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늪’에 빠진 가계… 신용위험 9년 새 최고

  • 동아일보

■ 한국은행 “3분기 위험지수 38”… 美금융위기 때보다 나빠

그래픽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그래픽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부동산 거래 위축과 소득 여건 악화 등으로 한국 경제가 가계부채의 늪에 빠질 위험을 경고하는 지표가 잇달아 나오고 있다.

올해 3분기(7∼9월) 가계대출의 신용 위험도가 9년 만에 최고치에 이를 것으로 전망됐다. 또 부동산 대출이자 부담과 세금처럼 가계가 소비 이외의 목적으로 지출하는 금액은 가구당 월평균 80만 원에 육박해 역대 최고치인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은행이 4일 발표한 ‘금융기관 대출행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3분기 가계의 신용위험지수 전망치는 38로 2분기 22에서 16포인트 뛰어올랐다. 이는 2003년 3분기의 44 이후 가장 높은 수치로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9년 2분기의 25보다도 악화된 수준이다. 한은의 조사는 국내 은행 16곳(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제외)을 대상으로 6월 11∼21일 진행됐다.

가계대출의 신용 위험도가 치솟은 것은 가계부채 규모는 커지는 반면 소득 여건은 악화돼 소득으로 대출이자를 갚기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3월 기준 가계부채 총액은 911조 원이며, 여기에 자영업자 대출까지 합치면 1000조 원을 넘는다. 또 부동산 거래가 위축돼 부동산을 팔아 빚을 갚기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최병오 한국은행 거시건전성분석국 조기경보팀 과장은 “주택 가격 하락으로 대출 담보력이 저하되고 있는 상황이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통계청의 가계수지에 따르면 올해 1분기 2인 이상 전체 가구의 월평균 소득 412만3254원에서 비(非)소비지출 79만275원의 비중이 19.2%에 이르러 살림살이가 팍팍해진 것으로 나타났다. 비소비지출 액수는 지난해 1분기보다 7.3% 늘었다. 소득에서 비소비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1분기 19.1%로 관련 통계를 작성한 이래 처음으로 19%대에 진입한 상태이다. 소득세와 재산세 등 각종 세금과 건강보험료, 국민연금, 이자비용 등을 합친 비소비지출이 늘수록 상품과 서비스 구매에 쓸 수 있는 소득은 준다.

비소비지출 증가의 원인은 가계 대출의 이자비용이 꼽혔다. 이자비용은 지난해 4분기 처음으로 월 9만 원 선을 돌파한 뒤 1분기 9만6131원으로 많아져 지난해 1분기 8만1254원보다 18.3% 늘었다. 여기에 고용사정이 나아져 고용보험과 각종 사회보험 가입자가 늘면서 비소비지출이 늘었다.

한편 부동산경기 침체로 가계의 주택대출 수요도 3분기 3으로 2분기 9보다 큰 폭으로 감소할 것으로 전망됐다. 집값 하락으로 굳이 은행돈을 빌려 집을 사려는 사람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실제로 신한 우리 국민 하나 기업은행과 농협 등 6대 시중은행의 올해 6월 말 가계대출 잔액은 368조2984억 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2조4000억 원(0.7%) 늘어나는 데 그쳤다. 반기 기준 가계대출 증가율이 1% 미만으로 떨어지기는 2000년 이후 처음이다. 지난해 하반기에는 이들 은행의 가계대출이 10조 원가량 급증했다.

가계대출은 2010년 8.0%, 지난해 7.8% 등 최근 몇 년간 큰 폭으로 늘다가 올해 상반기 증가세가 꺾였다. 신한과 국민은행(이상 ―0.2%) 등은 올해 상반기 가계대출이 오히려 줄었다. 특히 가계대출의 3분의 2가량을 차지하는 주택담보대출은 상반기 증가율이 1.8%로 지난해 하반기 증가율 3.9%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김유영 기자 abc@donga.com  
유성열 기자 ryu@donga.com  
#가계대출#신용 위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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