기를 떠받치기 위해 금리를 낮춰야 한다”는 의견과 “효과가 제한적이고 가계부채를 늘리는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으므로 인하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팽팽히 갈렸다.

권태신 원장은 “내려도 진작 내렸어야 한다”며 “경제가 살아야 가계소득이 늘어나고 소비가 진작된다”며 기준금리 인하를 적극 지지했다. 신관호 고려대 교수는 “한은의 물가안정목표(2.5∼3.5%)에 비해 물가상승률이 크게 밑돌고 있는 만큼 금리 인하는 필요하다”고 말했다.

금리 인하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았다. 경제의 ‘시한폭탄’으로 떠오른 1100조 원의 가계부채가 금리 인하의 가장 큰 걸림돌로 꼽혔다. 김경수 성균관대 교수는 “가계의 재무건전성이 회복되지 않으면 내수 진작은 어렵다”고 단언했다. 하태형 현대경제연구원장은 “우리 경제가 ‘돈맥 경화’에 걸린 만큼 아무리 돈을 풀어도 혈관이 막혀 있으니 돈은 돌지 않는다”며 금리 인하에 반대했다. 신세돈 숙명여대 교수는 “경제가 어려우니 금리 인하를 해야 한다는 것은 ‘소 잡는 칼로 닭 잡는 격’이다”라고 지적했다.

12일 열리는 금융통화위원회의 금리 인하 여부와 관계없이 한은이 더 적극적이고 유연하게 경기에 대응해야 한다는 주문이 있었다. 윤 원장은 “한은이 그동안 인플레이션에 대응해 수비만 해왔기 때문에 디플레이션에 맞춘 공격에 주저하는 듯하다”며 한은의 ‘공수전환’을 주문했다.

신민기 minki@donga.com·유재동·박민우 기자
#한국경제 해법#기준금리 인하#디플레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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