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가 미래다]투자·인재확보·해외진출, 한국기업 R&D에 다 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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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7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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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성장 추세 속 연구·개발 노력 현장

서울 강동구 성내동 GS나노텍 박막전지연구소에서 연구원들이 세라믹 패키지 속에 탑재된 박막전지의 상태를 살펴보고 있다(위 사진). 아래 사진은 연구소에 설치된 전지 특성 측정장비. 홍진환기자 jean@donga.com
서울 강동구 성내동 GS나노텍 박막전지연구소에서 연구원들이 세라믹 패키지 속에 탑재된 박막전지의 상태를 살펴보고 있다(위 사진). 아래 사진은 연구소에 설치된 전지 특성 측정장비. 홍진환기자 jean@donga.com

《정보기술(IT) 거품이 꺼지기 시작한 2001년, 월드컴 등 미국 통신회사들이 줄줄이 무너졌다. 이 영향으로 해저 광케이블을 경쟁적으로 깔던 투자가 일시에 중단됐다. 광섬유 사업을 하던 미국의 유리 전문업체 코닝도 거품 붕괴의 충격을 고스란히 받았다.》
코닝은 영원히 호황을 이어갈 것 같았던 광섬유 사업에 100억 달러(약 11조4000억 원)를 과감히 투자한 터였다. 과잉 투자는 고스란히 손실로 이어져 55억 달러(약 6조2700억 원) 적자를 냈다. 경영난에 몰린 코닝은 비용 요소를 샅샅이 찾아내 감축했다. 그러나 매출액의 10%를 차지하는 연구개발(R&D) 투자는 한 푼도 줄이지 않았다. 오히려 R&D 투자의 3분의 1에 ‘인내(忍耐) 자금’이라는 이름을 붙여 중장기 연구에 집중 투자했다.

이후 액정표시장치(LCD) TV용 유리기판 기술 경쟁력을 확보한 코닝은 이 시장에서 점유율 50%를 돌파하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박막전지의 외관을 현미경으로 검수하는 하는 모습. 홍진환기자 jean@donga.com
박막전지의 외관을 현미경으로 검수하는 하는 모습. 홍진환기자 jean@donga.com
○ ‘최강 기업’의 열쇠는 R&D

어려울 때 R&D에 투자한 기업만이 살아남는다는 교훈은 세계 경제가 여러 차례 불황을 겪으며 이미 확인됐다. 특히 불황이 끝난 뒤에는 산업계의 판도가 재편되기 때문에 불황이라고 투자를 소홀히 했다가는 한 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 이에 따라 국내 주요 기업들은 세계경제가 저(低)성장 국면에 접어든 최근에도 R&D 투자를 오히려 늘리고 있다.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에 따르면 2010년 매출액 상위 10대 기업의 R&D 투자 증가율은 23.4%로, 같은 기간 21.2%에 그친 전체 대기업보다 2.2%포인트 높았다. 같은 해 전체 대기업의 R&D 투자비용 24조2129억 원 가운데 62%에 이르는 15조1454억 원을 상위 10대 기업이 차지했다.

특히 국내 기업들은 1999년 일본의 10분의 1에 불과했던 투자규모를 2009년 6분의 1 수준으로 좁히면서 제조업 강국 일본을 따라잡고 있다. 임상혁 전국경제인연합회 산업본부장은 “기업의 R&D 투자와 국가 경제성장은 밀접한 관계를 나타낸다”며 “글로벌 경기 침체로 투자가 위축된 2009년 우리 기업들이 R&D 투자를 늘려 2010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1개 국가 가운데 가장 높은 6.2%의 경제성장률을 달성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 불황기 R&D 투자 고삐 죄는 주요 기업

올해도 재계 3, 4위(공기업 제외)인 SK그룹과 LG그룹이 불황 후 다가올 초(超)성장의 기회를 잡기 위해 역대 최대 규모의 R&D 투자를 단행한다. 반도체 회사 SK하이닉스를 인수한 SK그룹은 올해 R&D 분야에 역대 최대 규모인 19조1000억 원을 투자한다. 지난해의 두 배를 웃도는 것이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최근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를 만날 때마다 R&D에 아낌없이 투자하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구 회장은 올 4월에는 “R&D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삼고초려(三顧草廬)를 마다하지 않겠다”며 직접 미국행에 나서기도 했다. LG그룹은 올해 사상 최대 규모인 4조9000억 원의 투자를 미래 산업인 전기자동차용 전지와 차세대 디스플레이 분야에 투입할 계획이다.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과 현대·기아자동차 그룹은 올해 각각 13조6000억 원과 5조1000억 원을 투자한다. 특히 삼성은 기업의 R&D 경쟁이 앞으로는 기존의 산업분야별 벽을 허무는 양상으로 전개될 것으로 보고 이에 대비하고 있다. 기존 사업 분야에서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등 차세대 기술에 투자를 집중하는 한편, 삼성SDI를 중심으로 자동차부품 사업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이건희 회장의 아들인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은 차량용 반도체 사업을 진두지휘하는 동시에 GM, BMW, 폴크스바겐 등 해외 자동차업계와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현대·기아차는 앞으로 다가올 전기차, 연료전지차 시장에 대비한 연구에 주력하는 동시에 독일, 미국, 일본, 중국, 인도 등 주요 거점지역에 글로벌 R&D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현지 시장과 소통하는 R&D 전략으로 글로벌 톱 5의 위상을 지켜나간다는 계획이다.


○ 외부 자원 적극 활용 필요

전문가들은 불황기 R&D 전략은 ‘신성장 산업 투자는 지속적으로 하되 외부의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개방형 R&D에 주력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미국 P&G는 외부의 기술자원을 자신의 R&D 역량으로 활용하는 C&D(Connect & Develop) 전략을 통해 성장을 이뤘다. 회전 막대사탕 장난감 기술을 활용해 기존 제품의 10분의 1 가격에 불과한 값싼 전동 칫솔을 개발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또 다른 불황기 기술 확보 방법은 인수합병(M&A)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7월 미국 반도체 개발사인 그란디스를 인수하고, 최근 영국 반도체 회사인 CSR의 모바일 부문까지 인수하는 등 1년 사이 5건의 인수합병을 단행했다. 박성민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원은 “불황기에는 외부에서 개발된 기술과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오픈 이노베이션을 주목해야 한다”며 “시간과 비용을 절감하고 이미 검증된 기술을 활용함으로써 시장 진입을 용이하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용석 기자 nex@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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