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마켓 뷰]브로커가 乙? 런던에선 꿈의 직업

  • 동아일보

영국 런던 템스 강변에 위치한 로이즈 보험시장에서 브로커들이 영업을 하고 있다. 이곳은 해상 등 150여 개 보험 관련 회사가 밀집돼 있어 세계 최대의 보험시장으로 불린다. 최요순 우리투자증권 런던법인장 제공
영국 런던 템스 강변에 위치한 로이즈 보험시장에서 브로커들이 영업을 하고 있다. 이곳은 해상 등 150여 개 보험 관련 회사가 밀집돼 있어 세계 최대의 보험시장으로 불린다. 최요순 우리투자증권 런던법인장 제공
최요순 우리투자증권 런던법인장
최요순 우리투자증권 런던법인장
세상에는 ‘을’의 무늬를 가진 가지각색의 직업이 참 많다. 주식 채권은 물론이고 보험 보석 무기 예술품 등 ‘사자’와 ‘팔자’를 연결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을 영어로 ‘브로커’, 이런 행위를 ‘브로커링’(브로킹이라고 하는 것은 틀린 표현임)이라고 부른다.

영국 런던에는 세계 각국의 브로커가 모여 ‘을’의 생활인 브로커링을 하며 큰돈을 벌어들이고 있다. 금융상품뿐만 아니라 해적과 피랍선원 간 거래를 중개하는 브로커링이 가장 성행하는 곳도 런던이라고 한다. 소말리아 해적과 흥정을 하려면 런던에 와야 비로소 그들과 소통하고 협상할 수 있는 브로커가 있다. 브로커의 천국이 바로 이곳 런던이다.

영국에서는 종류를 불문하고 브로커가 고학력, 전문직종, 세련된 매너를 가진 선망의 직종으로 이해된다. 프리미어리그 축구선수들을 이적시키거나 세계 최대의 로이즈 보험시장에서 보험 상품을 중개하는 일 모두가 영국 일반인에게는 꿈의 직업인 것이다.

‘을’인 브로커와 대형 은행 트레이더를 상대로 또 다른 브로커링 업무를 하는 직업군이 있다. 그야말로 브로커의 브로커인 셈이니 어찌 보면 금융계의 ‘을’ 중에 ‘을’이라 할 수 있겠다. ‘인터딜러 브로커’라 불리는 이런 회사 중 런던에 근거를 둔 금융중개 거래업체 아이캡(ICAP)은 최대의 시장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회사 매출 3조 원(지난해 기준) 중 70%, 영업이익 6500억 원 중 40%가 전산 시스템을 통하지 않고 순전히 브로커의 목소리, 즉 면담이나 전화를 통해 거래가 성사됐다는 것이다. 그만큼 브로커링 업무에서는 ‘휴먼 터치’가 기계보다 더 중요하다는 해석을 하게 만든다.

좀 거칠다는 평을 받는 한 인터딜러 브로커 회사의 가슴 뭉클한 얘기가 최근 런던 석간신문 ‘이브닝 스탠더드’에 소개됐다. 한때 미국 국채시장에서 가장 큰 브로커였던 ‘캔터 피츠제럴드’사에 관한 일화다. 9·11테러로 생명을 잃은 전체 희생자 중 4분의 1이 이 회사 직원이었다고 한다.

미국 맨해튼 본사가 전산이 마비되고 슬픔에 잠겨 업무가 중단되자 런던법인 직원들만이 그 명성을 되찾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하는 상황이었다. 9·11테러 발생 3년 후 이 회사 런던법인은 새로운 각오로 ‘비지시 파트너스’란 이름으로 분사해 나왔다. 그 후 9·11테러 때 희생됐던 직원 658명의 가족에게 매년 수익금의 25%를 지급하는 전통을 지켜오고 있다. 또 매년 9월 11일에는 영국 저명인사들이 이 회사로 출근해 전화기를 직접 들고 고객들의 주문을 체결해서 얻은 수수료 수입과 당일 이 회사 브로커들이 올린 수입 전부를 자선단체에 기부하고 있다.

런던 브리지 북단에는 세계 최대의 로이즈 보험시장이 자리하고 있다. 17세기 말 이곳에 커피하우스가 있었고 커피를 나르던 웨이터들이 템스 강가에서 수집한 정보를 손님들에게 제공했다. 이 커피하우스의 이름이 ‘로이드’였다. 이런 연유로 로이즈 회사 직원들은 지금도 명함에 ‘웨이터’란 직함을 자랑스럽게 적고 다닌다. 로이즈 건물 안에 들어가면 ‘갑’인 언더라이터(계약심사업무 담당자)는 편한 등받이 의자에, ‘을’인 브로커는 바로 옆 등받이와 팔걸이가 없는 의자에 쪼그려 앉아 상담하고 있다. 마치 ‘갑’과 ‘을’이 대치하는 모습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고객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그에 따른 적당한 보수만 받으면 되는 것이지 웨이터라 불리던, 앉는 의자가 초라하든 말든 개의치 않는 풍속이 보기 좋다. 고객인 ‘갑’ 역시 브로커인 ‘을’을 막 대하지 않고 그들의 전문성을 존중해준다. 다이아몬드 꽃 요트 부동산 축구선수 결혼 등 중개업종에 종사하는 브로커는 오늘도 런던 교역시장에서 중간자 역할을 충실히 그리고 행복하게 수행하고 있다.

최요순 우리투자증권 런던법인장
#꿈의 직업#보험시장#브로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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