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밀, 비싸고 품질 낮다”… 업계 외면에 ‘찬밥’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2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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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 말 현재 재고량, 1년 생산량 웃도는 5만4000톤

생산은 느는데 팔리지 않는 우리밀 왜?
《 정부가 식량안보 차원에서 생산을 장려하고 있는 우리밀이 소비자와 기업들의 외면으로 ‘찬밥’ 신세로 전락했다. 생산은 늘고 있으나 팔리지 않아 재고만 쌓인다. 우리밀의 재고량은 9월 말 현재 5만4000t으로 작년 연간 생산량(4만3669t)보다 23.7% 많다. 정부는 소주 원료인 주정에 우리밀을 넣어 재고를 소진하겠다고 밝혔지만 임시방편일 뿐이라 근본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 외면 받는 우리밀

우리나라 국민의 1인당 연간 밀 소비량은 지난해 31kg으로 쌀(71.2kg)에 이어 두 번째로 많았다. 그러나 밀 자급률은 2.2%에 그쳤다. 거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다보니 국제 밀 시세에 따라 국내 밥상물가가 요동칠 수밖에 없다.

특히 올해는 6월 말부터 가뭄과 폭염 등 기상 여건이 악화되고 중국 인도 등의 육류 소비 증가로 사료용 밀 수요가 늘면서 밀 값이 크게 올랐다. 미국 시카고상업거래소에서 거래된 11월 밀 평균가격은 t당 317달러로 1년 전보다 40.9% 급등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KERI)은 국제 시세가 국내에 적용되기까지 4∼7개월 걸리는 점을 감안해 내년 상반기(1∼6월)에 국내 밀가루 값이 올해 2분기(4∼6월)보다 30.5% 오를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이런 상황을 감안해 정부는 2015년까지 밀 자급률 목표를 10%(생산량 20만 t)로 높였다.

2008년 정부가 국내 밀 산업을 육성하겠다고 발표했을 당시 우리밀은 ‘고급 밀’로 인식되며 반짝 인기를 얻었지만 그때뿐이었다. 국산밀산업협회에 따르면 팔리지 않아 창고에 쌓인 우리밀 재고량은 2010년 말 8000t에서 작년 9월 2만3000t으로 증가한 데 이어 올해 9월 5만4000t로 늘었다. 우리밀은 1984년 정부가 수매를 중단한 이후 거의 생산되지 않았다. 그러나 국제 밀 값이 t당 649달러까지 올랐던 2008년 우리밀농협과 제분업체가 수매를 시작하면서 생산량이 당시 1만359t에서 작년엔 4만3669t까지 늘었다.

하지만 최근 시장에선 우리밀 제품을 찾아보기 어렵다. 파리바게뜨는 2008, 2009년 우리밀 제품 20여 종을 출시했지만 현재는 거의 사라졌다. 소보루빵이나 크림빵 등 일부 제품에 우리밀을 10%가량 섞어 쓰는 게 전부다. 뚜레쥬르도 2008년 우리밀 제품 5종을 출시했으나 지금은 크림빵과 케이크 2종만 판다. 우리밀 제품 15종을 생산하는 CJ제일제당도 수매량을 작년 8500t에서 올해 3500t으로 줄였다. CJ제일제당은 “현재 재고만 해도 1년 6개월 사용량인 5000t에 달한다”며 “값은 값대로 지불하고 창고에 쌓아만 두고 있다”고 전했다. 농심이나 롯데제과 등 라면 제과 기업들은 우리밀을 아예 안 쓴다.

○ 비싸고 품질 나빠

우리밀이 외면 받게 된 이유는 수입 밀에 비해 비싸고 품질도 떨어지기 때문이다. 우리밀살리기운동본부에 따르면 9월 현재 우리밀 출고가는 40kg당 3만9500원으로 수입밀(1만5577원)의 2.5배에 이른다. 제빵업체 관계자는 “우리밀 제품은 비싸 가맹점주들이 부담스러워한다”고 전했다.

우리밀은 맛이 떨어지고 조리하기도 쉽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현재 국내서 유통되는 품종의 70%는 자장면용 금강밀이다. 빵에 쓰이는 조경밀은 20%에 불과하다. 한 제빵업체 관계자는 “면용 밀가루를 빵 만드는 데 쓰다 보니 질감이 거칠거나 질긴 제품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식품업체 관계자는 “농가 재배방식도 주먹구구식이라 단백질 함량도 들쭉날쭉해 대량 생산에 적합하지 않다”고 말했다.

정부는 당장 재고를 줄일 방안에 골몰하고 있다. 지난달 한국주류산업협회는 12월부터 내년 6월까지 주정 원료에 넣는 보리 타피오카 등의 양을 줄이고 대신 우리밀 3만 t을 넣는다고 발표했다. 우리밀농협 측은 “보리 가격은 40kg에 3만3000원 정도인 반면 우리밀이 더 비싸 장기 계약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했다. 정부는 학교와 군인 급식에 우리밀을 사용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지만 예산 문제로 지지부진하다.

○ 근본적인 대책 필요

학계와 업계는 직불제와 공공비축제, 품종 개발 등을 주문하고 있다. 직불제는 정부가 농가에 일정 자금을 지원해줘 농가가 재배 규모를 늘리도록 하는 것이다. 현재 밀 자급률이 17%인 일본이 써온 방법이다.

윤석원 중앙대 산업경제학과 교수는 “정부와 농협이 농가로부터 밀을 매입한 뒤 이를 제분 및 가공업체들에 싸게 판매하면 식품업체들이 우리밀 제품의 가격을 수입 밀과 비슷하게 매겨 소비 시장을 키울 수 있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생산성이 높으면서도 가공하기 좋은 품종을 개발해야 한다. 이한빈 국산밀산업협회 상임이사는 “여태껏 개발된 국산 밀 품종이 33개지만 실제로 유통되는 것은 3개 정도에 그친다”이라며 “수입 밀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기후에 적합하고 맛도 있는 품종을 개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강유현 기자 yhkang@donga.com
#우리밀#재고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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